아이들과 가족이 되었으니 이름을 붙여줘야 했다. 보호센터에서 쓰던 이름은 엄마는 귤이, 아들은 감이였다. 앞으로 아이들의 평생, 그리고 아이들이 먼저 떠나더라도 남은 내 생에 아이들을 추억하며 평생 부를 이름이기에 가장 예쁘고 빛나는 이름으로 짓고 싶었다. 두 아이는 나에게 딸과 아들이니 세트로 이름을 맞추어 짓고 싶었고 사람에게도 쓸 수 있는 세련된 이름을 주고 싶었다. 고심 끝에 엄마는 '향기', 아들은 '로와'가 되었다. 애정이 넘치다보면 향기는 때로 '냥기', '먕기'가 되고 로와는 '로로', '로롱이'가 된다. 내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올 때면 그들은 향기로와 대신 '우리 강아지들'이 된다.
아이들을 데려오고 며칠이 지나며 이제는 아이들이 나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잘 돌아다니게 되었다. 여전히 소파 밑을 가장 안전한 장소로 생각하기는 했지만, 그곳에 누워 소파 밑바닥을 발톱으로 긁어대는 탓에 소파가 점점 닳으며 가루가 생겨 못 들어가게 막아야 했다. 그렇다. 이게 고양이다. 스크래쳐를 종류별로 사놓아도 자기가 긁고 싶은 것을 긁는다.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나는 소파 밑을 막았고 고양이들은 이제 침대 밑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침대 밑부분은 딱딱한 소재라서 아이들이 긁지 않았다.
함께 지내보니 사람마다 성격이 다른 것처럼, 향기와 로와가 성격이 다른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향기는 사람을 잘 따랐고 내가 뭘 하든 옆에서 나를 지켜보기를 좋아했다. 집에 적응을 하고 나니 침대 밑에도 거의 들어가지 않았다. 반면 로와는 작은 자극에도 쉽게 놀라고 겁을 잘 먹어서 침대 밑이나 캣타워의 칸막이가 쳐진 칸에 들어가 있는 것을 좋아했다. 좋아하는 장난감의 종류도 달랐다. 일반적인 낚시대 장난감은 로와를 흥분시켰고 카샤카샤처럼 부스럭 소리가 나는 장난감은 향기를 안달나게 만들었다. 식성도 달랐다. 향기는 뭐든 잘 먹었고 로와는 연어를 좋아하고 츄르, 트릿류를 제외한 모든 음식은 새로운 것이라면 일단 기피했다. 향기는 엄마라서 그런가 로와를 아주 꼼꼼하게 핥아줘서 로와의 엉덩이는 늘 깨끗했고 향기는 엉덩이가 지저분했다. 향기의 엄마인 내가 닦아주는 수밖에. 막상 향기는 자기가 로와나 나를 핥아주는 건 적극적이면서 남이 자기를 닦아주는 건 싫어했다. 엉덩이건 얼굴이건 발바닥이건.
로와는 워낙 예민한 아이라서 원래 애정표현이 없는 아이구나, 생각하며 살았다. 그런데 함께 산 지 세 네 달쯤 되었을 땐가 로와가 먼저 내게 다가와서 몸으로 내 다리를 쓸고 지나갔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는 나를 핥아주기도 했다. 이렇게 천천히 마음을 열어가는구나 싶어서 마음이 벅찼다. 로와는 안아올리면 늘 강하게 발버둥을 치며 도망을 갔는데 일 년이 지나자 안아도 얌전히 있었다. 눈꼽을 떼주고 발톱을 깎아주고 털을 빗어주고. 안아서 무릎에 올려놓으면 본인을 케어해 준다는 걸 이제 아는 것 같다. 내 손길이 멈추면 끝났다는 걸 아는지 얌전히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 자리를 벗어난다. 요즘은 간식을 원하면 냉장고 앞에 가서 야옹대기도 하고 제법 의사표현을 한다.
아이들이 내게 마음을 여는 것은 좋았지만 좋지 않은 변화도 있었다. 아기 고양이를 임시보호할 때는 기간이 짧은데다 아가여서 털이 잘 안빠져서 몰랐다. 아이들을 오래 데리고 있다보니 털이 너무 많이 빠져서 없던 알러지가 생겼다. 장모종이라 털이 긴데 이게 눈, 코, 입에 들어가니 알러지 증상이 안 생길 수가 없다. 하루종일 함께 있으면 눈과 코가 가렵고 재채기가 계속해서 나온다. 수건, 속옷에도 고양이 털이 묻어있으니 피부도 가렵고 쉽게 건조해진다. 고양이를 키우기 전에 고양이 털에 대한 고충에 대해 읽을 때면 내가 청소를 더 열심히 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키워보니 털이 이중모여서 속털, 겉털이 따로 있고 속털의 경우 옷의 섬유조직처럼 아주 가늘어서 어디든 잘 붙는다. 얼굴에 붙어있으면 아주 가려운데 밝은 조명 아래에서 거울을 봐야 겨우 보여서 뗄 수가 있다. 콧구멍 근처에 고양이털이 붙었길래 떼려고 했더니 콧속에서 3센치 가량이나 길게 나오기도 했다. 이게 일상적인 일이다. 로봇청소기를 매일 돌리는데 먼지통이 털로 꽉찬다. 옷에도 흰 털이 너무 많이 붙는데 접착 클리너를 사용해도 옷의 섬유 깊이 박힌 털은 잘 떼내지지 않는다. 족집게로 한 올 한 올 떼다가 포기한 적도 있다. 게다가 니트와 같은 재질에는 접착 클리너를 쓸 수도 없다. 아이들이 집에 온 이후로 검은 옷, 면이나 다른 털이 붙기 쉬운 재질의 옷은 구매를 안 하게 되었다. 요가복, 등산복처럼 매끈매끈하고 털이 안 붙는 재질을 주로 입는다. 고양이들이 내 패션까지 바꾼 셈이다.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운 지 삼년 반 째다. 요즘은 다묘가정의 기쁨을 너무 잘 알겠다. 아이들이 성격이 다르니 각자의 매력이 다르다. 집에 고양이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밖에서 만나는 고양이들은 그들 자체로 사랑스럽다. 모두 다 다르게 사랑스러운 매력이 있다. 예전에는 밖에서 고양이를 만나면 솟구치는 애정을 다 표현할 수 없어 아쉬웠다. 내 수중에 간식이 없거나, 아이들이 사람을 심하게 경계하거나... 지금은 그런 아쉬움을 안고 집에 오면 다 쏟아내지 못한 애정이 자연히 향기와 로와에게 향한다. 밖에서 고양이를 보면 집에서 고양이에게 더 잘하게 된다. 마냥 예뻐해주고 싶고 잘해주고 싶고, 고양이는 하여간 신기한 동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