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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use Nov 20. 2023

자아 성장 보고서

나를 알려면 먼저 부모를 알아야 한다

요즘 오은영 박사님의 금쪽 시리즈물이 연일 나타나면서 아이가 성장하는 데 있어 부모의 역할과 환경적인 요인이 매우 중요하다는 걸 여실히 느끼고 있다. 오박사 님은 문제가 많은 아이들의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그 아이의 부모님을 바라보며 그 부모의 삶을 스캔한다. 이유인즉슨 부모가 곧 아이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우리 부모님과 내가 자라온 환경을 한번 돌아보면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였는지 되짚어보게 되었다.


오박사님의 자녀 상담은 아이에서 부모의 삶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 나의 부모님


우리 부모님은 내게 어떤 사람이었는가? 우선 아빠는 결혼을 늦게 하여 내 또래 친구들의 아버지보다 약 열 살은 더 많은 늦깎이 아빠에 속한다. 아빠는 박정희 정권 시절 당시 특전사로 군복무 중이었는데, 우월한 외모와 신체조건 덕에 상위 1%로 차출되어 청와대에 배치받은 경력이 있었다. 이 경험은 아빠에게 자긍심이 되어 스스로에게 자부심과 자신감이 뛰어나고 그만큼 자기 확신이 강해 고집도 어마어마하시다.


우리 엄마는 그냥 순둥순둥 순두부이다. 자기주장도 별로 없고 어렸을 때 엄마랑 말싸움이 나면 내가 엄마를 이겨먹으려고 했을 정도로 엄마는 온순한 편이다. 아빠가 술을 많이 마시고 와서 말썽을 부리면 그때마다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은 늘 엄마의 몫이었다. 우리 가족에도 해체 위기가 몇 번 왔었는데 엄마의 순한 성격 덕에 폭풍은 잠잠해졌고 지금은 여느 가족과 다를 바 없이 지지고 볶으며 사는 60대 노부부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이 나 땜에 힘들었구나..ㅎ


이러한 고집쟁이 아빠와 순둥이 엄마 밑에서 자란 덕에 나는 일명 믹스견 같은 ‘순한 고집쟁이’가 되었다. 평소에는 얌전하고 순한 모드를 유지하고 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깊은 신념이나 생각들이 건드려지면 반란과 격동을 일으키는 INFP의 잔다르크 기질이 발동하게 된다. 평소에는 줏대도 없고 자기주장도 내세우지 않지만 나의 중심이 건드려질 때에는 고집을 꺾지 못하는 통제 불가능한 아이로 자라게 된 것이다.




2. 나의 환경


부모님 열거를 마치고, 그렇다면 우리 집안 환경은 어땠을까? 사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유복한 가정은 아니었다. 아빠는 사람을 쉽게 믿고 일했기에 배신을 많이 당했고, 그것은 곧 경제적인 상황에도 영향을 미쳤다.


고정적인 수입구조가 아니었던 아빠의 직업으로 인해 우리 집의 가장은 전적으로 엄마가 담당하게 되었고, 성인이 될 때까지 딸들에게 용돈을 쥐어주는 일은 엄마의 몫이었다. 그땐 부족한 살림이 많이 창피했다. 갖고 싶은 옷과 신발을 넉넉하게 갖지 못하는 게 싫었고 우리 시대의 등골브레이커인 노스페이스 패딩을 나 또한 입고 싶었다. 근데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나의 생각은 판이하게 달라져있다. 그때 못 입고 못 사고 못 누리던 것에 대한 한이 맺혀 있는가? 전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지금 내가 벌어 내가 쓰는 어른이 된 것에 대한 굉장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으며 어린 시절의 공복은 말끔히 잊혔다. 시간이 지나면 쉽게 잊히는 휘발성 기억력의 소유자여서 그런지 아님 정말 시간이 약이라 해결해 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결핍이 지금 와서 크게 생채기로 남아있지 않은 것이다.


내년이면 일흔이 되는 아빠와 환갑이 되는 엄마는 현재의 삶에 크게 불행해하지도 않으며 지나온 과거에 갇혀 우울해하지도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로 어릴 때 우리 집이 부족하여 불행했다는 생각은 이제 없다. 그 정신만큼은 내가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좋은 DNA 인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나는 주어진 상황에 자족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잘 사는 가정에서도 학업에 대한 압박을 주입하는 부모들이 존재하고 그 가정에서도 아이가 다른 방향으로 느끼는 불행은 존재할 것이다. 결국 부유함이 곧 행복의 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 물론 돈 많으면 세상살이 편하고 인생 플렉스 할 수 있어서 좋겠지만 ‘돈이 인생에 있어서 전부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굳이 인생의 가치에 순번을 매기자면 돈 위에 생명이 있고 생명 위에 사랑이 있는 것 같다.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지만 나는 그렇게 정해두었다.




요즘 금수저니 흙수저니 다이아수저니 하면서 사람의 태생을 숟가락에 비유하곤 하는데 부모의 경제적 등급이 나의 꼬리표가 되는 것이 오늘날의 슬픈 현실이다. 하지만 인간의 탄생을 내가 선택하지 못하듯이 부모 또한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이다. 태어나면서 결정되는 것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수순이고, 그다음의 인생은 나의 노력으로 충분히 바꿀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는 스스로 삶의 척도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고 의지가 있다. 태어난 환경이 불행하다고 해서 부모탓을 하며 제 팔자를 저주하기보다, 자아가 성립된 나이가 되었다면 주체 있는 삶을 살며 스스로의 인생을 꾸려나가는 것이 훨씬 더 자기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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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마무리하며,


요즘 기사를 접하다 보면 아주 가끔 자식을 버리고 도망가거나 심한 경우에는 부모가 자식을 살해까지 하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물론 끝까지 버티고 키워내는 사람들이 대다수이지만 아주 극소수 미친 사람들도 세상에 존재한다. 그런 기사만 봐도 ‘우리 부모님은 그래도 우리들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책임감 있게 키워냈지’ 하는 생각을 내게 심어준다. 당연한 것이지만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되는 것들이었다.


어릴 땐 몰랐다, 부모님의 무게를. 그때는 철부지처럼 내가 갖고 싶은 것을 못 가져서 온갖 짜증과 투정으로 부모님에게 아픔을 줬다. 하지만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 내 몸 하나 건사해야 하는 성인이 되고 나니, 각자 본인들의 치열한 삶 속에서도 현실을 싸워가며 우리들을 양육해 주신 엄마아빠에게 정말로 감사하다.


많은 실패 속에서도 삶의 끈을 놓지 않고 투지 있게 살아온 아빠와, 퇴근 후 RPG CD 게임을 시리즈별로 사 오던 엄마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것이 자식들을 위한 우리 부모님만의 사랑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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