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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use Nov 10. 2023

내 마음의 깊은 곳

그곳에는 진지충이 살고 있다

사실 부끄럽지만 이런 글을 쓰고 싶었다.


피곤하게 내 입으로 자기 PR을 하지 않아도

마치 자소서만 보면 내 약력을 파악할 수 있듯이

“저는 이런 사람이에요~” 하고

단박에 알 수 있는 글.


‘나는 어떠어떠한 사람이다’라는 것을

면대면으로 말하는 게 조금 쑥스럽기도 하고

나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자기애가 뿜뿜 해 보일까 봐

말로 표현하기에는 늘 조심스러운 부분이었다.


하지만 브런치를 개시했으니..



“바로 지금이야!”



‘글’이라는 도구를 적극 활용하여

언젠가는 이곳에 나를 박제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사람을 사귈 때나

친한 지인에게 나를 표현할 때에도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

포폴 하나처럼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글.


나 이런 사람이야~


솔직히 이 글은 나를 모르는 사람들보다

나의 가까운 지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글이지만

아직까지 내가 브런치에서 글을 쓰는 취미를

갖고 있단 걸 모르니 정작 지인들은 알 길이 없다.


그래도 여기는 나의 대나무숲이니

속이나 뻥 뚫을 겸,

허심탄회하게 ‘나’를 소리쳐보고자 한다.





지구의 내부 구조


‘지각-맨틀-외핵-내핵’


지구의 피부도 계속해서 벗겨보면

4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듯이

우리들도 각자 마음의 상피를 벗겨내면

다양한 모습들이 공존하고 있다.


자칫 보면

<23 아이덴티티>의 케빈과 같이

여러 인격을 가진 조금은 무서운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으나(?)

사람이 한 가지의 성질만 가지고 있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나도 자아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사람에게 상처도 받아보고, 또 상처도 줘보고

인간관계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어보면서

지금의 내 모습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1단계 : 차가움

지구로 따지자면 ‘지각’, 겉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고

타인이 판단하는 나의 첫인상의 모습은

바로 차가움이다.


나는 사실 낯가림도 심하고 쑥스러움도 상당히 많다.

그래서 처음 보는 사람이 편한 느낌이 아닌 이상

보통 차갑게 얼어붙는다.


때문에 차가워 보인다, 도도해 보인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사실 일부러 차갑게 굴려는 것이 아니라

이 죽일 놈의 낯가림 때문에

그렇게 오해를 살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해

나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초반부터 급속도로 친해지는 것을 못하기도 하고

사실 그 방법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왜 찌개를 끓일 때에도

양은냄비에 끓이면 빨리 끓고 금방 식지만

뚝배기에 끓이면 조금 늦게 끓더라도

그 뜨거움이 오래가듯이,


인간관계도 천천히 알아가면서

농도가 깊어지는 걸 원하기 때문에

나는 초반에 사람과 친해지는 데 있어서

충분한 시간과 탐색이 필요하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본능적으로 탐색 중


그러므로 나의 첫인상에서 오는 차가움은

사실 차도녀 이미지를 고수하기 위함이 아니라

극도의 낯가림 + 상대방에 대한 탐색모드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발동하는 나의 얼굴가면인 것 같다.




2단계 : 푼수녀 (aka. 웃음이 헤픈 사람)

이번에는 ‘맨틀’의 단계이다.

첫인상의 허물을 벗겨내고 타인과의 관계를

맺을 때 나타나는 내 모습은 어떨까.


앞서 말했듯이 타인에게서

가장 먼저 비치는 내 모습이 차가움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낭패를 많이 보았다.


4가지가 없어 보이거나 예의가 없어 보인다는 둥

오해를 알게 모르게 많이 샀으며,

차가운 이미지는 사람을 사귀는 데 있어서

별 도움이 안 되는 거였다.


결국 득 보다 실이 더 많은 케이스였으며,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을 품고자

성격을 개편하기로 마음먹었다.




Hi, 전 노~라에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푼수 !


나처럼 디폴드 값이 차가운 인상의 소유자가

진입장벽이 낮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억지로 푼수끼를 생산해 내야 했던 것이다.


차가워 보일 바에야,

웃음이 헤픈 사람이어도 좋으니

뭇웃음을 아끼지 않는 푼수녀가 되기로 했다.


+

또한 내가 정말 못 견디는 상황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어.색.함. 이다.


무도 짤은 없는 게 업숴


어색한 침묵의 공기가 주변을 맴돌면

정말이지 산소가 없는 것처럼 숨을 못 쉴 것만 같다.


침묵이란 보통 두 가지의 경우가 있는데,

1. 편안한 관계에서 오는 자발적인 침묵과

2. 어색함에 자꾸 공백이 찾아오는 ‘...(dot)’한 침묵.


내가 말하는 불편한 침묵은 단연 후자다.

그래서 이 침묵이라는 어색한 살인마를 깨고자

어느 순간부터 ‘넉살’이라는 것이

부쩍 늘어버렸다.


그런데 이 넉살은 매우 도움이 된다.


오지랖 넓은 나에게

‘넉살’은 사람을 쉽게 사귀는 데 좋은 재료였으며,

타인에게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나는

넉살 좋은 사람이 딱 제격이었다.


넉살은 인간관계에 있어서

아주 유용한 도구이다.




3단계 : 차분함

지구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 핵이다.

핵은 중심 역할을 하듯이 이 단계에서부터는

오롯이 나 자신, 나의 정체성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핵에도 ‘외핵’과 ‘내핵’이 있다.

내 마음의 외핵 단계에는

어떤 모습이 자리하고 있을까?


맨틀보다는 깊지만, 내핵보다는 가벼운 상태.

타인을 의식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닌

내 본연의 모습에 집중한 상태.


(사진출처 : istock)

바로 차분함(calm down)이다.


나는 사람과 어느 정도 친해졌다 싶으면

푼수끼에서 차분끼로 변한다.


나는 사실 텐션이 낮다.

물론 흥에 올라 UP 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차분한 텐션이다.


어릴 때는 대개 그렇듯이

외향적인 태도가 사랑받는 성격이라고 생각해서

억지로 텐션을 끌어올리며 생활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 행동은

마치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는 느낌이었다.

나는 나에게 딱 맞는 옷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내 감정이 어떤 텐션인지를 찾아야 했고,

결국 차분하고 고요한 상태값이 가장 안정적인

내 모습이라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그런데 이 차분함은 차가움과 ‘결’이 비슷하여

친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접근하기가 어렵거나

어려운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먼저는 푼수한 모습이 마중 나온 후,

관계가 어느 정도 형성이 되고 나면

나는 그제야 본래 차분한 모습으로 되돌아온다.


(사진출처 : istock)

Focus on me.

관계가 편해지는 안정기에 접어들고 나면

나는 내 본연의 텐션에 집중하게 된다.




4단계 : 진지함
내안의 나를 찾아 떠나는 중

내 마음의 내핵.


내 내면의 가장 밑바닥에 있어서

잘 나타나지 않고 웬만하면 타인에게

내비치려고도 하지 않는 상태.


오롯이 혼자 있을 때만 발현되고

누구에게도 편하게 내비치지 못하는 내 모습.


그것은 바로 ‘극도로 진지한 나’이다.

내 마음의 심해에는

일명 진지충이 자리 잡고 있다.


밥 뭐 먹을지 고민하는 게 아님. 삶의 이유에 대한 고민 중.


생각이 늘 무겁고 진지했던 나는

제 나이에 해야 될 고민보다

인생을 오래 산 노인과도 같은 고민을

많이 하고 지내왔다.


예시로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인간실존에 대한 고민과

삶의 이유에 대해서 끊임없이 계속 질문해 왔다.


이런 생각들은

현재의 삶을 집중하면서 살기에는 방해요소가 되어

‘현재’의 것들에 집중할 수 없었으며,

그 순간의 시간들을 낭비하고 살아왔다.


또한 모든 사물과 현상들을 마주할 때에도

깊이 고찰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생각이 끝을 달리면 궁극에 달해버리는 것처럼,

나는 모든 것에 있어서 끝을 생각하는 버릇 때문에

순간의 의미를 즐기지 못하고 항상 번뇌했다.


‘어차피 죽을 거 왜 살지?’

‘모든 것은 다 소멸되어 버릴 텐데..’


결국 덧없이 소멸 돼버릴 ‘끝’을 생각하면

사라질 것들이 돼버리는 ‘과정’이라는 것에 대해

노력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다행히도

자연스레 무거운 생각들을 걷어내게 되었고,

현재라는 삶의 소중함을 배우게 되었다.


‘순간’과 ‘지금’이라는 가치를 깨달은 나는

최선을 다해서 살려고 노력 중이다.


.

.

모쪼록 이러한 딥한 성격 때문에

이런 나의 뻘소리도 받아줄 수 있는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기게 되었다.


물론 아쉽게도 이런 진지함을

내뿜을 수 있는 존재를 아직까진 만나지 못해서

나는 계속 이 공간에 와서 내 마음을 적고,

소리치고, 내뱉게 된다.


갖고 있는 생각들이 고이고 고이다가

썩은 물이 되지 않도록

순환할 어딘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렇듯 ‘극도의 진지충’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나는,


소소한 이야기에도 서로의 눈을 마주치며

깊이 있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영혼의 친구가

너무나도 시급하다.




번외)


사실 서두에 언급했던 것처럼,

이 글을 쓰고 싶었던 데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었다.


상대방이 시답잖은 조크를 날렸을 때

민망해할까 봐 웃어주었더니

“재밌어요?” 라고 되묻는 황당한 말을 들었을 때나,


어색한 분위기를 무마하려고

억지 텐션 끌어올렸더니

“왜 이렇게 신났냐” 는 찬물 끼얹는 말을 들었을 때도,


타인을 위해서 배려했던 내 모습이

조금은 우스꽝스럽고 가벼워 보이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겠다, 싶은 거였다.


그렇다고 다시 무게 잡고 행동하자니

있어 보이는 척하는 내가 별로이기도 하고,

내가 상처받을 까봐 상대를 냉소적으로 대하자니

이것 또한 타인의 기분이 나쁠 것 같고.


나름 여러 가지

고민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가벼움과 무거움 그 사이

어딘가의 타협점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차분’하면서도 때로는 ‘푼수’같은

양면성이 존재하는 지금의 내 모습으로 빚어졌고,

이렇게 상충되는 두 단어가 공존하는 나를

어딘가에 설명해 놔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 나 편하자고 쓴 글이지만,

타인을 위해 베푼 배려를 왜곡받고 싶지 않아서 쓴

나의 억울함과 하소연일지도 모르겠다.



이 모습도 나 이고

저 모습도 나 이니

부디 오해 마시라는 차원에서..


the end.


(기나긴 글에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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