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오르다만 계단
처음. 계단은 적막했다. 계단을 딛는 발이 차가웠다. 올라가기에 급하지는 않았다. 난간 없는 계단을 오르려니 먼 곳을 볼 수 없었다. 차가운 계단만 내려보고 계속 올랐다. 샛별이 수십 번 뜨고 졌다.
« 얼마나 올랐을까? »
원숭이 한 마리가 내려온다. 유령-건축가에게 말한다. 위에는 천국이 있다고. 유령-건축가의 마음이 툭 하고 내려앉는다.
« 내 계단이 아니다. »
유령-건축가는 등을 돌려 계단을 내려간다. 아래엔 땅도 보이지 않는다.
원숭이가 꼬리로 유령-건축가의 귀를 막는다. 유령-건축가는 귀를 뽑아 버린다. 그리고 내려간다.
원숭이가 꼬리로 유령-건축가의 입을 막는다. 유령-건축가는 혀를 뽑아 버린다. 그리고 내려간다.
원숭이가 꼬리로 유령-건축가의 눈을 막는다. 유령-건축가는 눈을 뽑아 버린다. 그리고 내려간다.
원숭이가 꼬리로 유령-건축가의 머리를 잡아당긴다. 유령-건축가는 드디어 그 꼬리를 잡아 잘라 버린다.
원숭이는 도망가며 외친다. 순결한 자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더 이상 적막하지 않다.
원숭이의 « 해야한다 »가 계단에 메아리친다.
유령-건축가는 머리만 간직한 채 그 계단을 빠져나온다. 땅을 밟으니, 세계는 다시 적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