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조져지는 건.....
아빠 닮아 동체시력이 좋은 딸은 게임을 할 줄 아는 나이가 되자 ‘링크의 사격 트레이닝’을 모조리 클리어해 놨다. 사격 트레이닝이라길래 아기자기한 게임인 줄 알았건만, 흉흉한 마을 배경에 뼈다귀 괴물이 정신없이 쏟아지고 타깃은 너무나 빨리 움직여서, 정작 게임을 하려고 산 나는 스테이지 1도 못 깼다. 그런 게임을 하루 30분의 제한 시간에도 딸은 모든 스테이지를 다 깨 놨다. 이 ‘링크의 사격 트레이닝’의 주인공 링크는 사실 ‘젤다의 전설’이라는 다른 게임의 주인공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링크의 이름을 젤다로 착각하곤 한다. 링크를 가리키며 “얘가 젤다죠?”하는 인터넷 밈도 있으니까. 여하튼 우리 애들은 이 게임 덕분에 링크를 링크로 제대로 알고 있었고, 링크의 트레이드 마크인 모자 비슷한 걸 뒤집어쓰며 곧잘 링크 흉내를 냈다.
이날도 딸은 캔버스 에코백을 뒤집어쓰고 진공청소기를 든 채 아빠 앞에 등장했다.
“나는 링크다.”
누나의 모습을 지켜본 동생이 이에 질세라 후다닥 다른 에코백을 뒤집어쓰고 왔다. 아이들의 에코백은 학교에서 만들어온 거라 어설픈 그림과 ‘담배 싫어요’ 등이 그려져 있었다.
“링크를 도우러 왔다!”
아빠 앞으로 청소기와 빗자루 따위를 들이밀며 사냥을 하겠다며 달려오자, 아빠는 코웃음을 한 번 친 다음 무기형태를 갖춘 아무거나 집어 들었다.
얼마 전 직접 욕실 공사하고 한구석에 치워둔 실리콘 총이었다.
아빠가 실리콘 총을 집어 들고 아이들을 향해 달려들자, 아이들은 ‘꺄아아-’ 소리를 내며 계단을 쿵쾅쿵쾅 뛰어올라갔다.
나는 부엌일을 하다가 그 모습을 지켜보며 그저 즐겁게 웃었다. 싸움 구경은 언제나 재밌다. 우리의 링크와 그의 부하는 아빠를 피해 다시 일층으로 내려와서,
“두두두두두두-.”
반격의 주둥이 공격을 퍼부었다. 딸의 손에 들려있던 진공청소기도 ‘부우-’ 하고 작동음을 냈다. 아들의 우렁찬 ‘덤벼라!’ 소리까지. 아우 진짜 전쟁통이네.
그러나 결국 아빠에게 반격당해 링크팀은 와해됐다.
그렇다. 기세 좋게 덤벼들지만 언제나 조져지는 건 아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