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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제 Sep 07. 2023

- 물 떠다 줘 -

발주처의 불만


침대에서 일어나기 귀찮았던 남편은 딸에게 물을 요청했다.


“딸내미~, 물 좀 떠다 줘.”


아빠의 목소리에 비척 비척 침대에서 일어난 딸은 부스스한 얼굴로 “물...?” 하고 대답했다. 때맞춰 나미가 나타나 딸의 다리에 턱을 비비며 아양을 떨었다. 딸은 나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나미야. 니가 나 대신 아빠한테 물 떠다 주라.”


아빠 앞에서 대놓고 나미에게 심부름 떠넘기기를 시도했다.

대범한 넘기기 시도에 아빠는 어이없어했다.


“하청을 주면 하자가 생겨! 원청에서 해결해야지!”


회사에서나 쓸법한 단어를 사용하여 문제점을 꼬집었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그냥 듣기만 해서는 ‘원청’, ‘하청’, ‘하자’라는 이 세 단어의 뜻을 미뤄 짐작하기 어렵다. 그 단어들은 그대로 딸의 오른쪽 귀에서 왼쪽 귀로 지나쳐 나갔다.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딸은 울어대는 나미를 보며 “배고파?” 따위를 웅얼대다가 자동급식기 버튼을 눌러 밥그릇을 채워주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불속으로 꾸물대며 들어가는 딸에게 아빠는 뭐라 뭐라 더 버럭대기는 했지만, 우리의 소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꿀잠에 빠져 들었다.


“쟤 왜 일어났는지도 까먹은 거야.”


그냥 한 번 찔려보듯 한 말이지만 남편은 내심 물을 떠다 주길 기대했건만, 잠기운에 딸은 일어난 이유도 잊어버렸다. 기어이 아빠는 침대에서 일어나 물을 마시러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상황이 재미있어 소리 내 웃었다.

다음날 딸은 “아빠가 뭐라고 한 거야?” 하고 물었다.


“아빠가 너에게 심부름을 시킨 게 원청이고, 네가 나미에게 넘기는 건 하청이야. 그리고 나미가 물을 제대로 떠 올 수 없겠지? 문제가 생기는 걸 하자라고 해.”


어제 상황에 빗대어 설명해 주었다. 설명은 들은 딸은 그저 “그렇구나.”하고 만다. 이해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뭐 어떠하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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