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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제 Aug 21. 2023

- 구럭 -

재미있는 우리말

교복은 항상 크게 산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더 자라겠지 하는 기대심리 때문에 한 사이즈 이상은 넉넉하게 고른다. 내가 중학교 입학할 때도 그랬고, 고등학교 입학 때도 마찬가지였다. 엄마의 기대와는 다르게 고등학교 때는 거의 자라지 않아서 졸업할 때까지 몸에 맞지 않는 교복을 입고 다녔다.

그러한 옷 상태를 벙벙하다, 헐렁하다 등으로 나라면 표현하겠지만, 엄마는 ‘구럭 같다’고 말했다. 어려서부터 들어와서 뜻은 몰라도 어감만으로도 대충 알아듣고 그러려니 했던 말, 구럭.

남편이 옷을 크게 입었길래 나도 모르게 “뭐야, 옷이 너무 구럭 같아.”하고 말했다가, 남편이 그게 뭐냐고 물어왔다.

그러고 보니 나도 정확한 의미는 몰랐다. 그제야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새끼를 꼬아 만든 그릇이나 바구니 또는 망태기’란다. 그러니까 볏짚으로 만든 장바구니 같은 건데, 옷으로 치면 사극에서 서민 아이들이 몸에 뒤집어쓰고 있는 볏짚으로 만든 포대자루를 생각하면 된다. 몸을 감싸고도 남는 포대자루는 허리 부분에 대충 새끼줄로 묶어 벗겨지지 않게 한다. 비가 올 땐 우의로도 쓰고 겨울엔 외투로 요긴하게 쓰였다. 구럭이란 말이 엄마의 고향인 충청도 사투리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표준어였다.

요즘은 아이들 옷을 굳이 크게 사주진 않는다. 예전처럼 옷이 비싸지도 않고 물려줘야 할 일도 없다. 볏짚으로 새끼를 꼬을 일도 없고, 망태기나 구럭이 쓰일 일도 더는 없다. ‘구럭’ 같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들은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 단어를 쓰고 가르칠 것이다. 커다란 지푸라기 포대자루를 뒤집어쓴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잊혀지기엔 재미있는 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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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과 궁상사이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일상툰입니다.

매주 월(정기) 목(부정기) 업로드하여 주 1-2회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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