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제 Aug 10. 2023

- 노묘 진료 일기 -

고양이 키우기 힘들다.


나미에게 치아 문제가 생겼다. 잇몸이 심하게 부어서 조금만 건드려도 피가 났다. 자연 치유될 수도 있을까 싶어 조금 시간을 두고 지켜봤는데 좋아질 기미가 없어 동물병원에 데려갔다. 전년도 은단이도 비슷한 증세로 이빨을 두 개나 발치했다.


수의사는 보자마자 발치가 필요하다고 수술날짜를 잡아주고는, 검사를 미리 하고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기본 피검사를 하기 위해 나미는 검사실로 들어갔고 나는 남편과 대기석에서 기다렸다.

대기석에 앉아 있으면 보호자와 동물환자들이 계속 들어온다. 대부분은 개인데, 작은 개들이 많아서 견주 품에 안겨 있다. 가끔은 주변을 보고 앙칼지게 짖기도 하는데, 주인을 자신 등에 업고 까불까불하는 모습이 꽤 귀엽다. 개주인은 열심히 품에 안은 개를 달래거나 만져주며 기다린다. 케이지가 들어오면 대부분 그 안에는 고양이가 있다. 고양이 주인은 케이지를 내려놓고는 스마트폰을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검사도 검사지만, 진료 차례를 기다리는데도 항상 대기가 길다. 한 장소에서 한 시간쯤 앉아있다 보면 다들 조금씩 말을 튼다. ‘강아지 이름이 뭐예요?’, ‘고양이는 어디가 아파서 왔나요?’ 나는 옆 자리 사람과 두런두런 말도 하곤 하지만 남편은 고양이얼굴이 그려진 새로 산 티를 입고서-누가 봐도 고양이 집사인데-뚱한 얼굴로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긴 대기 끝에 결과를 들으러 다시 진료실에 들어갔다. 검사 결과가 다 좋은데 하나가 문제란다. pro-BNP 수치가 좋지 않다. 심부전이 의심된다고.


나미는 평소 활동량도 많고 잘 먹고 잘 잤다. 조금 비만이긴 하지만 높은 곳도 단번에 올라갈 정도로 잘 날아다닌다. 양치도 잘 받아서 이빨문제도 금방 눈치챘다. 그런데도 이렇게 소리 없이 병이 찾아온다. 나미는 다시 검사에 들어갔다. 갑상선 쪽 문제를 함께 확인하기 위해 다시 피검사를 했고.(이건 초반에 뽑은 혈액으로 하기로 했다.) 심장은 초음파를 봤다. 초음파라기에 내가 임신했을 때 받은 것처럼 간단히 몇 분 보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고양이 심장 초음파는 누워서 30분쯤 본단다. 그래서 고양이는 대부분 마취를 하고 시행한다. 그런데 나미는 순해서 괜찮을 거 같다며 의사가 마취 없이 진행했다. 진료 시작과 끝에서 모두 나미가 얼마나 얌전한가에 대한 선생님들의 칭찬이 쏟아졌다. 나미가 원래 이랬나? 하긴. 매일 은단이에게 하악질을 날리긴 했어도 사람들에게는 꽤 너그럽긴 했었다. 세 시간의 긴 검사가 끝나고 ‘노르웨이 숲’ 품종 특성상 발생확률이 높은 HCN(고양이 비대성 심근증)으로 진단받았다. 다행인 점은 극초기라서 별다른 관리는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다. 자주 수면 중 호흡수를 체크해 주라는 말과 함께 Taptempo라는 앱도 추천받았다.


그리고 또 일주일이 지나 대망의 나미의 발치일이 다가왔다. 되려 수술일이 되면 진료일보다 편하다. 아침에 맡겨놓고 오후에 데리러 오면 돼서. 수술도 잘 받고 다음 진료일도 예약하고 마취가 덜 깬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간다. 그 후로 한 달 정도는 매일 같은 일과였다. 하루 세 번 소독하고, 두 번 약을 섞은 습사료를 떠먹였다. 며칠마다 경과 보러 갔다. 별 탈 없이 한 달만에 통원은 끝났다. 우리 고양이는 말끔하게 나았고, 처리해야 할 불친절한 금액이 적힌 일곱 장의 영수증만 남았다.


작가의 이전글 - 경범죄 쓰리 콤보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