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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제 Dec 11. 2023

- 괜찮아 -

마법의 주문



내 인간관계에 큰 장벽이 생긴 이유는 고양이 때문이었다.

이 트라우마가 언제부터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옷에 묻어있는 고양이 털 때문에 사람과 근접해서 있는 게 너무나 불편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존재인, 털을 뿜어대는 짐승은 내 온몸에 털을 묻혀놨고, 고양이에 대한 편견이나 혐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꼭 나에게 고양이 털을 지적했다. 그래서 혹여나 누군가에게 털을 묻힐까 항상 거리를 조금씩 두었다. 어쩌면 인간에 대한 내 마음의 벽이었을지도 모른다.

남편은 굉장히 깔끔한 성격으로, 자신의 물건도 항상 줄을 세우는 사람이다. 그런 그가 내가 고양이를 키운다고 말했을 때 아무렇지 않게 “괜찮아.”라고 말했다. 옷에 털이 많이 묻어서 매번 내가 테이프로 열심히 떼어주었는데, 되려 남편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렇게 그가 내 영역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왔다.

연애를 거쳐 결혼을 하고 첫째가 생겼을 때도 그랬다. 주변에서 고양이를 다른 데 보내라고 아기랑 같이 키우지 말라고 참견했다. 그런 걱정을 내비치자 남편은 “괜찮다.”고 했다. 원래 키우던 건데 어쩌냐고 그냥 나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였다.

남편은 자기 사람으로 나를 받아들인 후로 웬만한 일은 괜찮다고 넘겼다. 많이 먹어서 배가 나와도, 저녁밥을 태워도, 새 차를 긁어먹어도, 신기할 정도로 이쯤 되면 뭐라 할 만한 상황에도 괜찮다고 했다. 아이들 실수인 줄 알고 혼내려던 것도 내가 한 거라고 하면 넘어갈 정도다.

그런 남편이 운전 중 후진하다 아주 살짝 차가 찍혔는데, 본인 실수에 하루 종일 괴로워했다. 되려 내가 괜찮다 괜찮다, 찍힌 부위 보이지도 않는다 달래야 했다. 얼마 전엔 손에서 휴대폰을 떨궈 액정이 망가졌다. 남편은 자신의 손을 계속해서 나무랐다. 남 욕하듯 자기 손을 욕하는데 자기 객관화가 너무나 과하다 싶어서 옆에 있던 나까지 기가 빨렸다.


“액정 얼마 안 비싸. 수리는 내가 하면 되고.”


바로 쇼핑몰을 뒤져서 액정부품을 주문했다.


“내가 왜 그랬지???”


남편은 계속 혼잣말로 셀프 디스를 이어갔다.


“일단 출근할 때 써야 하니까 내 폰이랑 바꾸자.”


우리 집 기계 담당은 나라서 내 아이폰을 초기화하고 남편 폰으로 설정해 줬다. 나는 수리하는 동안 전에 쓰던 블랙베리를 사용하기로 했다. (블랙베리는 키보드 달린 휴대폰으로 우리 집에서 나말고는 쓸 줄 아는 사람이 없다.)


“이 손이 문제야! 이 걸 왜 떨어뜨리냐고.”

“괜찮다니까.”

“안 괜찮아.”

“내가 떨어뜨렸으면 화 안 냈을 거면서.”

“네가 하는 건 괜찮아.”


딱히 너그러운 성격도 아니고 오히려 화도 많은 사람이면서 괜찮다는 말이 쉽게 나올까. 설정을 마친 남편에게 내가 쓰던 폰을 건네주자 폰 뺏어서 미안하다고, 바꿔줘서 고맙다 한다. 그래서 나도 “괜찮다”고 했다. 사실 나도 그렇다. 남편이 어떤 실수를 해도 보통은 그저 괜찮다. 내가 조금 귀찮긴 하지만 누구를 다치게 한 것도 아니고 엄청난 손해를 본 일도 아닌데 뭐 어떠하랴. 괜찮다고 하면 다 괜찮아진다. “괜찮아”는 우리 사이의 사랑이 담긴 마법의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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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과 궁상사이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일상툰입니다.

매주 월(정기) 목(부정기) 업로드하여 주 1-2회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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