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말하는 ‘맛’은 무슨 맛일까? 적어도 돈을 많~이 벌기 위해 교사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때 안정적인 급여와 연금은 좋은 혜택으로 작용했지만, 시대가 많이 변했다. 연금은 깎일 만큼 많이 깎이고, 급여도 안정적이라고 하지만 대기업 직장인에 비하면 초라하기만 하다.
그럼 왜 이 직업을 택했니?
학생을 가르침으로서 나오는 보람과 명예?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딱히 이것 말고는 마땅히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형식적일 것인가, 진심일 것인가 하는 이 대답은 사람 by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적어도 진심으로 대답하는 특수교사가 많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지금도 누군가 나에게 이 질문을 한다면, 선뜻 입이 안 떼 진다.
앞에서 느꼈듯, 특수교사인 나는 교사로서의 자존감과 자부심이 낮다. 높이가 어느 정도 낮냐면, 직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나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과분하게 느껴질 정도다. 타고나기를 내향적이며 자신감이 부족한 나라서 그런 것이라 믿고 싶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씁쓸하기도 하다.
가뜩이나 '자존감' 낮은 나는 얼마 전 스승의 날을 맞이했다. 김영란법 이후로 어떤 선물도 주기 어려운 분위기가 되었다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이제는 그렇게 감흥도, 관심도 없다.
중증의 장애학생 비율이 많은 우리 학교에게 스승의 날이란, 소박한 자축 기념일 같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한 학급에 시계를 보거나 달력을 보고, 기념일을 아는 학생은 몇 명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학생 스스로 스승의 날을 알고 교사에게 축하 한마디 하는 학생은 희소했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교사가 수업과 관련지어 카네이션을 만들거나 편지를 쓰게 하여 전달해 주는 분위기로 이어진다. 이것만으론 부족하니 교감, 교장 선생님께서 '선생님들의 노고가 많으십니다.' 하며 묵묵하게 애쓰고 있는 우리를 위해 따뜻한 위로를 건네신다. 학부모회에서도 축하하고 감사한다는 의미로 꽃바구니를 전달해주시기도 한다. 가끔, 졸업한 학생이 시간 내어 학교로 찾아와 인사드리러 오는 경우가 있다. 흔한 경우가 아니기에 '누구냐'며 신기하고 부러운 듯 쳐다본다. 가르친 학생이 시간이 흘러도 내 이름을 기억해 주는 것만 해도 소중함을 느끼는 특수교사이기에.
특수교사로서의 '자부심'은 어딘가로 던져버리고 다시 찾는 중이다. 같은 특수교사가 이 글을 보면 "쟤 왜 저래?" 이럴 수 있겠다마는, 나 혼자만이 느끼는 감정은 아닌 듯하다. 오죽하면 미디어에 '특부심'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특수교사로서 자부심 좀 가지라고.
내가 아는 사람 중에 특수교사로 일을 하다가, 일반 교과 교사로 임용되신 분이 계시다. 그러니까 그는 특수교사 경험도, 일반교사 경험도 둘 다 가진 분이다. 그에게 물었다. 특수교사했을 때와 차이점이 무엇이냐고.
가르치는 보람이 더 크죠
? 아, 네 그럴 수 있죠
공감하는 척하며 속으론 다른 생각을 했다. 뭔가 특수교사의 지위를 위협받는 것 같아 방어기제가 발동하였다. '당신은 아직 제대로 된 보람을 못 느껴보셨네요' 하면서 말이다. 그러곤 얼마 지나지 않아 반전이 일어났다. 그 사람의 말을 뒤에서 껌처럼 씹어놓고, 나도 그분처럼 다른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어진 것이다. 참으로 줏대 없는 놈이 아닐 수 없다.
국어, 사회, 수학 등 일반 교과는 뭔가 전문성이 넘쳐 보이고 멋져 보였다. 누군가 내 직업을 물을 때 '수학 교사요'라고 대답하면 '와 수학! 멋지세요' 하며 감탄하면 말라비틀어진 내 자부심에 물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에 비해 특수 과목은 일반인들이 보기엔 전문성이 도드라지지 않았다. 남들이 잘 알아주지도 않는 것 같고, 내세울 것도 별로 없어 보였다. 당시 3년 차인 나는 ‘자부심은 남의 시선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매너리즘 핑계를 대며 투정 부리듯 이유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직을 해보자'
마음을 먹는 순간 심장이 뜨거워졌다. '길을 한번 틀어보자. 못할 거 있어? 할 수 있어!'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충동적이지만 한번 결심하면 불도저처럼 추진했던 나였다. 다시 임용고시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언가에 홀린 듯 미친 듯이 조사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의 벽을 마주했다. 용기만으로, 패기만으로, 열정만으로 가능한 사이즈가 아님을 깨달았다. 한 여름밤의 꿈처럼 ‘특수교사나 하자’ 하고 쓴맛을 다시며 수긍했다.
이후 시간이 흘러 특수교사로서의 자존감과 자부심에 새싹이 트고 있음을 느낀다.
멋들어진 것에 자존감과 자부심을 느끼는 것은 잘못된 생각임을 깨달았다. 일상을지지고 볶다가 기념일만 보란 듯이 챙기면 ‘평상시에 잘하지’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처럼, 학생들은 변함없이 잘하고 있었다.
서툴지만 나에게 인사하려 애쓰고, 어렵지만 나의 수업에 참여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수업 중 별 것 아닌 시범을 보여도 학생들 눈엔 대단한 것으로 비추어졌다. 그들에게 나는 영웅이나 다름없었고, 이미 충분히 나를 선생님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주고 있었다.
가르쳐도 티가 안 날 것 같은 학생은, 속도는 느리지만 천천히 변화하고 있었다. 학교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았던 금쪽이 같은 학생은, 시간이 흘러 큰 사고 없이 학교생활을 잘하고 있다. 그간의 우리 노력이 헛되지 않음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