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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쌤 Jul 15. 2023

언제까지 특수교사 할 거야?

Part 2. 특수교사 한샘의 비밀 교단일기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 했다던가?

하지만 나이가 하나, 둘 먹어가며

힘없이 꺾일 것 같다.


초심이란 것이 꺾여간다.


노량진 공기를 맡으며 간절히 꿈꿨던 교사, 평생직장이라며 철밥통에 안도했던 나. 그 시절이 무색할 만큼 나는 어느새 변해있었다. 이렇게 걸리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느새 교사란 직업은 나에게 그저 그런 직업이 되어버렸다. 대체 어떤 시간을 보내온 거야? 나는 분명 가르치는 보람을 느끼고 있다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지 않았던가?


특수교사라는 직업이 싫어서, 질려서,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애써 믿어보고 싶다. 특부심이 가득한 특수교사에게 죄짓는 것 같아 고개를 못 들겠다. 지금도 특수교사가 되기 위해 밤낮으로 공부에 매진하는 예비 선생님들에게는 할 말이 없다. 기간제 교사를 하며 너 같이 안정적이고 평범한 삶을 부럽다고 하는 사람의 열등감을 들쑤시는 것 같다. 그냥 그저 한 때 지나가는 푸념이라고, 100세 시대에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것은 흔한 생각 아니냐고. 요즘 너도나도 N잡 한다고 하던데, 그런 유행을 좇고 싶어 하는 거 아니냐고 귀엽게 봐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잊을만하면 또 찾아오는 그 질문.


'언제까지 특수교사 할 거야?'


사실 나에게 이 직업이란, 내가 온전히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장애를 가진 형이 있어 자연스레 이 직업을 알게 되었다. 장애인과 함께 사는 환경은 이 직업으로 '드루와' 하는 듯이 이끌어주었다. 마치 너의 자리이고, 너의 숙명이며, 너의 천직이라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 운명에 미친 듯이 홀려 앞만 보고 달려왔다. 때로는 그 운명이 거머리처럼 피를 빨아먹는 듯한 느낌에 떼어내고 싶었지만 그게 내가 사는 동기고 이유였다. 그렇기에 나에게 특수교사라는 직업은 선택하고 말고의 문제는 아니었다.


나에게 진심으로 묻는다. 넌 특수교사를 언제까지 할 거냐고. 이대로 계속할 수 있겠냐고. 정말 가능하겠냐고. 확신이 안 들어 다른 사람에게도 물어본다. 너도? 나도! 그렇게 개인적인 고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대나무숲에 하소연하듯 글로 외쳐본다.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이 직업을 왜 마음 한구석에 사직표를 간직하고 있는 것인지 어디 변명이나 늘여놓고자 한다.



선생님, 준비되셨어요?
하나~둘~셋!


무슨 일이냐고? 휠체어에 앉아있는 학생을 번쩍 들어 옮기는 일이다. 스스로 신변 처리가 어려운 중증 학생은 이렇게 옮겨야 하는 순간이 자주 온다.


셋! 하는 순간 온몸의 호흡이 멈추고 모든 감각기관이 한 꺼풀 벗겨지며 학생을 옮기는데 집중한다. 앙상하게 마른 학생의 몸은 생각보다 무게감이 느껴지고 축 쳐져있는 몸은 갑자기 발작하듯 힘이 들어간다. 하루에 몇 번에 걸쳐 주기적으로 옮긴다. 익숙하지만 할 때마다 고되다. 30대 펄펄한 남성인 나도 겉으론 센척하지만 피로한 일이다.

 

목적지 침대다. 나의 컨디션에 따라 멀기도 가깝기도 느껴진다. 교실에 침대가 있다는 것은 생소할 수 있다. 오해할까 봐 짚어주자면 일반 침대가 아닌 병원용 침대다. 당신이 상상한 그 침대가 맞을 것이다. 긴 형태의 테두리와 뭐가 묻어도 잘 닦이는 재질에 적당한 두께의 매트리스, 옆에는 혹시나 떨어짐 사고를 방지할 사이드 레일이 부착되어 있는... 그 침대 맞다.


침대로 옮기면 끝이 아닌 시작이다. 대소변 실수를 하여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소변보는 것을 지원해 준다. 조금 놀랬는가? 물론 커튼을 치거나 가림막을 설치하여 보호를 해준다. 아예 천장레일식 커튼으로 설치한 특수학교도 본 적이 있다.


신변 처리 지원은 수업만큼이나 중요하다. 하지만 이 지원은 안타깝게도 몸에서 앓는 소리를 내게 한다. 손목과 허리가 아프다며 학교가 일찍 끝나는 날은 병조퇴를 한다. 미뤄놨던 병원 예약을 가기 위해 어기적 어기적 기어 나오는 모습이다. 서로 한의원이 괜찮냐. 정형외과가 괜찮냐는 심심찮게 나오는 화두다.


하루 일과 중 다 같이 모이는 시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점심시간.


시끄러운 소리가 문밖으로 새어 나온다. 반찬투정하며 떼쓰는 학생, "안돼요 더 주세요" 하며 버티는 학생을 붙잡고 지도하는 선생님, 앞뒤로 반동을 주며 몸을 흔들어 의자를 덜컹덜컹 거리는 학생. 분위기만 봐서는 흡사 시장통에 가깝다.


그 시끄러운 현장 속에 내 눈을 사로잡는 것이 있다. 바로 손목 보호대.


처음엔 유난 떤다고 생각했다. '별것도 아닌 걸 가지고...' 시간이 흐르고 이해하는 방식이 뒤바뀌었다. 그것은 유난히 아니라 수단이었다. 건강을 지키기 위한 수단. 우리의 건강은 곧 학생의 지원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운동선수가 선수 생활을 건강하고 오랫동안 하기 위해 보호대를 착용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한 번은 수업을 위해 다른 교실 컴퓨터를 만지다 지난 검색어에 '손목터널증후군'이 검색되어 있는 걸 발견했다. 언젠가 나에게도 올지 모르는 그 통증이 가슴으로 침투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라렸다.


다른 경우도 있다. 휠체어를 타지 않더라도 중증 장애학생이면, 역시나 전반적 지원이 필요하다. 화장실 가고 싶으면 화장실을 가면 그만이지만 특수학교에서는 당연한 논리가 아니다. 바지에 대소변을 지려도 화장실 갈 필요성을 못 느끼는 학생이 있으며,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표현이 어려운 학생도 있다.


그래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시도한다. 말하기 어려운 학생은 말이 아닌 다른 대체표현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우리는 그런 학생을 늘 예의주시한다. 조금이라도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느낌이 들거든 화장실을 데려간다. 또는 시간을 정해 주기적으로 화장실을 데려간다. 그렇게 우리의 예측이 맞아떨어지면 YES!! 를 외치며 약간의 짜릿함과 안도감이 든다.    

 

비밀스럽고 난감하기도 하다. 대소변 실수로 인해 속옷을 갈아입히는 일 때문이다. 장애 학생의 성비가 남성이 많고, 특수교사와 특수교육실무사의 성비는 여성이 많기 때문에 주저하는 마음이 앞선다. 나이가 어린 초등학생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중고등학생으로 넘어가면 생각과 시선이 달라진다. 처녀인 특수교육실무사분이 나에게 물었다. 젊은 여자 선생님들은 이런 걸 어떻게 하냐고. 한 마디로 대답해 줬다. 어쩔 수 없어요.라고 말이다. 무책임한 말이지만 모든 남학생을 남자 선생님이 할 수는 없다. 인권이란 카드를 내밀긴 어려운 현실이다.


남성인 나도 처음 마주했을 때 조금 놀랬다. 두 눈으로 볼 수밖에 없는 성기 노출과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냄새는 어쩔 수가 없다. 이것은 일이다. 이것 또한 교육이다. 하며 마음을 쥐어잡는다. 어쩌면 벌거벗은 학생 본인은 수치스러울 것이라며. 나도 당신한테 이렇게까지 도움 따위 받고 싶지 않은데 어쩔 수 없는 거라며 표정이 얘기해 주는 것 같았다. 학생에 대한 예의와 매너라 생각하며 필요한 곳만 시선을 둔다. 특수교육에서의 신변 처리는 지나칠 수 없는 정거장 같은 것이다.


자, 그럼 다음 변명은?


자리에 앉으세요!

  

특수교사라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이 말!

수업하면서 손가락에 들 만큼 자주 하는 말인 것 같다.


자리에 올바르게 앉아있는 것이 무슨 능력인가 싶겠냐만, 현장에선 대단하고 감사하며 소중한 능력이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대단한 능력이다. 일반학생도, 일반성인도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기는 어려운 일이지 않은가? 지금 이 순간 키보드를 두들기는 나도 당장 소파에 가서 눕고 싶은 심정이다.     


수업이 어수선해진다. 자리에 앉아 수업하는 상황에서 자리에 앉지 않는 것은 참으로 어수선함으로 번져진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이 그러면 더욱 그렇다. 뒷담화 같지만 사실이다. 수업 시간에 자리에 앉지 않는 것은 수업 흐름을 툭 끊어버리곤 한다. 이 끊어진 흐름은 다시 잇기까지 교실에 있는 모든 이가 집중해야 한다. '어디까지 했더라?' 기억력을 더듬어 본다. 재빨리 제자리로 돌아오며 속으로 외친다.


'이제 좀 그만! 제발!'     


해마다 현장을 배우겠다는 교육실습생 선생님들이 온다.


일명 교생 선생님이다. 첫 1~2주 정도는 우리의 수업을 참관한다. 지금도 나는 이 부분이 신경 쓰인다. 그래도 명색의 선배 교사로서 으스대고 싶어 진다. 뭔가 잘 정돈된 수업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든다. 하지만 내 수업 시간에 학생이 착석조차도 안되면 뭔가 내 능력이 부족한 것 같아 속으로 열이 받기도 했다. 왜 저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파워 J인 나에게 계획되지 않는 시나리오는 나의 얼굴을 붉히게 만들었다.


얼마 전 충청권 모대학의 권위 있는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자리에 안 앉았으면 뭐 어때요? 어디서든 하면 되죠." 틀린 말은 아니다. 나 역시도 이 말을 지지한다. 그렇지만 반박심이 드는 말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말이라고. 당신이 현장을 알아? 탁상행정이라며 비웃음이 먼저 솟구친다. 나도 그러고 싶어. 근데 그렇게 못하는 이유가 수두룩해! 오은영이 와도 안될걸? 하며 말이다.


현장의 눈은 보수적이다. 자리에 앉아 수업하는 것은 마땅한 도리 같은 것이다. 착석하는 자세는 모범적이고 올바른 자세라 여기기에 나는 눈치가 보인다. 그것을 생각해서라도 일단 착석을 지도한다. 동시에 오기가 발동한다. 교사로서의 오기. 그래도 명색에 특수교산데. 정말 특별한 사유가 없지 않은 이상 이 학생을 앉히고 싶어 진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자리에 앉으라며 수도 없이 말했네.


앉히면 당장은 앉겠다만, 그새를 못 견디고 다시 일어나곤 한다. 반복되는 패턴에 준비한 수업을 다하지 못하거나, 착석 지도만 하다 수업종이 칠 때가 있다. 그래 그것은 그럴 수 있다. 수업이야 다음 시간에 하면 되고, 착석 지도는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니. 하지만 그것은 둘째치고 내가 힘들고 진이 빠진다. 수업이 끝나고 자리에 돌아와 털썩 앉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렇게 한다고 달라지긴 할까? 적당한 노력에서 안주하싶었다. 이 학생은 아무리 지도해도 어차피 안될 것이라며, 착석을 가르치기엔 너무 늦었어. 하며 말이다.




교사라고 하면 흔히들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특수교사의 모습은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모습과는 다를 수 있다. 멀끔하고 우아한 복장은 보기 드물다. 칠판을 가리키며 논리적이고 젠틀한 모습은 제한적이다. 적어도 내가 7년 동안 겪은 현장의 결은 생각보다 너저분하고 거칠다.   


그럼에도 나는 특수교육을 좋아하고 특수교사라는 직업을 애정한다.


아이들과 살을 맞대고 직접 소통하는 것에 재미를 느낀다. 순수한 대답에 흥미도 느끼며, 생각지 못한 포인트에서 튀어나오는 모습은 평생 소장감이라며 휴대전화에 저장하곤 한다. 학부모도 나에게 이 일을 파이팅 있게 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우리 아이가 하루 동안 학교생활을 무사히 마친 것만으로 감사함을 느낀다. 뭘 대단한 것을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김영란법이 없었으면 큰일이 날 정도다.    


신변처리든, 착석지도든 교육임을 확신한다. 같은 것을 반복하는 행위는 쌓아도 무너지는 모래성 같지만, 시간이 흐르고 헛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얘가 초5학년 때는 이랬는데, 중2부터 앉더라니까? 희희낙락하며 온마음으로 기뻐한다.


그렇지만 직업 특성상, 생각보다 많은 체력이 필요한 직업이기에 겁이 난다. 나는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경력이 20년 이상, 30년 이상, 정년까지 채우시는 선생님들을 보면 솔직히 존경스럽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너무 깊이 고민하지 않으려 한다. 일단 방학을 바라보며 열심히 해야지.  


이 직업이 나는 아직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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