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을 아름답게 채워가는 사람
잘 나가는 작가도, 유명한 셰프도, 중견기업 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것을 마주하고 꺼내보지 않으면 결국 성인이 되어서도 극복하지 못한 채로 멈춰있게 된다. 그것은 힘든 상황이 되면 발현이 되곤 하는데, 사랑하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기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만들기도 한다.
결핍은 결국 마주해야 한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이혼해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면, 내가 가진 결핍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예를 들자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할 때 톡 쏘듯이 부정적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나의 결핍이다. 내 습관이니 고칠 수 없다가 아니라 그것을 고쳐야만 결핍을 채우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받은 언어는 바꾸기 어렵지만 나는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것은 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거나, 변할 만큼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혼하는 가정이 많아졌다. 조금만 맞지 않아도 서로 따로 사는 것이 각자의 행복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일부 나도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 지점에서도 ‘둘 다’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혹은 그 타이밍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서로가 원하는 방향으로 양측 모두 노력했을까.
전에 했던 연애에서 사귄 지 3개월 만에 결혼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흔히들 말하는 고소득 전문직이었고, 그에 반해 부모님은 철물점을 운영하고 계셨다. 그 사람에 비해 난 평범한 직장인이었지만, 우리 부모님께서는 몇십 년 경력의 전문직으로서 사업체를 운영하고 계셨다. 사실 당시 나는 딱히 결혼 생각이 없었다. 나에게 결혼은 커다란 책임이자 많은 포기를 함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은 20대의 나에게 결혼이란 발목 잡힐 근거가 충분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결혼을 하고 싶어 했고, 결국엔 그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게 됐다. 하지만 고소득 전문직 아들을 둔 부모의 욕심은 컸다. 어떻게든 나와 내 부모님을 깎아내리려 했다. 안타깝게도 난 단 한 번도 어떤 이유로든 그의 부모님을 깎아내린 적이 없다. 난 오로지 그 사람만을 보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성장환경에서 부모로부터 받았던 인정을 놓지 못하고 결국 나를 제일 먼저 포기했다. 당시엔 아주 큰 슬픔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정말 감사하게 됐다. 누구보다도 사랑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스스로를 거대한 지옥에 집어넣는 일이었던 것이다. 그의 마음은 어린 시절 그대로 부모의 사랑을 받고 싶은 아이에서 멈춰있었다. 어른으로서 정신적 독립을 이루지 못한 채로.
이제 와서 내 마음을 이야기해 보자면 나는 그런 사람과 결혼하고 싶지 않았다. 결혼 자체도 신중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부모로부터 정신적인 독립을 이루지 못한 사람과의 가정생활이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정서적으로 완벽히 성장한 성인조차도 어떤 결핍에서 나아가지 못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 정도의 정신상태라면 나는 결혼과 동시에 이혼 도장을 찍었을 것이다. 지금 뒤돌아보면 정말 감사한 순간이다. 지금은 그냥 그가 본인의 결핍을 잘 메꾸고, 앞으로의 인생을 독립적으로 잘 살아나가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사랑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 아름다운 시간들이 흐려질 만큼 질려버린 마지막이었다.
결핍을 아름답게 채워가는 사람들은 그만의 분위기가 있다. 단단하고도 부드러운 그런 여유로운 태도. 외유내강이랄까. 누구나 결핍은 있지만 이를 어떻게 채워가느냐가 중요하다. 같은 결핍을 가졌더라도 그걸 토대로 더 성장해 나아가는 사람이 있고, 결국 인정하고 마주하지 못해 그 자리에서 멈춰버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결핍으로 스스로를 갉아먹는 사람보다는 전자가 되어 더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향유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