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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물의 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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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민정 Mar 25. 2024

물의 여왕 로마

분수의 작동원리와 역할

로마: 영원한 도시, 세계의 수도(Urbs Aeterna, Caput Mundi)

세상 모든 것은 시간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시간을 초월한 '영원'의 상태는 '세속'을 벗어난 신적인 무엇인가를 표현할 때 잘 쓰입니다. 이 '영원'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삶의 환경 '도시'를 수식한다면, 그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요?

대 로마 시인 티불루스(Tibullus)는 기원전 1세기에 처음으로 로마를 '영원한 도시(Urbs Aeterna)'라 부릅니다. 이 표현을 고대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Ovid)와 비르길(Virgil), 역사학자 리비(Livy) 등이 차용하며 로마를 상징하는 말로 자리 잡습니다. 트로이의 전쟁 영웅 '아이네이스'를 주인공으로 한 대서사시 <아이네이스>에서 시인 비르길은 로마를 "Imeperium Sine Fine"라고 묘사합니다. "끝없는 제국"으로 번역되는 이 말에 녹아 있는 도시에 대한 자랑스러운 태도는 화려하고 장엄한 기풍을 가진 로마를 찬양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전쟁과 파괴에 무너지더라도 로마는 다시 떠올라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실제로 수천 년이 흐른 지금에도 로마는 여전히 건재하여 이와 연관된 시와 이야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로마의 또 다른 별명은 '세계의 수도(Caput Mundi)'입니다. 로마제국은 고대 문명의 중심이었고, 그 영향력은 광범위했습니다. 제국의 수도인 로마는 정치, 문화, 경제, 군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 중부에 위치한 티베르 강(Tiber River) 근처에 있었으며, 전체 제국의 중심 지점으로 여겨졌습니다. 당대 로마 제국이 서양세계에서 가진 위상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의 여왕(Regina Aquarum) 로마와 분수의 작동 원리

'영원한 도시', '세계의 수도' 외에 로마를 부르는 또 하나의 별명이 있습니다. '물의 여왕(Regina Aquarum)'입니다. 로마 곳곳에는 놀라운 대리석 예술 작품들이 흩어져 있습니다. 특히 물이 흘러나오는 분수들은 도시의 장식물이자 쉼터로서 영원한 도시 로마를 더욱 놀라운 곳으로 만듭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그들의 도시 구석구석에 물이 흐르게 했고, 그들이 사는 이곳을 '물의 여왕'으로 불렀습니다. 로마인들에게 물은 신들의 선물이었으며 각 샘에는 수호신 '님프'가 있었습니다. 물은 삶과 위생에 필수적인 요소였을 뿐 아니라 고대 로마의 사회관계의 중심 요소였으며, 분수로 로마를 장식함으로써 지배자들은 자신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분수는 주로 마을과 도시에 마실 물과 세수용 물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맑은 물을 공급하기 위한 도시 인프라였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고대 로마의 공공 분수는 "모터 없이" 작동했으며, 대부분은 중력에 의해 작동되었습니다. 높은 곳에 있는 수원(水原)으로부터 물이 공급되었고, 높은 수로가 주변 언덕에서 도시로 물을 운반했습니다. 

로마의 물 공급 다이어그램: 수원에서부터 각 사용처에 이르기까지 (http://www.romanaqueducts.info/technicalintro/mainelements.htm)

골짜기를 가로지르기에 너무 깊거나 너무 큰 경우에는 '사이펀(siphon, 공기 압력을 이용하여 액체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데 쓰는 관)'이 건설되었습니다. 먼저 분배 탱크로 물이 흘러들어 갑니다. 분배 탱크는 일반적으로 '헤더 베이신(header basin)'이라고 불립니다. 파이프는 헤더 베이신의 반대편을 향해 골짜기로 내려가며 설치됩니다. 먼저 골짜기 바닥을 가로지르고 다시 올라가서 '수렴 베이신(receiving basin)'에 도달한 물은 거기서부터 다시 석조로 만들어진 수로를 통해 목적지로 여정을 이어갑니다.

사이펀 원리는 커피를 내리는 데에도 적용됩니다. 사이펀 커피메이커가 시중에 있기도 하고, 스타벅스 리저브 점이나 여타 커피 전문점에 가면 사이펀 커피메이커로 커피를 내리는 장면을 보고 마실 수 있습니다.
(좌) 프랑스 리옹의 브레벤느 수로의 일부인 브레벤느 사이펀의 수렴 베이신. (우) 2미터 이상의 높이를 유지하기 위해 아케이드로 지어진 수로의 예(이탈리아 로마베키 근처)


(좌) 사이펀의 원리를 나타내는 다이어그램 (우) 사이펀의 원리로 내리는 커피

중력을 사용한 길고 긴 수로 끝에는 도시의 상부나 빌라 근처에 위치한 분배용 분수대(Castellum Divisorium)가 건설되었습니다.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는 그러한 분수대에 대한 설명을 남겼는데, 그가 설명한 것과 다른 특성을 가진 분수들도 몇몇 발견되었습니다. 

분배용 분수대에서 흘러간 물은 납이나 테라코타 파이프를 통해 도로변에 위치한 분수, 목욕 시설, 장식용 분수(니미피아), 때로는 사적 사용자에게 이르기까지 각 사용처로 나눠져 흘러갔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마을의 물이 먼저 2차 분배처로 분할되어 거기서부터 사용자에게 흘러가기도 했고요.

프랑스 남부 론 강 하류에 위치,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건설된 님(Nîmes)의 물 분배용 분수대
요르단 제라쉬(Jerash) 주요 도로에 위치한 분수

이렇게 로마인들에게 매일 공급된 물의 양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고대 로마에는 수로시스템으로 하루에 약 5만 톤(약 38백만 갤런)의 물이 흘러 들어왔습니다도시로 흘러온 물은 높이가 있는 큰 저수공간에 저장되었습니다. 단 1미터의 높이만 되어도 충분한 수압을 제공하여 만족스러운 분수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분수로 유명한 로마이지만 사실 이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여 원시사회조차도 이러한 분수를 즐겼으며, 최근 연구에 따르면 마야 문명도 그랬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분수는 도시에 생기를 더하는 장식적인 요소로도 사용되었습니다. 동물이나 영웅의 동상으로 분수를 장식하여 도시의 아름다움을 더했습니다. 

그런데 장식적 용도와 같은 시각적 효과를 가진 도시 시설물에서 나아가 일종의 사회시설로서 역할을 했던 분수도 있습니다. 이런 분수는 16세기에 들어 근대적 도시계획 개념이 도시 조성에 도입되면서 등장하게 됩니다.


빨래터에서 분수로: 분수의 사회적 측면

시간이 흘러 중세 시대에는 로마가 건설했던 많은 공공시설물과 도시 체계가 파괴되고 정비되지 않은 채로 방치되었습니다. 그러다 르네상스 시대를 지나며 고도로 발전하는 기술들과 기계학의 관심으로 서서히 복구되기 시작합니다. 식스투스 5세, 그레고리 13세와 같은 통치자들의 노력으로 망가졌던 고가수로가 복원되고 말라있던 공공분수들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바티칸 도서관에는 특별한 벽화가 남아 있습니다. '모세 분수'를 그린 그림입니다.

바티칸 도서관의 '모세 분수' 벽화.

중앙에 모세상이 있고 아치 3개로 이루어진 분수는 천 년 이상 물이 공급되지 않았던 로마 구릉지대에 상징과 같이 들어섰습니다. 물이 없던 지역에 세워진 큰 분수는 지역 주민들의 목마름과 불편을 해결하기 위한 실용적 목적으로 계획, 건설되었습니다. 오른편에는 말들이 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는데요. 사람들이 마시는 물과 동물들이 마시는 물을 구분한 세심한 배려까지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이 분수는 주민들은 물론,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습니다.

로마의 모세 분수

 16세기, 모세 분수 근처 테르메 광장에는 또 하나의 사회시설이 들어섭니다. '빨래터'인데요. 식스투스 5세는 "더러운 세탁물을 깨끗하게 하려는 모든 이"를 위하여 이와 같은 야외 공공 세탁소를 마련합니다. 마씨모 대학의 프레스코화에는 당시 조성된 빨래터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날씨가 좋지 않거나 빨래를 하러 나온 여성들의 안전을 위해 뒤편으로는 지붕이 있는 공간까지 마련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시니 대학의 프레스코화. 테르메 광장의 빨래터가 그려져 있습니다.

식스투스 5세가 로마에 마련했던 여러 빨래터 중에서 가장 대규모는 당시 로마가 주력하던 양털산업을 촉진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당시 로마는 양털산업과 실크산업에 주력하고 있었고, 양털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대량으로 양털을 헹구는 시설이 필요했습니다. 이때 조성된 최대 규모의 빨래터가 18세기에 들어 분수로 재탄생하여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데요. '트레비 분수'입니다. 

트레비 분수

이번 글에서는 로마의 분수 시설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중세 사람들이 어떻게 물을 즐기고 활용하였는지 건축과 그림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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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프리다이빙- 망설이지 말고, 시작해 보세요! 


[알로하 프리다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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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로하프리다이브 홈페이지: https://www.kimwolf.com/freed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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