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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남자욱 Mar 19. 2023

직업병

그리고 스트레스

디자인이 잘 안 풀리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다.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커피를 사 온 후 아침 내내 여름 시즌 원피스를 디자인했다. 아침에는 머리가 맑다고 누가 그랬는지 모르겠다만 철저히 밤부터 새벽에 맞춰져 있는 내 두뇌는 고장이 난 듯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고, 바쁜 스케줄에 쫓겨 어느 정도의 러프한 스케치만을 끝내 놓은 채 원단과 부자재를 구매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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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매 시즌마다 패션 브랜드들의 기획부터 참여하여 브랜딩과 컨설팅 그리고 제조까지 하는 게 내 업인데 며칠 동안 원피스 하나 제대로 못 끝내는 게 생각해 보니 참 웃기기도 했다. 지금 메인으로 하고 있는 프로모터 일과 진행해주고 있는 브랜드들 결과가 좋아서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 잘해야 한다는 마음이 커서인지, 부담 준 사람은 없는데 혼자 부담 갖고 있는 게 더 웃기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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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동안 여성복 브랜드를 준비하면서 스스로가 그리고자 하는 페르소나와 함께 다양한 인간 군상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하나의 브랜드를 구성하는 건 스토리이자 서사이다. 아무리 가볍게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컬렉션 내의 각각의 피스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며 그 흐름 중 하나를 놓치면 안 되기에 매 시즌을 준비할 때마다 참 어려운 것 같다. 게다가 디자이너 브랜드는 본연의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은 채 트렌디해야 하며 섹시해야 한다. 또 기본적으로 내가 만드는 우리 옷은 그래야만 하고. 늘 말하지만 안타깝게도 신은 선택장애가 있는 나에게 이런 직업을 주셨고, 그로 인해 나는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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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원피스만 생각하다 보니 머리가 무거워서 머리를 비울 겸 산책을 갈까 스쿠터를 타고 한 바퀴 돌다 올까 생각 중이다. 매번 치열하게 고민하고 생각하는 게 본업인지라 치매는 안 걸릴 것 같은데, 스트레스 때문에 그에 비례해 노화가 빨리오니 참 아이러니하다. 오늘은 꿈에서 조차 일 해도 좋으니 제발 생각나길 바랄 뿐. #desi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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