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국내여행1
엄마와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저는 친구들, 동료들, 작가님들과는 수없이 많은 여행을 떠났지만 엄마와의 여행은 오랜만이었어요. 원래는 1년에 한 번 정도 가까운 해외를 갔었는데, 그 사이 코로나도 있었고 여러 가지 변화가 있어 4-5년 만의 여행이었던 것 같아요. 엄마는 부산과 거제도를 가고 싶다고 했고, 이번에는 엄마의 의견을 따라주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딸과 엄마의 여행이 시작되었죠.
점심시간이 살짝 지난 시간이 돼서야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렌터카를 찾고 부랴부랴 엄마와 첫 식사를 했습니다. 엄마는 저녁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거니까 가벼운 음식이 먹고 싶다고 했어요. 부산역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두부전골을 먹었죠. 점심을 먹으며 엄마와 여행 계획을 세우기 위해 가고 싶은 곳을 물었습니다.
"엄마, 어디 가고 싶어?"
"해동용궁사. 가본 지 너무 오래돼서 가보고 싶네."
"그리고?"
"해운대 앞에 새로 생겼다는 전망대?"
"아, 거기."
"아쿠아리움도 갈까?"
"엄마, 아쿠아리움을 좋아해?"
"나 그런 거 보는 거 얼마나 좋아하는데~"
"헐!"
글을 쓰면서도 이 날의 충격이 다시 밀려올 정도로 쇼킹한 엄마의 대답이었습니다. 그만큼 제가 엄마에 대해 몰랐다는 것이죠. 그런데요, 문제는 저와 엄마가 가고 싶은 장소가 하나도 맞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저희 세대들은 관광지를 돌아보고, 여행을 하더라도 중간에 예쁜 카페도 가서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쉬기도 하고, 그 지역의 맛집을 찾아 식사를 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엄마는 온통 관광지에 가는 것에만 모든 포커스가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바다를 끼고 있는 절은,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고 부산의 명소라고 하니 그렇다고 칩시다. 백번 양보해서 엄마가 가고 싶은 곳이니 함께 갈 수 있어요. 그런데 전망대에 올라가고 싶다니. 저는 아무리 많은 곳을 여행해도 심지어 해외에 가서도 전망대에 돈 주고 올라가는 일은 없었는걸요. 다른 좋은 야외에도 좋은 경치가 보이는 곳이 많은데 왜 꼭 비싼 돈을 지불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ㅎㅎ (전망대 관계자 분들 죄송합니다.)
마지막으로 아쿠아리움이라니요. 엄마가 물고기들을 보는 것을 좋아하는지 몰랐는데요. 생각해 보니 제가 어릴 때 엄마와 아쿠아리움이 간 기억이 꽤 많더라고요.ㅎㅎㅎ 엄마가 좋아해서 저를 자주 데리고 갔었나 봅니다. 좌절이 밀려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여행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조율을 해야 할까... 헛웃음이 나오기 시작했죠.
결론은 장소는 엄마가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중간중간 제가 가고 싶은 카페에 들르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렇게 저희의 첫날 여행이 시작되었죠. 저녁은 제가 괜찮은 식당 몇 개를 골라 엄마에게 보여주고, 엄마가 고르도록 헀죠. 그런데 식당도, 오 마이 갓! 제가 제일 안 갔으면 했던 마지막 초이스 식당을 고르는 우리 엄마...ㅎㅎㅎ
저번 글에도 언급했지만 제가 엄마를 너무 몰랐던 것이죠. 여행을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도대체 엄마와 나 사이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우리는 왜 이렇게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았을까. 여행을 하면서 엄마의 취향을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사실 여행을 떠나 어느 장소에 가고 싶은지 결정하는 것이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데, 그 장소를 고를 때에도 사람들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잖아요. 엄마가 장소를 선택한 이유들을 그 장소에 갈 때마다 하나씩 듣다 보니 엄마의 삶도 아주 조금은 이해가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번 여행은 엄마에게 최대한 맞춰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단, 제가 좋아하는 커피는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요. (커피 안 마시면 하루를 시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접니다...ㅎㅎ) 그리고 또 하나 알게 되었죠. 저와 엄마는 서로 여행스타일이 안 맞는다는 사실도요.ㅎㅎ 다음번 여행부터는 사전 준비를 더 많이 해야겠다고 다짐을 굳게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엄마에게 최대한 맞추기로 해서 무사히 넘어간 일들이 많았는데, 생각해 보면 이래서 가족끼리 여행 가는 거 아니라고 하나 봐요.ㅎㅎ 우여곡절 많았던 첫째 날 밤, 저는 아주 오랜만에 유난히 주름이 짙어진 엄마의 손을 꼭 잡고 잠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