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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피 Mar 05. 2024

물들어간다는 것

회식에 갔다

어느새 서울에 올라온 지 반년이 지난 시점이 됐다.

다사다난 했지만 지금은 나름 만족스러운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체계적인 시스템, 좋은 팀원, 커피에 깊이 교감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매력적인

장점들이 한데 모여있다고 생각한다. 이곳이라면 적어도 잘못된 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겐 만족스러운 카페지만 카페 입장에서는 내가 만족스러운 팀원일까?

가끔 생각해본다.. 실제로 일을 하는 데 어려움도 있었고 팀원들과 잘 어울리는데

그리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사한 지 어언 두달이 다 돼어가는 시점에서 나는 나름 팀원과 잘 동화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회식'자리 제안을 받았다. 




당연히 수락했고 너무도 기분이 좋았다.

팀원들과 사적으로 만난다는 것은 그만큼 가까워질 수 있는 기회이며 그들이 나에 대해

경계를 허물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식을 기점으로 나에게 혼란이 찾아왔다.


회식도 결국은 사회생활이다. 

시간을 할애하여 관계를 형성하는 일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첫 회식은 새벽 5시까지 이어졌고 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모두 투자했다.

나를 위한 시간을 포기해야 했다.


이러한 루틴이 한 주에 3번 반복되었고 나는 점점 내 삶에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전에 나는 퇴근하고 집에 박혀 그림, 글, 책 읽기를 습관처럼 해왔다.

그런 나에게 만족감을 느꼈고 대견했다.

그런데 회식을 하고 나서는 이런 일들과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는데 

그 기분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사람들과 모여 술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자리.


꽤 달콤했다. 

대부분의 회사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일상을 보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동안 나는 사회와 동 떨어져 있었구나 싶은 생각이 스쳤다.


그러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많이 너그러워지고 있었다.

글 쓰는거? 책 읽는거? 잠시 쉬어도 돼.. 너 카페에서 커피 많이 배우고 있잖아.

우선 즐겁게 일하면서 사람들과 친해지는데 집중하자.


그런 생각들이 내 머리를 집어삼키고 있을 무렵, 나는 휴일을 맞이했고

어질러져있던 집을 대청소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순간 갑자기 한동안 제자리 걸음만 하던 책갈피와 더 이상 줄어들지 않는 몽땅연필, 글 쓰라고 부추기는 브런치 알림들이 나를 깨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를 완전히 깨운 것은 다름아닌 브런치 구독 알림이었다. 

내 브런치 구독자는 3명으로 아주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그 한 명의 구독 알림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했다.

그리고 내가 써온 글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냥 나 그 자체였다.


나는 술마시며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서울에 올라온 것이 아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올라왔다. 커피도 배우고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으며 나만의 이야기를 글로 적어내서 나를 브랜딩하고 싶었다. 그래서 회식을 시작한 일주일 전부터 지금까지의 방황을 멈추고 다시 노트북에 손을 올렸다.


회식을 통해 잠깐의 방황을 맞이했고 동시에 내가 진짜 해야하며 하고 싶은일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사회에 물들어가던 나는 다시 나에게 물들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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