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즐리편
2018년 4월 어느 날,
퇴근을 한 시간 앞두고 슬슬 올라오는 턱수염을 쓸며, 페이스북에 시선을 꽂은 채 휠을 드르륵 드르륵 굴리고 있었다.
어떤 제품의 원가가 5%도 안된다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 완전 바가지네. 사기 아냐? -
안타깝게도, 남자들은 이 제품을 매일 쓰고 있습니다.
굴리던 휠이 멈췄다.
소비에 분석적이고, 구매에 합리적인 내가 속고 있었다고?
분명히 광고용 카드뉴스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어디 들어나보자 라는 심정으로 [더보기]를 클릭했다.
이 카드뉴스는 여성들마저 '피카츄 돈가스를 들고 있는 박지성' 광고로도 잘 알고 있는 면도기 회사 질레트를 분명하게 저격하고 있었다. 질레트의 유통과정과 유명인 광고비로 인해 면도기의 가격이 계속 오르지만, 시장 독과점으로 남자들은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이 광고의 스타트업 대표가 직접 면도기를 제작하게 되었다는 스토리였고, 그의 설명대로 가격도 아주 저렴했다.
난 다른 의문을 가질 것도 없이 그냥 납득되었다. 너무나 직관적이고 직설적이었기에.
그리고 조용히 읊조렸다.
"이 카드뉴스, 정말 잘 만들었네."
제품의 차별화가 아닌, 유통구조의 차별화를 역설하는 카드뉴스를 보며
나는 마케팅 그대로를 믿고 와이즐리의 면도날을 정기구매했다.
와이즐리는 네이버 검색량 1위를 한 번 찍고는, 그 해 질레트의 검색량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그 이후 많은 언론인들과 마케터들이 와이즐리 인터뷰 및 마케팅 분석기사를 왁자하게 쏟아냈었고, 이에 와이즐리 김동욱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발췌)
단순히 소통을 잘해서 잘 팔릴까?
1. 가성비 중심 커뮤니케이션에서 벗어나서 현명한 소비를 추구하는 라이프 스타일에 집중했다.
2. 브랜드 스토리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여 더 올바르고 바람직하다는 인식을 전달했다.
3. 제품을 개선하려는 꾸준한 노력과, 이를 통해 고객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려 한다.
소통은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서로 통하는 것 아닌가?
기업이 소비자, 유저와 서로 잘 통하는 게 가장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고, 그 공감대를 바탕으로 사람들은 제품을 구매하고 서비스를 이용해 보게 될 텐데.
아마도 아주 많은 남성들이 속으로만 생각했었던 '질레트 진짜 너무 비싸네.'라는 불만을 와이즐리 창업자도 함께 느꼈을 것이다. 그렇기에 면도기 시장의 혁신을 소리치던 와이즐리에게 많은 남성들이 공감했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겠지만 현실적인 도전을 응원하며 27만 번 이상 카드 뉴스를 공유하고, 이 면도기가 정말 괜찮을지 궁금해서 구매했던 것이다. 그러나 와이즐리는 그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을 '단순히 소통을 잘해서 잘 팔릴까?'라는 마케팅 포인트로 치부하고서는 정작 내용은 기초적인 사업전략으로 갈음해 버렸다.
그렇게 와이즐리는 나에게서 물음표를 남기고서 잠시 잊혀졌었다.
2022년, 약 3년 가까이 몸 담았던 스타트업에서 BEP를 찍은 후 탈출(?)하고, 개인 프로젝트로 바쁜 일상을 보내던 중 투자 관련 뉴스에서 와이즐리의 소식을 마주하게 되었다.
'와이즐리 영업적자 29억 원에서 1년 새 43억 원으로 증가, 면도기 구독경제 모델은 정체, 경쟁력 낮아'
마케팅으로 시원하게 탑을 찍었던 와이즐리가 문득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속으로는 질레트의 아성을 무너뜨리며, 적어도 한국에서 면도기 점유율 1위를 찍었기를 기대했으나
곧, 몇 가지 마케팅의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감지했다.
1. 마케팅 전략과 포커싱
와이즐리를 검색하면 두 가지가 대표적인 키워드로 묶여서 뜨는데,
1. 가격 저렴한 가성비 구독 면도기 제품
2. 가격인하 / 가격경쟁 / 가격거품제거
여기에 바이럴 리뷰 제목도 가격, 가격 오브 가격이다.
유통가격 절감, 소비재 원가 가격, 광고비 수수료 절감.
소비자는 낮아진 가격이 저 것 때문이구나 하고 이해했다면, 다음엔 이 제품이 어디 어떤 부분이 좋고,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가 더 궁금하다. 하지만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와이즐리의 다른 제품 상세페이지도 여전히 가격이야기가 메인이다.
구조적 절감. 당연히 기업입장에서 중요하지만, 마케팅을 당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똑같은 내용을 자꾸 듣다 보면 내세울게 그것밖에 없나?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이렇게 가격을 낮추면 품질문제가 생길텐데? 라는 걱정과 함께.
>> 차라리 가격을 유지하거나 조금 올리더라도 더 철저하고 확실한 검증을 하자. 지금의 가격경쟁력은 충분히 강력하니. 영양제와 케어제품들이 계속 추가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소비자들은 이미 가격경쟁력을 가진 와이즐리에게 무엇이 가장 궁금할까? 이를 테면, 약사 유튜버들에게 와이즐리 영양제 제품을 차라리 선물로 뿌리고 장점이든 단점이든 시원하게 얘기해 달라고 하는 게 어떤가. 상세페이지에서 말로만 좋은 제품입니다. 좋은 비율입니다. 라고 하지 말고 전문가들과 연구하는사람들에게 실제로 검증을 받고, 받은 피드백의 장점은 어필하고 부족한 부분이나 단점은 보완하거나 설명을 하는 게 고객 신뢰를 얻기에도, 마케팅을 지속하기에도, 그리고 믿고 구매하기에도 효과적이지 않을까?
2. 상품 기획
이 부분은 간단하게만 짚고 넘어가도 될 것 같다.
여성 속옷과 소고기, 돼지고기, 그리고 면도기와 영양제를 굳이 같은 페이지에서 함께 팔아야 할까?
그리고 네스프레소 호환 캡슐 커피머신은 와이즐리의 창업 정신에 부합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 예를 들어, 와이즐리라는 기업의 모토를 '전문가들도 신뢰할 수 있는 가성비(실용적) 제품'이라고 한다면,
판매 채널이든, 페이지든, 메뉴든, 제품군을 구분하거나 독립적으로 판매해도 되지 않을까?
여기에 정성스럽게 쌓아놓은 브랜드 이미지를 파괴하는 제품들은 과감한 결단이 필요해 보인다.
3. 마케팅 타겟
누구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기획하는지 모호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구매를 할 수 있지만, 누구나 원하지는 않는다.
같은 상추를 팔아도 장보는 아주머니를 타겟할지, 캠핑족을 타겟할지에 따라 마케팅이 달라진다.
그리고 요즘 소비자들은 똑똑해서, 본인이 마케팅 당하는지 알면서도 내 욕구에 부합한다면 구매를 한다.
오히려 타겟이 내가 아닌가 싶으면 구매의욕이 떨어질 뿐이다.
>> 와이즐리의 면도기는 당시 타겟을 세분화하면, '남성', '면도를 자주하는', '질레트가 비싸다고 생각하는' 합리적인 남성 소비자를 타겟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마케팅엔 나도 반응해 버렸다.
남성 제품으로 시작하여 남성 타겟으로 마케팅을 했다고 해서 여성 제품을 런칭하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공산품으로 판매를 시작했다고 해서, 다음 상품으로 식료품을 판다고 이상한 것도 아니다.
다만, 사업 전략을 바탕으로 기획을 하면서 콘텐츠를 제작하고 마케팅을 하는 것은 하나의 큰 인사이트를 관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입맛과 취향이 아닌,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의 고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이 인사이트에 소통과 공감까지 담긴 마케팅을 다시 지속할 수 있다면,
유저와 시장, 그리고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와이즐리에게 그때와 같은 반응을 보여주지 않을까.
와이즐리 역시 카드뉴스로 당시 남성들과 강렬하게 공감하며
소비자와 통했던 그 느낌을 잊지 않고 있다고 믿기에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한번 기획하길 응원해 본다.
- H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