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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육오공 Feb 24. 2023

관성적으로 살기에 이룰 수 있었던 것

6개월 동안 50곡 만들기 챌린지를 실천할 수 있었던 이유

중학생이 되며 새로 이사 간 집에는 티비가 없었다. 외할머니집에 살 때 저녁마다 엄마와 우리 자매가 할머니와 함께 티비보는 것을 아빠가 싫어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나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라디오 듣기였다.

나는 라디오 키드였다. 매일 밤 10시-12시까지 라디오를 챙겨 듣던 것에서 시작해 12시-2시 라디오도 챙겨 들었다. 새벽 라디오에서는 감수성 풍부한 어른들의 이야기와 노래를 엿들을 수 있었고, 그렇게 나는 인디밴드라는 세계에 빠졌다. 그때부터 내 장래희망은 ‘인디 뮤지션’이었다.

중2 때부터 통기타를 배우고, 고등학생 때부턴 노래도 만들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고 난 후엔 기회가 닿아 가끔 공연을 하기도 했으나 이렇다 할 큰 변화는 없었다. 나는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기 위해 음악과 관련 없는 전공을 택했고 알바를 하며 학교 생활을 하기 바빴다. 그래도 항상 언젠가 음악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초라한 노래 실력이 나아지면 음악 활동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4년 동안 노래 레슨을 끊이지 않고 다녔기도 하니까 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현생에 치여 관성처럼 노래 레슨만을 받던 무렵, 친구가 말했다. “얼마 전, 선생님을 뵈었는데 앨범을 내려면 100곡은 만들어 보래.” 전화를 끊고 그 한 마디만 마음에 남았다. ‘나는 10년 동안 노래를 만들었는데 그동안 만든 곡이 몇 개나 되지? 내가 다 기억은 하고 있나? 버린 곡들은 아카이빙 해놓지도 않았는데.’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다음 할 일이 명확해졌다. 

100곡을 만들어 보자. 그러면 앨범을 낼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 만든 곡들이 50곡은 좀 안 되겠지만 50곡이라고 퉁치고 나머지 50곡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나는 남들보다 노래를 월등히 잘하지도, 기타를 잘 치지도 않지만 하나 잘하는 게 있다면 실행력이 좋다는 거다. 하필 그 대화를 한 게 6월이어서 나는 7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6개월 동안 50곡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이름하야 6개월 동안 50곡 만들기 챌린지.


오랫동안 음악을 하고 싶어 했으면서 음악과 상관없는 전공을 택했고, 그렇게 배우고 싶었던 걸 배웠으면서 또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하면서, 나는 나의 정체를 고민해야 했다.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일이 나의 ‘정체’인지, 가장 많은 마음을 쏟는 일이 나의 ‘정체’인지, 혹은 돈을 벌어다 주는 일이 나의 ‘정체’인지. 그걸 하나로 모아야 할지, 혹은 욕심껏 그 모든 걸 분리해야 할지. 

무엇이 내 정체인지 여전히 모르지만 그래도 내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관성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열세 살부터 스물세 살까지 1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고, 내가 한번 만든 습관은 별 의심 없이 관성적으로 굳어지곤 했다. 여기서 관성적이라는 건 어찌 보면 성실하다는 것과 동의어가 된다. 생각이 많은 이들은 다양한 하루 일과 중에도 자꾸만 의심을 하고 더 좋은 방법을 찾곤 하던데, 나는 그런 부류의 인간이 아니라서 한번 공들여 생각해 놓으면 더 이상 굳이 생각하지 않고 하던 대로 할 뿐이었다. 이 특성 덕분에 나는 매일 아침 “나는 뮤지션이 된다.”라고 써놓았던 문장을 실천할 단 하나의 단서, “앨범을 내려면 100곡을 만들라”는 말을 실천하게 되었다.


유튜브 [6개월동안 50곡 만들기 챌린지]


6개월 동안 50곡을 만들기 위해선 일주일에 두 곡씩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혹시나 나 혼자만의 약속으로 흐지부지되지 않기 위해 유튜브 채널을 만들었다. 일상을 살면서 영감을 얻고, 가사를 쓰고, 곡을 붙이고, 코드도 붙이고, 나름의 편곡도 하고 연습까지 해서 영상을 올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다시 생각할 기운이 없었기 때문에 계속했다. 그리고 6개월 후, 50곡은 아니지만 45곡을 완성했다.

이후의 과정도 비슷했다. 나는 2022년 8월 22일, 엄마의 10주기를 맞이하여 앨범을 내기로 계획했고, 그보다 완벽한 계획은 쉽게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목표를 향해 달렸다. 쉽지 않았지만 역시나 나는 관성적인 사람이라 일주일 연습, 토요일 녹음의 싸이클에 익숙해지자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2022년 8월 22일이 지났고, 나는 계획대로 그날 앨범을 냈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미래의 주인공이 과거의 주인공에게 신호를 보내듯, 인생은 생각보다 더 생각대로 살아진다. 과거에 상상한 미래가 실현된다. 앨범을 냄으로서 뮤지션이라는 이름의 명함이 생겼다. 이제 그 명함을 나눠주기 위하여 더 많은 공연을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야겠다. 그러기 위해서, 관성적으로 공연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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