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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야 Mar 14. 2023

이런 게 여행이라면, 난 여행 안 갈래

마드리드야, 너의 첫인상은 망했단다.

 출국 당일, 공항에서 만나기로 약속 잡아놓고 연락이 안 된다. 한참을 서로 헤매다 겨우 상봉. 집에 여권을 두고 나왔다가 겨우 챙겨 왔다는 친구. 가기 전부터 정신없던 우리는 잔뜩 긴장되어 있던 상태였다가 만나니, 그제야 얼굴에 웃음기가 생긴다. 면세점도 둘러보며 비행기 탑승까지 무난하게 완료.


 마드리드까지는 14시간이 걸린단다. 해리포터 전 시리즈를 정주행 하면 얼추 맞겠구나, 하며 영화를 핸드폰에 모두 저장해 왔다. 의기양양했던 것과 다르게 한두 편 깔짝대다가 잠만 잤다. 물론 기내식 먹을 타이밍엔 기막히게 일어나서 기깔나게 먹었다.


 2월 1일 밤, 마드리드에 도착.


 공항에서 나오니 확실히 일본에 갔을 때와는 다른 기분. 그래도 내가 여길 오긴 왔구나. 신기했다. 공항 밖으로 나왔는데 겨울인 데다 비까지 오니 너무 추웠다. 오랜 비행시간 동안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펴지질 않는다.


 공항버스를 타려 했지만, 짐도 짐이고 환승까지 해야 한다길래 택시를 잡을 생각이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가는 곳이 있길래 조금씩 내리는 비를 맞으며 따라갔다. 하지만 그 사람들이 멈춰 선 곳은 공항 주차장에 세워진 관광버스 앞. 패키지여행을 온 사람들이었다.

 무슨 드라마 연출처럼 빗줄기가 조금 더 세졌다. 서둘러 비를 피해 다시 공항 쪽으로 돌아가서 아무 택시나 잡았다.


 한 블로그에서 공항에서 택시 타서 '푸에르타 델 솔 광장'으로 가는 데는 30유로 고정이라는 걸 본 기억이 있다. 운전기사가 어떤 버튼 하나 누르니 미터기에 30유로가 쓰여있고 그대로 달리기 시작했다. 바가지 씌울까 봐 계속 쳐다봤지만 고정인 걸 보니 그제야 안심이 됐다.


 빗물이 창문에 튕기는 소리, 와이퍼 움직이는 소리, 운전기사의 껌 씹는 소리. 익숙한 소리가 낯선 풍경과 만나니 묘한 새로움이 되었다. 거기다 택시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스페인풍의 노랫소리까지. 정말 이제야 제대로 된 여행이 시작된 것 같아 친구와 함께 들떠있었다.



 "짐 내리려면 10유로 더 줘."


 좋았던 순간은 잠시, 숙소 근처에 택시에서 내려서 짐을 내리려는데 10유로를 더 달란다. 분명 블로그에서 30유로라고 봤는데. 친절했던 운전기사는 우물쭈물하는 우리에게 더 강압적으로 밀어붙였다. 어쩔 수 없이 10유로를 더 얹어서 40유로를 내고서야 짐을 내릴 수 있었다. 흥겨웠던 마음이 확 식어버렸다. 어차피 말도 안 통하는데, 어쩔 수 없지, 뭐...


 숙소 건물 안에 들어가서도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해 앞에서 한참이나 삐걱거렸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나무 문 같은 걸 열고 들어가는 식이었는데, 처음이다 보니 무서웠다. 주변 사람들이 도와줘서 겨우 타고 숙소에 들어갔다.

이런 느낌의 숙소였다

 연둣빛의 벽지와 갈색 가구들. 마드리드의 첫인상처럼 삭막하고 썰렁했다. 짐을 풀고 차가운 침대에 걸터앉아 우리가 바가지를 썼던 건지 아닌지 잠시 토론을 했다. '원래 줘야 하는 걸 거야', 하고 정신승리를 마쳤다.


 "씻고 자기엔 시간 애매한데 요기 바로 앞만 나갔다 올래?"

 

 밤에 밖에 나가긴 무서웠지만 그렇다고 숙소 안에서 딱히 뭘 할 건 없었다. 소매치기에 대해 하도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지라, 가방에 5유로 지폐 하나만 꼬깃꼬깃 접어 동전지갑에 넣고 밖으로 나갔다. 완전무장에 마음 단단히 먹고. 누가 보면 어디 결투하러 가는 줄 알겠다.



푸에르타 델 솔 광장

 처음이라 낯선 이국적인 도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축축하고 썰렁한. 정말 정이 안 갔다. 외국인을 이렇게 많이 본 것이라 더 긴장한 채로 걸어갔다. 누가 봐도 우린 처음 온 관광객의 모습 그 자체였을 거다.


마요르 광장

 지갑을 꽉 쥔 채로 마요르 광장까지 걸어갔다. 이렇게까지 멀리 나와있어도 되려나 싶을 정도로 한참 걸어갔다. 나중에 찾아보니 숙소에서 5분 거리였다.

 낯선 곳, 낯선 분위기. 하늘엔 큰달이 구름 사이에 가려져서 꼭 공포영화처럼 비추고 있었다. 비가 온 뒤라 촉촉해진 돌바닥에 상점의 불빛과 가로등이 비추고 있었다. 누군가는 밤의 광장을 보고 분위기가 좋다고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너무 긴장하고 있던 나는 이 자리를 빨리 뜨고 싶었다.


 대충 훑고 바로 나와 숙소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저녁을 먹지 않아 허기가 졌다. 식당에 갈까 했는데 수중에 있는 돈 5유로. 거기다 친구는 배가 고프지 않다고 해서 나 혼자 먹을거리를 찾아다녔다.

 익숙한 할아버지와 빨간 간판, KFC. 먹던 것 먹는 게 낫겠다 싶어 얼른 들어갔다. 돈을 조금만 더 가지고 올걸. 마땅히 살만한 게 없었다. 결국 초코시럽이 뿌려진 와플과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샀다.


 다른 곳 구경하기엔 춥고 지쳤기에 와플만 들고 숙소 건물로 들어갔다. 아까 전에 엘리베이터 한번 타봤다고 그래도 나름 수월하게 방까지 들어갔다. 겉옷을 벗고 와플을 한입 먹었는데, 여태 먹은 와플 중 최악. 이걸 먹으라고 준 건가.


 아이스크림으로 배를 채운 후 씻고 침대에 누워본다. 딱딱하다. 그리고 차다. 안 그래도 몸이 찬 편인데, 내 체온으로 침대와 이불을 데워서 자야 한다니. 이불을 덮었더니 온몸이 차다. 옷을 이것저것 잔뜩 껴입고 자야 했다.



 나의 환상 속 유럽여행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겨울에 왔어서 그런가? 처음이라 겁먹어서 그런가? 제대로 준비를 안 해서 그런가? 이유는 모르겠고, 첫날 이렇게 고생할 걸 알았다면 여행 안 왔을 것 같다. 마음속으로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몇 번이나 들었다. 유럽여행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마드리드 도시 자체에 대한 첫인상도 안 좋아졌다. 날씨, 바가지, 분위기, 음식 등. 아직 내가 겪어본 것은 아주 일부겠지만.


 그래도 친구와 함께 있으니 위로가 되었다. 나만 힘든 게 아닐 테니. 물론 힘듦을 둘이 나누면 힘든 사람 두 명이 된다고는 하지만, 함께 헤쳐나가면 어떻게든 되겠지! 제발 아무 일 안 일어나고 계획한 대로 무난하게 여행을 잘해나갈 수 있길.


 "마드리드야, 너의 첫인상은 망했단다. 얼른 좋은 날씨, 좋은 분위기, 좋은 음식으로 네가 사실은 괜찮은 도시였다는 걸 보여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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