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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휘야 Mar 20. 2023

그 나라의 언어를 써본다는 것

마드리드 근교여행, 세고비아

#1 세고비아 빠르게 훑기


 전날 춥게 잔 탓에 웅크리고 있어서 그런가 어깨가 뭉쳤다. 비행기에서 적절히 잘 잤어서 그런가 시차적응은 잘했지만, 컨디션 적응이 힘들었다. 아침 일찍 오늘의 주 목적지인 마드리드 근교, 세고비아로 갈 준비를 했다. 


 춥다는 일기예보가 있어 옷을 단단히 껴입는다. 목도리까지 두르고 숙소 밖으로 나왔다. 전날 그 스산하고 무서웠던 광장이 아침에 나오니 밝았다. 역시 마음먹기에 달린 것인가.


 지하철역이 광장 근처에 바로 있어서 타러 갔다. 소매치기당할까 봐 긴장을 잔뜩 하고 가방과 핸드폰을 꽉 쥐고 걸었다. 쳐다보는 사람들마다 경계를 하며 걸었는데, 오히려 이게 이상해 보여서 쳐다본 걸 수도...

 지하철 타는 건 생각보다 편했다. 세고비아행 티켓도 금방 끊었고. 잘할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너무 잡다한 상상을 많이 했어서 하기도 전에 피곤해졌던 듯.


 세고비아행 버스를 타고 가는 중, 창밖을 보니 눈이 내렸다. 아무래도 스페인 내륙지방이다 보니 2월이고 지중해에 가까운 나라라 해도 춥긴 한가보다.



겨울 세고비아

 버스 타고 한 시간 좀 넘게 달리다 보니 세고비아에 도착했다. 날이 추운 듯 움츠러든 사람들과 앙상한 나뭇가지만 흔들고 있는 나무들이 겨울의 삭막함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흐린 날씨라 더 그래 보였다.

세고비아 수도교

 버스 내려서 주변을 둘러보며 걷다 거대한 수도교를 발견한다. 저걸 어떻게 쌓았을까,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훨씬 큰 규모에 놀랐다. 20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데, 실로 대단하다.

세고비아 대성당

 사진을 잔뜩 찍고 내려와 동네를 둘러봤다. 처음으로 스페인의 골목길을 제대로 둘러봤다. 한적하고 썰렁한 거리를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종소리가 울린다. 댕~ 댕~ 댕~. 시계를 보니 12시였다. 어쩐지 여러 번 울리더라. 그 진한 소리의 주인은 세고비아 대성당이었다. 세고비아의 크기에 비하면 굉장히 큰 느낌이 들었다. 겉모습은 조금 투박해 보였다. 성당에 관심이 없던 나와 친구는 "역시 종소리가 느낌이 좋아~" 이러고 지나갔다.


세고비아 알카사르

 조금 걷다 보면 나오는 백설공주 성의 모티브가 됐다던 '세고비아 알카사르'. 처음 딱 마주쳤을 때는, 생각보다 둔하게 생긴 정면 모습에 실망했다. 어떤 모습 때문에 백설공주의 성이라고 불리는지 알 것 같긴 한데, 아무튼 정면에서 본 것보다는 뒤에서 봐야 할 듯했다. 


 알카사르 안에 들어가서 구경을 했다. 성답게 전쟁물품이나 갑옷, 휘장 등을 두었다. 크게 와닿는 건 없었고, 사람이 별로 없어 여유롭게 둘러본 기억뿐.


#2 그 나라의 언어를 써본다는 것


 여행을 가기 전, 항상 정리해 두는 정보들이 있다. 관광지, 전압, 화폐, 맛집 등 알면 좋은 것들. 그중에서도 그 나라에서 쓰는 언어와 간단한 회화들을 항상 정리해 간다. 써본 경우는 거의 없었다. 영어로도 의사소통이 되기도 하고 정 안되면 번역기를 쓰면 되니까. 그래도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 간단한 회화와 숫자 세는 법을 메모해 갔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많이 쓰는 것들과 함께 "화장실은 어디로 가나요?", "이거 얼마예요?"와 같은 조금 더 관광회화 같은 문장까지 외웠다. 



 

 스페인에서 유명한 츄러스가 유명하단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자로 길게 뻗어서 설탕이 잔뜩 뿌려진 놀이공원 스타일의 츄러스가 아니었다. 심심한 맛에, 심심하지 않은 생김새. 꼬여있는 모양의 담백한 빵과 함께 찍어먹을 수 있는 녹인 초콜릿까지 나왔다. 

스페인식 츄러스

 맛있게 먹고 배를 채우니 금방 기운이 났다. 계산대에 가서 자신 있게 공부해 간 회화 표현을 외쳤다.


"Cuanto cuesta esto? 꾸안또 꾸에스타 에스토?" ("이거 얼마예요?")


 무뚝뚝해 보였던 가게 아저씨는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못 알아들은 건가 해서 다시 한번 더 외쳤더니, 아저씨 표정은 이내 활짝 펴지며 속사포 랩을 하시기 시작했다. 정말 수많은 단어를 내뱉으셨지만, 그중에 딱 한 단어 들었다.

 "español"

 대충 짐작하건대, 스페인어를 어떻게 할 줄 아냐, 그런 뜻이었을 것 같았다.


 당황한 우리는 할 줄 아는 스페인어 "Cuanto cuesta esto?" 되풀이할 뿐이었다. 누가 보면 앵무새인 줄 알겠다. 


 아저씨는 스페인어로 대답을 해주셨고, 우리는 알아듣지 못했다. 몇 번이고 천천히 말씀해 주셨지만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분명 숫자도 공부해 갔는데.. 결국 테이블 위에 가지고 있는 동전을 올려뒀다. 아저씨는 하나씩 짚으며 숫자를 세시곤 가져가셨다. 


 할 줄도 모르는 언어 가지고 한바탕 이야기하고 (이야기 '듣고'에 가깝지만) 나오니 츄러스로 먹은 기운이 금세 빠졌다. 그래도 스페인어를 하니 몹시 반가워하는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우리도 외국인이 한국 와서 "안녕하세요."만 해도 신기하다고 엄청 말 잘한다고 칭찬해 주는데, 이곳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었으려나. 영어로 의사소통해도 충분하지만, 기분이 달라지는 게 언어소통인 것 같다. 그 나라의 언어에 관심을 가져줬다는 거니까. 




 세고비아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새끼돼지구이. '코치니요 아사도 Cochinillo asado'라고 하는데 지금까지도 이름은 못 외우겠다. 원래 가려던 식당이 문을 닫는 바람에 근처 다른 식당으로 가서 주문했다. 또 하나의 문장을 외치며.


 "Poca sal, por favor!" (덜 짜게 해 주세요.)


 워낙 음식이 짜다고 해서 Poca sal(덜 짜게), Sin sal(소금 빼고)를 외워갔다. 이미 많이 들었다는 듯이 미소를 지으며 주문을 받으신 웨이터. 

새끼돼지구이. Cochinillo asado

 그리고 나온 요리는 아주 바삭한 껍데기를 자랑하는 새끼돼지고기 다리였다. 


 한 입 먹어봤는데, 짰다.


 분명 덜 짜게 해 달라 했는데, 이게 덜 짠 건가. 소금을 아예 빼달라고 했어야 했나. 특별히 무슨 맛이 나는 건 아니고, 짜기만 무지하게 짜서 음료만 벌컥벌컥 마셨다. 그에 비해 감자튀김은 싱거웠다. 혹시 덜 짜게를 감자튀김으로 알아들으셨나, 싶을 정도.


이 식당에서도 혹시 얼마냐고 물어보면 대답해줄까 궁금해서 물어보려 했지만, 계산서를 갖다 주셔서 질문은 꺼내지 못했다. 대신 어디서 들어본 "Adios!"를 외치며 식당 밖으로 나왔다. 


 스페인에 와서 처음으로 스페인어를 써봤다. 발음이 맞는 건지도 모르겠고, 상대가 대답한 걸 알아듣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반가운 표정으로 반응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간단한 의사소통 회화 정도는 공부해 가면 좀 더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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