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난 May 07. 2024

도를 아십니까

도가 - 장자

 해당 글은 필자의 학습 중 백지노트로 실제와 다를 수 있음을 알립니다





 지난 시간의 노자에 이어 그의 사상을 이은 장자에 대해 알아봤다.


 장자 또한 춘추전국시대 사람으로, 앞서 살펴본 공자, 노자, 석가모니와 같이 사회 혼란의 원인을 알아내고자 했다. 그 원인으로 구별과 차별을 꼽은 그는 사회 혼란을 막고 이상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분별, 차별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장자는 왜 분별과 차별이 일어나는가에 대해 고민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그는 인간이 '오감에 의존'하기 때문에 분별이 일어난다는 결론에 이른다. 눈으로 사물을 보기에 미추를 구별하고, 코로 냄새를 맡기에 악취와 향기를 구별한다. 그런 구별이 차별을, 편견을 낳고 인간은 불행해지고야 만다.


 그는 이렇듯 오감에 의존해 현상을 이해하는, 자기중심적 사고를 '작은 지혜'라 부르며 만물의 겉모습이 아닌 보다 본질적인 것을 볼 것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도가사상가답게 그가 생각한 본질은 '도'였다. 도란 무엇인가? 만물의 근원이자 운행 법칙으로서 도처 한 것. 모든 것에 내재한 것이 바로 '도'이다. 즉, 인간에게도, 동물에게도, 하물며 미생물에게도 도는 있는 것이다. 이렇듯 본질을 보는 '큰 지혜'를 행하게 되면 보인다. 결국 모든 것이 동일하다는 것이.


 그토록 분별하고 구분했던 모든 것이 사실은 평등하고 동등한 것. 상하 차등 없이 나란한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사물을 동등한 관점에서 평등하게 바라보는 관점을 '제물'이라 하며, 이 관점에 따라 만물이 평등함을 이야기할 때, '만물제동'이라 일컫는다. 도의 관점에서 모든 것을 평등하기에 우리는 외물에 얽매이지 않고 구분하지 않아야 한다. 장자에 따르면, 시비, 선악, 대소, 귀천, 미추, 빈부, 심지어는 생사도 같은 것이다.


 만물제동을 이야기하며 그는 학과 오리의 다리를 예로 든다. 오리의 다리가 짧다 하여 길게 늘일 필요가 없으며, 학의 다리가 길다 하여 자를 필요가 없음을 말하며 그는 만물에 제각각의 가치가 있음을 긍정한다. 그리고 이것을 깨닫고 자신을, 타인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살아갈 때, 우리는 강박과 불안에서 벗어나 진정한 정신적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며 삶을 소풍 가듯, 유람 가듯 살아내는 상태인 '소요유'에 접어드는 것이다.


 소요유에 든 장자의 유명한 일화가 호접몽이다. 꿈에서 나비가 된 장자는 자신이 인간이되 나비의 꿈을 꾸는 것인지, 나비인데 인간의 꿈을 꿨던 것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된다. 진정으로 사물과 나가 동등해지는 상태, 아니, 그를 넘어 동일해지는 상태인 '물아일체'에 접어든 것이다. 사실 이 일화를 볼 때면 곧잘 현실이 괴로운 이들, 정신적으로 몰린 이들이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게 된다는 정신질환이 떠오르곤 하지만 무튼 그러하다.


 장자는 소요유를 위한 수행 방법으로 좌망과 심재를 든다. 가만히 앉아 마음을 비우는 수행인 '좌망'. 도가에서 추구하는 인간이 '무지'한 인간임을 고려해 볼 때 당연한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 켜켜이 쌓인 무수한 분별을 비우는 것. 그리하여 마음을 청소하는 '심재'로 접어들어 마음을 비우는 것[허심]이다. 도는 텅 빈 곳으로 향한다는 노자의 가르침을 받은 장자의 사상답다.


 이것에 성공하여 정신적 자유를 쟁취한 이를 성인, 지인,  진인, 신인, 천인이라 칭한다.


 장자의 가장 중요한 사상인 '만물제동'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장자는 생과 사가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생은 기가 모인 것이요, 사는 기가 흩어진 것으로 여긴 그는 도가 되돌아가는 성질을 지닌 것처럼 기도 모이고 흩어지길 반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춘하추동이 변화하되 무엇이 가치 있고 어떤 것이 비천한 것이 아니듯, 생과 사 또한 그저 형태가 다를 뿐 크게 기뻐할 일도, 슬퍼할 일도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장자가 저의 아내의 장례식에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장자는 인간에게는 주어진 수명, 양생이 있으며 양생에 따라 잘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갑작스러운 병과 사고에 의한 죽음은 양생을 지키지 못한 것으로 여긴 그는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추구하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죽음이 있는 생으로 영원불변할 것에 집착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장자의 사상은 불교와 굉장히 유사한 측면이 많다. 모든 것이 동등하며 구분하지 말라는 것은, 만물은 무수한 조건과 원인에 끝없이 생멸하며 이어져있다고 이야기하는 불교의 핵심 사상인 인연생기설과 유사하다. 특히 구분하지 말라는 것은 인연생기설을 바탕으로 한 나와 너, 인간과 자연의 구분이 무의미함을 이야기하는 불교의 자타불이 사상과 결을 같이 하며, 삼국시대 고명한 사상가인 원효의 일심이문 사상 중 절대불이-더러움과 깨끗함, 참과 거짓, 진리와 속세, 진여와 생멸, 생과 사의 구분은 무용하며 그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사상-와 같다고 말할 법하다.


 인간 모두에게 이상적인 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으며, 수행을 통해 이에 이를 수 있음을 역설하는 점은 유교, 불교, 도가의 공통점이라 할 법하다.


 반면, 유교와는 많은 차이점을 지닌다. 애초에 노자가 공자를 비판하며 사상의 많은 부분을 정립한 만큼 사회 혼란의 원인을 인간의 도덕성 타락에서 찾아 인의예지의 사덕을 통해 도덕성을 회복할 것을 주장한 유교와 달리, 도가는 인의예지 또한 인위적인 것이며 시비와 선악을 나누는 것이 분별이며 혼란의 원인이라 말한다. 두 사상 모두 도와 덕에 따른 삶을 추구하나, 유교에서 말하는 도는 '도덕', 덕은 인의예지의 '사덕'인 한편, 도가에서 말하는 도는 '만물의 근원이자 운행의 법칙으로서 스스로 그러한 것', 덕은 '순박, 소박, 무지, 무욕, 겸허, 부쟁'을 뜻한다는 점도 특징적이다.


 사상을 공부하다 보면, 소통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기의 다양한 사상가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럴 때면 묘한 기분이 든다. 어떻게 그 먼 곳에서도 인간이라는 종족은 비슷한 삶을 향유하며, 유사한 진리를 발견해 내는가.


 그게 꼭 세상을 관통하는 어떠한 것이 존재한다는 반증 같아 퍽 흥미롭다.


 더불어 의문점이 있다. 장자의 사상은 현대사회의 평등사상과 유사하다. 신분제가 만연했던 당대 사회에 도가는 탄압받지 않았을까? 귀천이 없다고 했던 그는, 신분제에 대해 반대했을까? 노자의 소국과민과 별개로, 내가 공부한 부분에선 장자의 어떠한 정치적 신념이 드러나 있지 않았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파격적이라 여겨지는 장자의 사상이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특히나 지배층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궁금하다. 역성혁명을 주장했던 맹자의 서적이 금서로 지정된 적이 있었던 만큼 더.


 또, 내가 보기에 도가는 분명한 평등을 주장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신분제에 대한 회의와 평등에 대한 갈망이 드러난 건 동학의 전개 이후부터다. 그러나 도가는 그보다 먼저 전파된 것으로 아는데. 변질된 걸까?


 여러모로 궁금한 점이 많다. 추후 관련 서적을 살펴볼 것을 다짐하며 도교 사상 공부로 넘어가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연스럽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