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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난 May 07. 2024

철학과 종교

도가와 도교

해당 글은 필자의 학습 중 백지노트로 정돈되지 않았으며 사실과 상이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을 수 있음을 알립니다.


 노자와 장자의 도가 사상은 시간이 지나며 점차 변화한다. 속세적 가치를 넘어선 철학인 도가 사상에 민간 신앙이 합쳐지며 종교화된 것을 '도교'라 한다.


 도교는 도가 사상을 기본으로 하였으나 도가와 도교는 굉장히 다르다. 장자의 생에 대한 이야기인 양생을 기반으로 발전한 도교. 그러나 주어진 생명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 것을 역설한 장자의 의도와는 달리 양생에서 불로장생을 꿈꾸게 된다. 불로장생한 신선에 목적을 둔 도교는 그 수행법으로 양생술을 주장한다. 양생술은 내단과 외단으로 나뉘어 있는데, 내단은 내적인 기의 수행 방식으로, 호흡법을 예로 들 수 있다. 현대에 많은 호흡법 또한 이에 영향을 받은 경향이 없잖아 있다. 외단은 외적인 것, 즉 몸을 튼튼히 하는 것으로 산삼과 같은 몸에 좋다고 여겨지는 것의 섭취를 예로 들 수 있다. 자연스러움이 아닌 인위적인 생의 연장을 바랐다는 점에서 도교는 도가와 사뭇 다르다.


 그러나 가장 큰 차이는, 시비선악의 분별을 없앨 것을 주장했던 도가와 달리, 도교는 선행을 권장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도가는 어떤 과정을 거쳐 이토록 변화한 걸까?


 춘추전국시대, 도가사상이 정립하고 이후 한나라가 들어선다. 전한 시대, 도가 사상은 전설 속 제왕인 황제와 도가의 창시자인 노자를 숭상하는 황로학파로 나타난다. 황로학파는 노자의 가르침 대로 무위의 통치를 주장하는데 그들은 이를 '청정무위'라 칭했다. 현자 숭상을 지양한 노자의 사상을 이어받았다고 하고서는 노자를 숭상했다는 게 모순적이긴 하지만 황로학파가 유가, 묵가, 법가 등 여러 제자백가 사상을 받아들인 학파였다는 점을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여기서 가볍게 묵가와 법가를 살펴보자. 묵가는 묵자에 의해 창시된 사상으로, 존비친소의 분별적 사랑을 주장한 공자의 인 사상을 강하게 비판한다. 묵가는 모든 것에게 동등한 사랑을 주장하며 겸애를 말한다. 차별적 사랑이 분쟁을 낳으므로, 평등한 사랑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법가는 한비자에 의한 사상으로, 강력한 상, 벌과 법, 통치술로 국가를 통치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강력한 법과 벌이 아닌, 덕으로 통치해야 함을 주장한 공자의 덕치와는 대척점에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후한 시대로 들어서 나라는 혼란스러워진다. 불안한 시국, 백성들은 안정적 나라를 꿈꾸며 도가를 교단이 있는 도교로 탈바꿈시킨다. 그렇게 등장한 태평도와 오두미교. 태평교는 안정적인 사회를 꿈꾸며 선행을 권장하였다는 특징이 있다. 오두미교는 이름만 봐서는 사이비다. 다섯 말의 쌀을 지급해야 교단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입단비를 이름으로 짓다니,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대학교 이름을 오백만 원 대학교 정도로 지은 것 아닌가. 진지하게 그때의 창시자를 만나보고 싶다.


 각설하고. 오두미교는 다섯 말의 쌀을 지급하고 지속적으로 선행을 행하면 병이 낫고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렇게까지 얘기하니 더 사이비 같다. 무튼, 오두미교는 노자의 사상을 받아들이며 도덕경을 경전으로 삼았으며 선행을 권장했다. 삼권수서가 가장 특징적인데, 세 신에게 반성문을 썼다는 것이다. 이때 세 신은 하늘과 땅, 물의 신으로 농경사회였던 당시의 인식을 보여준다.


 한나라가 멸하고 위진 시대로 넘어오며 도교는 다시 '현학'이라는 이름으로 변모한다. 현학의 현은 검을 현으로, 깊은 검은색만큼 깊은 학파라는 뜻이다. 춘추전국시대와 유사하게 혼란스러웠던 위진 시대, 현학자들은 속세에서 멀어져 청담을 일삼는다. 청담은 깨끗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물질적 풍요 혹은 정치적 담론을 더러운 이야기로 여긴 현학자들은 예술적이고 철학적인 담론을 청담으로 여기며 몰두한다. 이 중 깊은 숲에 들어가 청담을 즐긴 이들을 죽림칠현이라 칭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내가 보기에 현학자들은 도망자다.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고 '이상적인' 국가를 토로하며 나서는 게 오로지 물질적 풍요만을 위한 것일까? 죽음을 무릅쓰고 나선 이들이 있다. 멍청해서가 아니다. 아무도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무엇도 바뀔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담론은 세속적이나 현실적이고, 무엇보다 인간에 가깝다.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그런 담론을 더러운 것이라고 피하는 것이, 과연 깨끗한 일인가. 모르겠다. 냉소적일 지도 모르겠으나, 내게는 그저 무수한 희생을 외면한 채 숨어든 도망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여겨진다.


 각설하고. 이렇듯 모습을 바꾼 도교는 한국에서는 어떻게 드러났을까? 한국의 대표적 사상이 유불도이니만큼 도교는 여러모로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의 많은 이야기, 금도끼 은도끼로 유명한 신선이야기는 도교사상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최치원이 풍류도에 대해 중국에서의 전래 이전부터 한국에는 명칭만 없었을 뿐 유불도의 사상이 있었다고 말한 것도 도교가 곳곳에 깃들어 있음을 함의한다. 국가적 제례의식이었던 길, 복을 비는 제초, 현재에도 집 볼 때 종종 고려되는 풍수지리설 또한 도교의 영향이다. 도교는 기본적으로 불로장생을 꿈꾸기에 의학발전에 많은 영향을 미쳤는데 그 유명한 허준의 동의보감 또한 도교에 영향을 받았다고 여겨진다. 선행을 권장한 점은 '공과격'의 등장에 기여했다. 공과격은 하루를 마치며 자신의 선행과 과오를 적는 것으로, 지금으로 치자면 아이들이 일기장에 '오늘의 칭찬할 점', '반성할 점'을 적는 것과 유사하다. 자고로 발전은 성찰에서 오기에, 이러한 요소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도교는 도가의 기본적 사상과 상당히 다르기에 본질을 해쳤다고 여겨질 수도 있으나, 그 과정에서 많은 백성의 삶에 녹아들어 어떠한 위로를, 발전을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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