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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미화 Mar 18. 2024

시간이 약이다

 둘째가 태어나고 3년 동안 새벽잠을 설쳤다. 두 돌이 지났을 무렵, 겨우 수면습관이 잡혔다. 새벽 쪽잠에서 해방되는가 싶었는데 기쁨도 잠시, 야제증 비슷한 증상이 왔다. 잠이 들고 한두 시간 잘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 발작적으로 우는 증상이 계속되었다. 깬 것도 안 깬 것도 아닌 상태에서 발작적으로 우는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진정이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방법 밖에 없었다. 혹시나 안아주면 울음이 잦아들까 싶어 안으면 더 발작적으로 울어버리기에, 딱히 방법이 없었다. 세 돌까지 밤만 되면 1시간씩 울어대는 통에 몸도 정신도 피폐해졌다. 세돌이 지나면서 그 증상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요즘은 새벽에 조용하던데, 잘 자나 봐요?”



며칠 전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랫집 어르신의 첫인사말이다. 예상은 했었지만 역시나 본의 아니게 민폐를 끼치고 있었다. 죄송한 마음에 사과만 하면 될 것을 별 시답잖은 소리로 답을 했다.



“저도 소리를 좀 질렀는데 제 고함 소리는 안들리던가예? 여러모로 죄송합니다.”


꾸벅.


각도기가 있었으면 딱 90도였을 것이다.



“애들 클 때는 다 그런 거죠. 괜찮심더!”



아무래도 우리 집 밑에 어르신들이 성인군자이시거나 우리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거나, 둘 중 하나는 틀림이 없다. '다 그런 거죠.' 한마디가 참 고마웠다. 그렇게 길고 긴 터널을 지났다. 밤에 잘 깨지도 않고, 깨더라도 금방 잠들어 주었다. 애들을 키워준 건 시간이었다.





10시가 되면 자겠다던 두 꼬맹이는 11시가 될 때까지 잘 마음이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늘은 내가 성인군자처럼 너그럽게 둘을 지켜보고 있다. 갑자기 둘째가 말한다.


“엄마, 오늘은 내가 형아랑 같이 잘게”


내 마음은 이미 춤을 추고 있지만 좋은 걸 너무 티 내면 안될 것 같은 느낌에 최대한 평온하고 무덤덤하게 대답한다.


“그래, 그렇게 해도 좋을 것 같아”


절대! 그럴 수 있겠어? 네가?라는 부정적인 말로 '한번 더 생각하게 만들면' 오늘 온 기회는 멀리멀리 날아가버릴 것 같아서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가는 걸 제지시키느라 용을 썼다. 일단 자면 웃고 춤추기로.


뭘 그리 이야기하고 노는지 꽁냥 거림은 1시간이 넘어간다. 그러거나 말거나. 덕분에 나도 내 시간을 가졌다. 어느새 조용해진 분위기에 문틀 옆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어보니, 세상 예쁜 표정과 자세로 자고 있다.


드디어 엄마 품을 벗어나 혼자서 자는 날이 왔다.

비록 옆자리는 형아가 있었지만. 수면교육이라고 할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수면독립이 된 첫째와는 달리, 둘째에게는 내가 옆에 있느냐 없느냐의 의미가 컸기 때문에 더 기쁘다.



어머, 또 컸네..


4년의 새벽잠과 늦은 육퇴의 고단함이 한꺼번에 씻겨져 내려간 순간이었다. 힘든 것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고 좋은 것은 영원히 남았으면 좋겠다마는, 시간은 힘든 것이든 좋은 것이든 공평하게 흘려보내는 것 같다. 날마다 부딪히는 모든것들은 어쨌든,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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