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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미화 Mar 20. 2024

모든 것은 나름의 속도로 온다

 나름의 속도로 다가온 사람, 필요 이상 숨길 이유도, 꾸밀 필요도 없다. 요즘은 그런 관계가 편하다.


“언니, 나이가 드니까 좋은 점이 뭔지 아나? 더 뻔뻔해진다는 거. 지금도 여전히 마음 저변에는 남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있지만, 조금씩 옅어져 가는 느낌이라는 거. 누가 뭐라 하든가 말든가 별 신경 안 쓰고 나답게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고 살고 싶어서 자꾸만 내 마음을 단련시키고 있다는 거. 그러거나 말거나 말이야.”



“하고 싶은 게 많고 일단 시작하고 직진해 본다는 건 멋진 일이지. 응원한다!”



“그런데, 아직까지 감도 잘 안 잡히고, 많이 부족한 거 같아.”



“최근에 정재승교수가 쓴 책을 읽었는데, 이런 말이 있더라. ‘계획은 수정하고 다시 만드는데 그 유용함이 있다’고 말이야. 나는 아주 계획적인 사람이라 여행을 가도 준비가 완벽하지 않으면 출발하기가 어려워. 그 여행지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가는지, 가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 건지, 어떤 맛집을 알아내 찾아갈 건지, 심지어 추억이 될 만한 사진 한 장 건지지 못한 여행은 생각하기도 싫은 거 있지? 그런데 넌 안 그렇잖아. 일단 가고 보는 성격인 것 같은데? 계획은 수정될 수 있고, 완벽함을 조금 내려놓는다면 삶이 더 유연하고 풍성해지는 건 분명해. 우리는 다 알면서 안 하는 거지.”



비어 있는 것이 두려운가?
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 불안한가?
<모든 삶이 흐른다>중에서



  바다 수영을 갔을 때, 튜브 허리춤에 차고 물 위를 동동 떠있었던 적이 있다. 튜브에 누운 자세로 바다만큼 파란 하늘을 보며 그저 물결이 이끄는 대로 경계도 없는 바다 위에 떠있었다. 바닥에 발이 닿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살짝 소름이 끼쳤다. 발밑을 가늠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튜브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다. 나는 물공포증이 있다. 물 밖에서 눈으로 보는 바다를 좋아한다. 잔잔한 물결 위로 반짝이는 윤슬을 넋 놓고 한동안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그리도 평온해질 수가 없다. 그러면서도 그 아름다운 수면 아래의 공간을 상상하면 숨이 막힐 듯이 무서워 생각을 뿌리치려 머리를 흔들며 진저리 친다. 당장 나에게 해가 되는 것이 전혀 없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물 밖에서의 거만한 마음도 바다 안에서는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나의 의지와는 달리 그저 물결이 흐르는 대로 밀려오고 쓸려갔다. 매 순간순간 발밑이 바닥에 닿는 곳인지 확인했다. 튜브도 없이 물속을 즐기는 사람들이 마냥 부럽기도 했다. 바다 수영을 갈 때면  즐기러 가는 것인지 내 두려움을 확인하러 가는 곳인지 때때로 헷갈리기도 했다.



우리는 늘 같은 행동을 하면서 앞으로 가지 못한다.
앞으로 나아가고, 바꾸고, 숨 쉬자.
우리의 습관적이고 폐쇄적인 행동들 때문에
질식할 것 같은 일상을 살지 말자.
진짜 위험한 일이다.
<모든 삶이 흐른다>중에서



 

 첫째의 첫 수영을 기억한다. 그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눈빛이 공포와 호기심사이의 어딘가에서 주저하다 즐거움이라는 길로 방향을 틀어버린 그 표정. 발도 닿지 않아, 마치 허공에 떠있는 느낌이었을 텐데도 꽤나 자유로워 보였던 그 여유로움 가득한 웃음이 아주 오랫동안 짙은 잔상으로 남아서 기분이 좋았었다. 저리도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날 아이의 표정을 가끔씩 반추한다.



 바다와 같은 인생을 살면서 발이 닿지 않았을 때 많은 내적갈등을 마주할 것이다.  때로는 물결에 휩쓸려 의도치 않은 곳에 닿기도 하고, 감당하지 못할 파도에 몸이 휘청거리기도 할 것이다. 아이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많은 감정들 앞에서 주저하며 무력해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 저어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음의 등대가 되는 존재들은 무엇인지, 내 인생의 방향을 틀어주는 ‘모든 것을 바꾸는 순간의 소금’은 어떻게 수집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본다. 수영도 못하면서 깊은 곳으로 가보고 싶다는 욕망에 마음을 단련시켜 본다. 여전히 감도 안 잡히고 많이 부족한 나도, 언젠가는 할 수 있다고.




그리고 나는 그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내가 좀 욕심이 많은 사람인가 봐.”




파도처럼 인생에도 게으름과 탄생, 상실과 풍요, 회의와 확산이
나름의 속도로 온다.
<모든 삶은 흐른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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