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괜찮을까?
내가 이걸 왜 시작했을까?
난 재능이 없나봐.
벌써 한시간째 머릿속을 떠돌고 있는 생각이다. 고작 A4한장의 글을 쓰면서 흡사 마감을 코 앞에 둔 베스트셀러작가같은 아우라를 뿜어내며 창작의 고통을 겪고있다.
학창시절 백일장좀 다녀본 언니였던 나는 브런치 프로젝트를 시작할때만 해도 매일 글쓰기 하느라 실랑이 중인 아들녀석 보란듯이 쓸수 있을거라 자신만만했다. 평소 내 인생을 책으로 쓰면 시리즈 10권은 나온다는 허세가득한 아저씨들마냥 얼핏생각해도 글감은 차고 넘치는 것 같았다. 쌍둥이 독박육아를 하면서 해왔던 홈스쿨링이야기들. 나야말로 지난 10년이 대하소설이지. 빨리 합격해서 글 막 올릴수 있으면 좋겠다. 일주일에 여러편 올려도 되나? 어디서 굴러들어온지도 모를 이 근본없는 자신감에 불을 붙이듯 브런치에선 한번에 합격메일을 보내주었다.
첫 글 발행후 가볍게 놀렸던 나의 입을 쥐어박고 싶었다.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자 특별한 육아라고 생각했던 나의 육아와 일상은 너무나 단조로웠고 쓸말은 없었다. 문득 떠오른 글감으로 마구마구 키보드를 두드리다보면 글은 산으로 바다로 제각각이었고,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다 보면 어느새 반토막난 펀드마냥 반으로 줄어든 내용을 보며 좌절하기 일쑤였다. 미안해요. 브런치씨. 우린 함께 할 수 없을것같아요.
이대로 난 브런치에 이름만 올리고 사라진 유령 작가가 될것인가. 뭐든지 책으로, 글로 먼저 배우는 나는 글이 안써지니 일단 글쓰기 관련 책부터 뒤적이기 시작했다. ‘매일 쓰셔야합니다~’ 어느 책이고 다 똑 같은 이야기이다. 일단 먼저 쓰고 고치면 된단다. 요리학원에 등록했더니 일단 음식을 하세요~ 하는것 같다. 이래서 실전은 이론으로 배우면 안되나보다.
모니터 가득한 백지를 보고있자니 여러 사람들이 머리에 스쳐지나간다.
“작가님~~일단 뭐라도 쓰세요~~“
매 수업 모니터안에선 세상 환한 얼굴을 하고 기분좋을 만큼의 유머가 섞인 말투와 그 말투를 똑닮은 글로 사람들을 홀리고 있는 예쁜선생님이 머리를 넘기며 이야기하신다. 꼬박꼬박 작가라고 불러주시며 그만두지도 못하게 응원도 해주신다. 나두 쓰고 싶다고요. 선생님. 선생님 말만 들으면 뚝딱뚝딱 뭔가 나올것 같은데 지금은 열어놓은 새 문서 만큼이나 내 머리속도 하얘졌어요.
“브런치에 글올려?“ ”엄마 이제 작가야?“라며 눈을 빛내던 남편과 아이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육아 시작과 동시에 시작된 나의 전업주부생활. 10년 넘게 아이들에게 모든 에너지를 올인하고 있던 내가 글써서 팔자고쳐보고싶다하니 남편의 응원을 가장한 기대는 하늘을 찌른다.
”돈 많이 벌어~ 내가 집에서 살림할게. 그땐 제주도 가서 살까?“
아니 나는 이효리가 아닌데 왜 당신은 이상순이 되고 싶은거냐고~ 제주도라니. 말만 들어도 기가막힐 일이다.
"엄마, 쓸말이 없는 데 뭐라고 써?” 노트를 펴놓고 늘상 엄마를 부르는 아들에게 “뭐든 니 생각을 쓰라고~~” 쉽게 말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열심히 썼다며 내미는 노트를 흘끗 쳐다보고 한숨을 삼키던 날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지나간다. 아들아 미안했다.
매일 올라오는 동기들의 글을 보며 자만했던 시간들을 반성하고 오늘도 모니터 앞에 앉았다. 평소 '무슨일이든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하다보면 그 시간들이 널 배신하지 않을거야' 라고 말하던 엄마가 3주만에 글쓰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못하겠다 접어버리기엔 키보드를 두드리는 나의 등을 바라보며 궁금해하고 뿌듯해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힘들어도 자식들 생각하며 열심히 일했다고 생색내던 우리네 아버지들의 마음이 이랬으려나.
인내와 고통을 수반한 출산하는 마음으로 한편씩 세상에 내어놓는 자식같은 글들. 차츰 손이 덜가는 글을 낳을 수 있도록 오늘도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