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이런 걸 왜
올해 고3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고3 교실을 처음 들어섰을 때 색감은 회색빛 혹은 무채색의 어느 언저리.
늘 알록달록 다양한 빛깔을 발산하는 곳에서의 생활이 익숙한 저로서는 그곳이 꽤 어색했습니다.
당장 눈앞에 놓여있는 수능이라는 무게를 견디며
잘하고 있는 건지 노력하면 해낼 수 있는지
복잡한 마음으로 하루 7시간 이상 앉아 있어야 하는
그 마음을 모두 헤아릴 수 없겠지만
적어도 제가 받았던 사랑의 응원을 전하자는 마음으로
이것이 제가 교단에 서 있는 이유의 전부라는 마음을 지키며 아이들에게 다가가기로 했습니다.
그 무렵 학습지에서 발견한 어느 학생의 문장.
“아무런 감흥도 없는데, 이런 걸 왜 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를 안 받기 위해 나는 계속 딴짓을 할 것이다.”
이처럼 솔직한 문장을 읽으면서 이 학생이 궁금해졌습니다.
이런 마음을 갖고도 제 수업 시간에는 엎드리지 않고 깨어있는 모습과 스치듯이 건넨 간단한 질문에
대답하는 여러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만 보면 학생을 이해할 수 없기에 숨겨진 마음을 조금씩 꺼낼 수 있는 수업을 고심했습니다.
50분의 수업을 디자인하기 위해 자나 깨나 수업 생각, 심지어 꿈에서도 고3 교실이 등장하는 시간들을
보내고 나니 조금씩 무채색이었던 학생들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는 순간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그 학생의 솔직한 생각의 표현이 다른 학생들로 하여금 심리적 환기 효과로 작용하여 너도나도
웃을 수 있는 수업을 만들어주는 것을 보면서, 그 순간 너무나 활짝 웃고 있는 그 친구에게 진심으로 고마웠어요. 포기하지 않아서, 하루하루 견뎌주어서요.
고3에게 물었습니다.
“지금 제일 두려운 게 뭐야?”
“엄마, 아빠의 기대를 충족시켜 드리지 못할 까봐 무서워요.
기대하는 만큼의 결과를 만들어 드리지 못할 까봐 두려워요.”
좋은 성적과 좋은 대학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한, 그리고 그것이 성공의 유일한 통로라고
알고 있는 학생들에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저는 아쉽게도 ‘대학이 전부야’라고 말하는 교사는 못 될 것 같습니다.
성공이 보장되는 것처럼 보이는 그 길을,
경주마처럼 달려가는 그 삶을,
마냥 응원만 하지도 못할 것 같아요.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도 물어보지 않는 아이들의 마음을 꺼낼 수 있는 수업을 만드는 것, 교실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친구들과 서로를 응원하는 사랑의 가치를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저를 바라보는, 저를 응원하는 학생들의 마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단 한 명의 학생도 포기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임고생 시절의 간절함을 일깨워 준 많은 학생들을 생각하며
멈추지 않고, 느리더라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