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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anna Jul 12. 2023

03 오늘부터는 밥 걱정, 반찬 걱정 다 잊고...

팔순 부모님과 유럽여행 ✈ 느리면 어때? 덜 보면 어때?

          

오늘부터는 밥 걱정, 반찬 걱정 다 잊고 
딸들과의 여행이 시작된다.



드디어 ‘느리면 어때? 덜 보면 어때?’ 우리들의 여행이 시작되는 첫날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엄마는 소중한 이 여행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 일기를 쓰셨다고 한다. 엄마의 일기는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날 새벽부터 시작된다.


엄마의 일기(2019.12.30.) 여행을 떠나는 날 새벽에 쓴 일기

  

밤새 잠이 안온다. 
나한테 세상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이렇게 시작되는 일기... 엄마가 여행을 떠나는 날, 밤새 잠이 안와 뒤척이다 새벽에 홀로 식탁에 앉아 쓰신 일기다. ‘나에게도 이런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 생길 줄은 정말 몰랐다.’ 아이마냥 설레었을 엄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엄마는 출발 시간을 기다리며 새벽에 혼자 앉아 온갖 생각들을 하셨던 것 같다.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바로 17년간 큰아들네와 함께 살며 그 큰 살림과 손주를 다 키우셨던 시간들... 큰아들네가 맞벌이에다 며느리가 백화점에 근무해 퇴근 시간이 늦어 17년간 살림을 도맡아하며 손자 둘을 다 키우셨다. 점점 연세가 들며 힘에 부칠 때도 많으셨다. 하지만 엄마는 평생 그러셨듯이 자식들을 위해 당신을 기꺼이 내어놓으셨다. 주위에선 연세도 많으신데 이제는 알아서 하게 냅두고 두 분이 편히 사시라고 권하지만 그럴 때면 늘 하시는 말씀이 “그럼 저 손주들은 누가 키워?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내가 봐줘야지...”라며 기꺼이 그 많은 살림을 꾸역꾸역 하신 분이다.     

 

오늘부터는 밥 걱정, 반찬 걱정 다 잊고
딸들과의 여행이 시작된다.  



이 짧은 문장 안에서 엄마가 살면서 가장 힘겨워했던 것이 무엇인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바로 밥 차리는 것...

엄마는 비행기가 출발하는 순간부터 여행 중간 중간에도 “15일 동안 밥 걱정, 반찬 걱정 안 해도 되는게 제일 좋네...”라는 말을 마치 후렴구처럼 자주 하셨다. 엄마 인생에서 매일같이 삼시세끼를 차리는 것이 얼마나 큰 굴레였는지... 


엄마는 아빠가 자영업을 하셔서 평생을 하루 세끼 밥을 차리셔야 했다. 거기다 아빠는 까다로운 식성으로 인해 대충 반찬을 하면 불같이 화를 내셨다. 아빠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매일 갓지은 밥을 갖다바쳐야 하고... 성격이 꼼꼼하지 못한 엄마에게 젊을 때는 일주일 식단표를 짜라고 강요할 정도였으니. 성격이 꼼꼼한 J형 아빠와 털털한 P형 엄마가 얼마나 맞지 않았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 

엄마는 그런 아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그냥 시장 가서 나와 있는 거 보고 적당히 사가지고 와서 차리면 되지... 뭘 일 주일 식단표를 짜라고 하는지... 반면 아빠는 주먹구구식으로 즉흥적으로 사지 말고 영양가를 고려해 계획적으로 장을 보는 것이 매일 뭘 먹을 것인가 걱정하는 것보다 더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에서 제안을 하셨다고 하니 이 얼마나 두 분의 생각 차이가 큰지...ㅋㅋ 이 이야기는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 줄곧 들어온 엄마와 아빠의 단골 싸움 소재이기도 했다. 

웬만한 것은 엄마가 다 아빠에게 맞추고 사셨는데 이것만은 엄마 성격상 절대 안 되는 것이었나 보다. 십 년 넘게 줄기차게 제안한 식단표 짜기 제안은 결국 엄마의 버티기 작전으로 엄마 승으로 끝났으니까...     


가난했으나 세끼 밥만은 언제나 제일 강조하셨던 아빠이기에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우리집 식탁은 언제나 고기반찬 등으로 풍성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형제들은 지각을 하는 한이 있어도 아침밥만은 꼭 먹고 학교를 갔다. 다섯 형제가 모두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아침식사를 한 끼도 거른 적이 없다면 믿겠는가?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우리 다섯 형제 중 어릴 적 잔병치레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주위에서 건강비결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어릴적부터 아침밥을 잘 먹어서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하지만 자식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는 것이 엄마의 행복이면서도 동시에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큰 무게로 엄마를 짓누르고 있었다는 것을 ‘오늘부터는 밥 걱정, 반찬 걱정 다 잊고...’라는 말에서 고스란히 그 마음이 느껴진다.     


엄마에게 있어서 여행을 하며 좋은 것 중 하나는 어쩌면 바로 밥 차리는 것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었을까?  ‘오늘 저녁은 뭘 먹지?’라는 평생 해온 걱정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해방감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엄마 걱정 말아요!
15일간의 여행 동안 엄마는 밥 걱정, 반찬 걱정은 물론 손 하나 까딱 안 하셔도 돼요.
모든 것은 두 딸들이 다 알아서 할 거니까요.


조안나 여행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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