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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푼푼 Jul 18. 2023

끝내 난파된 자아를 열렬히 비추다

국가스텐 - 「거울」

사람들은 항상 거울을 본다. 얼굴을 씻을때도, 화장을 할때도, 옷 매무새를 다듬을 때도. 이와 같은 현상의 연장선상이 휴대용 거울이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들은 자신의 형태에 매우 민감하다. 자신을 자신이 비출 수 없기에 다른 물건에 그것을 전적으로 맡긴다.


거울은 단순히 내 피상적인 겉모습만을 비추는 것이 아니다. 내 속마음을 비추기도 하고, 거울 안의 나는 어찌보면 다른 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끔씩은 그 속에 새로운 세상이 있는 듯도 하다.


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에 이질감을 느낀다면 한번쯤은 나를 의심해봐도 좋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몸이 무겁다던가, 집중을 못한다던가. 쉽게 피로감을 느낀다던가. 아니면 이상한 생각이 자꾸 들때 우린 흔히들 '내가 아닌것 같다.' 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이를 거울에 비춰봄으로써 내리게 되는 결론은 자아의 균열이다.


나 스스로가 갈라지고 무너지며 난파되는 그 순간을 적절히 포착하면 어떠할까? 혹자는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그 깊은 어둠에서도 역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처럼 '거울'은 결국 그 속을 반사시키는 하나의 매개체이자 일종의 선언자이다.


오늘 소개할 곡은 난반사된 자아 속에서 허우적대는 자신을 노래한, 국가스텐의 <거울>이다.



왼쪽부터 김기범, 하현우, 전규호, 이정길.


고대 중국식 만화경을 이르는 독일인 '국카스텐'이라는 그 이름부터 이미 그들은 비범하다. 만화경은 유명 닌자만화에서도 나오듯이 무엇인가를 비추고, 보고, 반사시키는 이미지가 강하다. 또한 들여다보는 상자(Guck,보다 + kasten, 상자), 즉 텔레비전이라는 뜻도 내포하고 있다. 텔레비전을 돌려보면 정말 많은 프로그램이 나오지 않는가? 이처럼 그들은 프로그레시브+사이키델릭한 사운드를 기본으로 다채로운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그런 그들의 음악 중에서도 독보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곡이 국카스텐 1집 [Guckkasten]의 타이틀 곡인 <거울>이다.


하현우는 오로지 그 한 곡때문에 작업한 것들이 전부 날아간 상황에서 낸 미완성 앨범을 Re-recoding했다고 말할 정도이고, 대중적인 인지도가 거의 0에 수렴할 무렵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 부르면서 큰 신드롬을 일으켰던 곡 역시 <거울>이었다. 


<거울>의 제작 스토리 역시 눈여겨볼만하다. 샤워를 마치고 알몸으로 나오던 하현우는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알 수 없는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그렇게 천천히 거울을 들여다보던 와중, '그 모습이 과연 나일까'라는 혼란스러운 기분에 사로잡혀 만들어진 곡이 바로 <거울>이다. 샤워를 하고 나오면서 알몸인 채로 거울을 보고.. 어찌보면 매우 흔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레퍼런스를 따오고, 철학적이고 심도깊은 고찰을 행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현우에게 달려있었다. 천재들은 역시 천재들인가..



<가사>


벌거벗은 너의 시선은

벌거벗은 내 몸을 보고

차갑게 너는 나를 안고

야속하게도 키스했네


단단했던 너의 향기에

흔들렸던 나의 발걸음은

비틀거리며 지쳐갔네

비참하게도 너를 찾네


조용히 귀를 막은 채

눈을 감으며 춤을 추는 너

등 뒤에 나를 놓은 채

거울을 보며 춤을 추는 너

거칠은 손을 내밀며

같이 하자고 말을 하는 넌

불안한 몸짓으로 난

거울을 보며 나를 찾고 있네


눈을 가린 채 춤을 추네

귀를 막은 채 춤을 추네

눈을 가린 채 춤을 추네

귀를 막은 채 춤을 추네


조용히 귀를 막은 채

눈을 감으며 춤을 추는 너

등 뒤에 나를 놓은 채

거울을 보며 춤을 추는 너

거칠은 손을 내밀며

같이 하자고 말을 하는 넌

불안한 몸짓으로 넌

거울을 보며 나를 찾고 있네


곡은 중독적이고도 매우 자극적인, 트로트를 연상케하는 기타리프와 함께 시작한다. 아마 이 부분은 왠만한 한국인들은 전부 알것이라 생각한다. 어디서 한번쯤은 들어봤을, 기묘하고 약에 취한 듯한 사운드. 이 것이 결과적으로 그들이 추구하는 음악적인 노선과 이미지를 구축해주었다.


하현우는 이 곡에 대해 인터뷰를 할때 '자아 균열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그만큼 반주도, 가사도, 보컬도 전부 혼란스럽다. 아직 미명속에 갖혀있는 화자의 투영은 곧 난파이다. 가사는 이를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다. 


가사에서의 화자는 한명이지만, 등장하는 대상은 분명히 둘이다. 그러나 명시적으로 누가 누구인지, 거울을 쳐다보고 있는 대상이 누구이고 안에 투영되어 있는 존재는 누구인지 나타나 있지 않다. 하현우는 이 점을 노린 듯 하지만, 해당 글에선 한번 구별해보기로 하겠다. 거울을 보고 있는 이를 'A', 거울안에 비친 이를 'B'라고 하자.


괴기한 분위기의 기타 속주는 점점 그 양태를 드러내며 전진한다. 그러나 아직 보컬은 한껏 웅크리고 있다. 아니, 웅크리고 있다기 보단 합체되어있는 형태이다. 이를 반증하듯 가사에서 드러나고 있는 'A'와 'B'는 아직 하나이다. 본디 한 근원에서 출발한 그들은 서로를 문득 바라본다. 그렇지만 그러한 이끌림은 일방향이다. 우선 '벌거벗은 너'는 B이다. A는 그를 벌거벗은 채 바라보고 있다. 그렇기에 '너'는 'B'이고, 'B'는 모종의 감정적 균열로 인해 'A'에게 '차가운' 키스를 하게 된다. 


원래 '키스'는 달콤하다. 플라톤적으로 말하자면 '서로의 영혼이 오가는 행위'일 것이고, 생물학적으로 바라보면 '뜨거운 타액을 교환하는 행위'일 것이다. 이 어디에도 '차가움'은 온데간데 없다. 그렇기에 '차가운' 키스는 이질적이고, 이후 곡의 전개에 큰 복선이 된다.


'A'는 'B'의 향기에 이끌린다. 본디 한 몸체였기에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것이다. 그의 흔들리던 발걸음은 비틀거리며 지쳐가고, 점점 그것을 비참하게 갈망하고 갈구하게 된다.


거울의 MV.

하현우의 목소리는 이 곡에서의 정반합 그 자체로 기인한다. 차가운 키스 이후의 주술적인 팔세토, 무엇인가를 부르는 듯한 불안하고도 긴장되는 보이스에 자아 간의 균열은 점점 고조된다. 이에 리드기타가 추가되며 다시금 '반'을 불러일으킨다. 적극적으로 치고 나가는 사이키델릭한 음정에 'A'는 넋이 나간듯 거울을 쳐다보고, 'B'는 이에 호응하듯 조용히, 눈을 감은 채, 또 귀를 막은 채 춤을 춘다.


눈과 귀는 인간에 있어 제일 중요한 기관 중 하나이다. 이를 막는다는 것은 일체의 정보도 허락하지 않음으로서 나 자신에게 집중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춤을 추는 것은 에너지를 표출하고, 소비함으로써 자신을 보여주기 위한 행위로 기능한다. 그렇기에 이런 굉장히 이질적이고, 역설적인 두 행위가 양립한다는 것은 'B'가 굉장한 혼란에 쌓여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계속 이를 지켜보고 있던 'B'의 시선은 '등 뒤에 나를 놓은 채 거울을 보며 춤을 추는 너'로 옮겨간다. 결국 춤을 추면 출수록 나는 점점 분리되어가는 것이다. 아예 처음부터 다른 사람이었던 것처럼, 철저히 분단된 두 자아는 극심한 카오스에 빨려들어간 'A'와 'B'의 모체, 화자를 보여준다.


그러나 'B'는 이러한 상황을 즐긴다. 오히려 '거칠은 손을 내밀며', 같이하자고 'A'를 꼬드긴다. 춤은 곧 '흥'이다. 즐거운 것을 점점 옮겨가며 에너지를 표출하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이 춤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이다. 그렇기에 'A'는 이러한 행위가 자연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원래 진정한 혼돈은 '혼란스럽다'라는 자각없이 지속되는 법이다.


'A'는 아직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오로지 'B'를 찾겠다는 의지하나로 불안한 몸짓과 함께 거울을 보며 '나'를 찾으려 한다. 그러나 'A'는 아마 'B'를 찾지 못할것이다. 'B'는 광기어린 춤을 계속해서 춘다. 기타의 속주는 이펙터와 함께 같이 그 광기를 더욱 퍼트리며 전진한다. 


마치 굿을 보는 듯한 그림이 눈 앞에 펼쳐진다. '정신사나움'이 그대로 구현된 듯한 음악적 상황에 'A'는 계속해서 완성되지 않는 나를 거울에서 찾으려 한다. 하지만 거울의 나인 'B'는 이미 그 질료를 잃어버린지 오래이다. '하나'의 세상에서 그것은 배제되었다. 'A'는 결국 변증법적으로 '합'을 찾으려 할것이다. 하현우의 목소리를 빌려 크게도 외쳐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와 괴기스러운 춤 뿐..



끝내며.


<거울>은 하현우의 자전적인 노래이다. 분리된 자아, 불안감, 누가 자신인지 모르겠는 험난하고 지난한 상황. 그들은 이미 수년정도 그러한 생활을 지속해왔다. 그렇게 핀치에 몰린 상태에서 탄생한 곡이 바로 <거울>이다.


하현우는 자아의 분리를 받아들였다. 이것이 범인들과의 차이이다. 대부분의 이들은 자신이 혼란스럽고, 자아의 균열을 자각하지 못한다. 설령 알아차린다 한들, 그것을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서서히 썩어갈 공산이 크다. 그는 이것에 반기를 든 것이다. 역설적으로 늘 불안하고 붕괴되어가고 있는 자신을 받아들이면서 철학적 고찰을 통해 한단계 더 성장하게 되었다.


음악적으로도 그는 비범하다. 단순한 코드의 반복과 리드기타/베이스/드럼으로 구성된 실로 단순하고 근본적인 밴드적 사운드의 구현. 본래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Simple is Best. 비록 그들은 정말 대중적으로 성공했다고 할만한 곡이 이 <거울>밖에 없지만, 그들만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주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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