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를 읽는 인간지성

by Tony C

창조 세계 속의 인간


기독교회

'기독 교회'는,

태초에 '창조주 하나님께서 '천지만물과, 모든 생물과 사람을 '영원히 사는 완전한 형상'으로 지으셨다는 것'을 믿는 자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깨버린 '아담과 하와의 원죄모든 후손에게 유전되는 것'을 인정하는 자들',

'아담의 아들 셋의 의로운 신앙'을 계승하는 자들',

'노아와 그 가족의 순종 그리고, 그들이 얻은 구원'에 소망을 둔 자들',

'아브라함의 믿음 물려받았고, 그와 그 아들 이삭의 순종'을 본받아 행하는 자들',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제정된 율법의 핵심을 따라,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이웃을 사랑하는 자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신 성부 하나님의 아들 이심'을 믿는 자들',

'성자 예수께서 '믿는 모든 자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는 자들',

'아담의 원죄'와 '자신의 자범죄'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살인죄'를 주께 자복하고 죄 사함을 받은 자들',

'그리스도의 계명'을 알고 지키며, 또한 그분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명'을 알고 행하는 자들'

'그리스도의 거룩한 영'이며, 보혜사로 임하신 '성령'께서 '모든 교회의 주인'이심을 믿고 인정하는 자들',

'성령의 가르침을 받으며, 그분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자들'


'다시 오리라' 하신 주님의 '재림 언약'을 믿고 기다리는 자들'

'그날이 이르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모든 자를 다시 살리신다'는 '부활 언약'을 믿고 기다리는 자들',

'그 첫 부활에 자신도 동참할 것'을 믿고 기다리는 자들',

'다시 오신 주님과 함께 영생을 살 것이라는 '영생 언약'을 믿고 기다리는 자들',

'재림하신 심판주께서 '옛적 거짓의 아비와 그를 섬기며 끝날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행하실 그 심판에 동참할 것'을 믿는 자들',

'심판 후, '새롭게 하신 이 땅'에서 '만왕의 왕', '만주의 주'를 섬기며 그분의 통치에 동참할 것'을 믿는 자들',


이와 같은 '성경의 모든 역사, 언약, 복음, 계시'를 믿는 세계만방의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입니다.


또한, '기독 교회'는

천지를 지으신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아담과 그의 후손과 모든 생명의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시며,

'내가 거룩한 것 같이 너희도 거룩하라' 명하신 '절대 선'이시고 '사랑'과 '공의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앞에서 '완전한 인류 구원'을 성취하신 '구원의 하나님'이시며,

'부활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서 '모든 성도와 교회의 주인'이 되시며,

'다시 오리라' 약속하신 대로 '심판주 하나님'으로 임하셔서, 그분의 세계를 새롭게 하실 '권능의 하나님'이신

곧, 뜻하시고 말씀하신 모든 것을 성취하시는 '성삼위일체 여호와 하나님,

'그 주님 안에서 하나 되어 앙망하는 성도의 나라'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주관하신 모든 역사와, 그분이 누구신지를 아는 모든 성도를 '성부 하나님께로 인도하실 분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뿐이십니다. 그와 같이, '유일한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서 그리스도께서는 그분과 하나 된 성도를 세상에서 구별해, 교회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왜곡하고 거짓으로 가르쳐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거짓 선지자 그리고, 그리스도를 죽이고 또, 거듭해서 그분과 하나인 성도를 죽이는 살인자 모든 대적자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있는 그곳에 이르지 못한다'라고 못 박았으며, 반드시 임할 영원한 심판을 선포하셨으며, 그 심판의 주관자로 다시 오실 것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언약계명사명 바로 알고, 지키며, 동참하는 성도는,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사신 그 모습처럼 '세상에 있으되 속하지 않았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의 죄 사함을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것처럼 '자기 십자가를 집니다.' 비록 '육적 싸움'에서는 패하거나 죽을지언정, '영적 싸움'에서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 권능'에 의한 '영원한 승리를 쟁취한 자'입니다.



창세기

여러 창조 신화들이 있지만, 역사적 체계를 명확히 갖춘 '성경적 창세서술'을 정리합니다.

'기독 교회'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성도'가 믿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계 곧, 성경의 창세기에 관한 서술입니다.

'온 세계와 만물'은 '태초'라는 시간대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창조 과정은, 태초 7일 중 첫 3일/ 둘째 3일/ 안식일 1일로 분류됩니다.


첫째 3일

첫 3일의 첫째 날에는, 이미 있던 '흑암'에 '하나님의 영원한 '이 나타나, '완전한 어둠만 있던 공허그 빛으로 나뉘게 하셔서, ''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순환'하기 시작했습니다.

둘째 날에는, 없던 물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을 나누셔서 그 사이에 궁창이 있게 되었습니다.

셋째 날에는, 물을 한 곳에 모으셨고, 그 물속에서 이 드러나게 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바다'가 나뉘었고, 땅에는 ''과 '씨 맺는 채소'와 '씨를 가진 과일나무'를 각기 종류대로 자라게 하셨습니다.


즉, '흑암'과 ''과 ''은 이미 있었고, 그 물이 나뉘어 '궁창'과 ''과 '바다'가 각기 제 자리를 잡도록 조성된 것입니다. 그 조성과정에서, '모든 피조물이 생육하고 번성할 '물리 세계의 구조'가 이루어졌고, '자연의 모든 이치와 순리'가 순환하게 된 것입니다.


둘째 3일

둘째 3일의 첫째 날인 넷째 날에는, 해, 달, 별을 지어 비로소 '천체들의 운행이 시작'되면서 '지상의 시간'이 흐르게 됩니다. '24시간인 낮과 밤의 하루' 그리고 '주간', '월간', '계절', '연한'을 이루었고 또, 하나님께서 세계에 행하실 일들의 '징조'도 보이게 하셨습니다.

다섯째 날에는, 하늘에 새들이 종류대로, 바다에는 해상 생물들종류대로 지음 받아 번성했으며, 그 생물들에게 '온 하늘과 바다에 충만하도록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복을 주셨습니다.

여섯째 날에는, '땅 위의 생물' 곧, '육축'과 '기는 것'과 '짐승'을 종류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늘, 땅, 바다의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도록 '사람' 곧, '남자여자'를 지으셨습니다.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늘, 땅, 바다의 모든 생물에게는 '셋째 날에 있게 하신 각종 '을 '먹을 양식'으로 주셨고, 사람에게는 역시 '셋째 날에 지어진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를 '먹을 양식'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들을 각기 완벽하게 만드셨고, 그 하나하나를 만드실 때마다 그 완전성에 만족하셔서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묘사로 '그분의 완전한 기쁨'이 성경에 기록되게 하셨습니다.


일곱째 날 안식일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쉬시며 '안식하신 날'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육적인 피로에 의해 지치신 것'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지친다는 것이 없으신 하나님'에 관한 여러 기록이 성경에 있기도 하지만, '영이신 하나님의 권능'에 '피곤'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의 안식'에는, '쉽게 지치는 사람에게 필요한 ''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즉, 모든 생명은, '7일 주간의 순환' 가운데서 6일간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사명을 성실하게 수행'하고 7일에는 '하나님과 독대하며 교제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의미로, '육체를 가진 생물과 사람의 '복된 일상'을 위하는 의미'입니다. '사람의 쉼'이 곧 '일상에서 구별된 예배'라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창세기를 보는 인간 지성

창조 섭리와 인간 지성

그런데 성경 창세기에는 '인간 지성의 상식으로 보면 말이 안 되는 서술'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서술이 정말 신화인지 아니면, '인간 이해를 넘어선 신비'인지는 두고 봐야 할 것입니다.

고대 자연철학은 '신화에 대한 반향'으로 발전했고, '자연과학의 역사'를 일구면서 지금의 '물리학'에 이릅니다. 그리고 그런 자연과학과 수학 천문학 같은 '인간 학문의 역사'가 거듭 강조해서 말하는 것은, '우주와 천체와 지구 자연'에는 인간 지성이 찾아내고 밝혀내 알게 된 것들보다, 비교불가 수준으로 더 많은 미지의 것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미지의 것들'을 다시 창조신학 관점에서 보면 곧, '하나님의 창조 섭리에 있는 신비'와 같은 것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라는 문구에서 영감을 받은 소크라테스는 당대에 이름난 현자, 학자, 지식인, 정치인들을 만나 논쟁하며 '진정한 현자'를 찾아다녔습니다. 그들에게 던진 화두는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맥락의 질문들이었고, '신의 존재에 대해 아는 바가 있습니까? 자연의 생성 원리에 대해 아는 바가 있습니까? 세상이 흘러가는 이치에 대해 아는 바가 있습니까? 인간 역사의 시작과 끝을 아십니까? 당신의 가족, 형제, 친구, 이웃 중 누구 한 사람이라도 그에 대해 완벽하게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 자신에 관해서는 무엇을 알고 있습니까?'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가진 현자'는 찾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당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라'라는 결론에 다다른 그들의 대화는 소크라테스에게 독이 되어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분명, 창세기에는 지금까지 밝혀진 '과학적 사실들'에 부합하지 않는 서술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학적 사실이 '우주와 자연의 이치와 순리'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고, 그 한계의 저편에 있는 미지의 영역이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섭리'입니다. 즉, '사람의 작은 손바닥 위에 있는 모래를 셀 수 있다고 해서 지구상의 모든 모래를 셀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과학적 사실과 부합되지 않아 논쟁의 중심에 있게 된 것은 '넷째 날에 만들어진 태양'입니다.

'태양이 있기 전에 이 먼저 만들어졌다는 기록'

-'태양이 없으면 빛도 없다'는 일반상식과 다릅니다.

'태양, 지구, 달의 운행이 있기 전에 '낮과 밤의 하루'가 이미 있었다는 기록'

-지구 자전도 없고 공전도 없어서 해가 뜨고 지지를 않는데, '어떻게 '낮과 밤의 하루'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광합성으로 자라는 ', 채소, 나무'가 해 보다 먼저 만들어졌다는 기록'

-모든 식물은 광합성으로 성장하는데, '어떻게 해 보다 먼저 그 식물들이 있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즉, 자연의 순리를 뒤집는 그 기록들을 '과학적-논리적 사실에 비추어 보면, '거짓된 신화'라는 주장입니다.

그중에서도, '넷째 날, 태양과 달과 별들이 만들어지기 하루 전, 곧 셋째 날에 이미 지구라고 불려질 이 먼저 만들어졌다는 기록'은 '지동설과 천동설의 논쟁과 갈등'이 지속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동설'이 천문학, 수학, 기하학을 통해 분명한 사실로 밝혀지기까지 '로마 가톨릭'은 '성서 무오성'을 주장하며 그들의 '권력과 교회법'으로 '학문과 지식의 원천'을 오랜 세월 동안 탄압했습니다. 그러나, 성서 무오성은 '하나님 말씀과 성서의 내용'에 오류가 없다'는 것에만 본질적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 무오성으로 하나님의 세계를 연구하는 인간 지성을 훼방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지동설'은 물론이거니와 '천동설'도 성경의 창조 기록에서는 언급되지 않습니다. 다만 '천체들의 운행에 관해 '날과 계절과 연한을 이룬다'는 간략한 묘사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먼저 명확히 할 것은, '천동설'은 창세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 지성과 상상력'이 창세 기록을 해석하고 정리한 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즉, 상세하고 과학적인 설명 없이, 단지 '필요 내용만 요약한 창조기록'에 있는 '태양과 지구의 조성 순서'를 '옛사람들의 상상력으로 그려낸 것이 '천동설'입니다. 성경과는 다른, 너무나 인간적인 그 해석에 '하나님의 창조 신비를 담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무가치할 뿐 아니라, 창조 신비나 피조 원리와의 연관성 마저 전혀 없고, 피조계의 구조와도 전혀 다릅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그 거짓 해석'이 '바른 신학적 견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로마의 철학과 토속 종교에 배경을 둔 자들'이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어쩌면 그 이전부터, 로마 교회의 권력 아래로 들어와 성경 기록을 보고 '그들의 상상력으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틀려먹은 해석'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로마 가톨릭'은 그 '거짓 해석'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둔갑시켰습니다.

이후 르네상스를 거쳐 '자연 과학의 발전 과정에서 천체 운행을 관찰하고, 밝혀진 사실'을 주장하는 자들을 '로마 가톨릭'은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위협하고 처벌하고 살해했습니다. '거짓으로 유지해 온 권력을 지키기 위해 '사실을 말하는 자들'을 '교회 권위라는 양의 탈'을 쓰고 죽인 것입니다.'

때문에, '그리스도의 교회'는 '거짓과 미신의 저급한 종교라는 오명'을 뒤집어썼고, 하나님의 말씀은 믿지 못할 거짓이 되었으며, 하나님은 인간의 손으로 다시 한번 죽임을 당했습니다. 결국, 천동설이든 지동설이든 하나님의 창조와는 상관없이 '세속적 기득권 분쟁의 도구'가 되었을 뿐입니다.



인간의 무지

그리고, '창조'의 원개념은 '아무것도 없던 것에 어떤 것이 있게 된다'는 것이며, '창조의 속성'에는 '조물-피조 개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물'은 '창조주가 지으시는 것'으로 '조물주'라는 표현이 있고, '피조'는 '지음 받은'으로 '피조물'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그에는 '원료를 가지고 만든다'는 의미가 분명하게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슈들은, '창조'에 있는 '조물-피조 개념이 결여된 채, '자연과학의 발전을 통해 밝혀진 사실들'에 입각한 주장 또는 질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오해는, '우주에는 태양에서 근원한 빛의 종류들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많은 종류의 빛'이 있다는 것과, 더욱이 '은하의 중심에는 태양 빛을 반딧불이처럼 보게 하는 창대한 빛'이 있다는 것을 주목하지 못한 것입니다. 즉, '지구라 불려질 땅'과 '태양'이 형성되기 '이전부터 이미 있던 '빛과 어둠'이 나뉘어 태양계까지 비추는 '낮 그리고, 밤'을 이룬 것이라고 본다면, '그런 오해와 의문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입니다.


따라서 고려할 것은, '첫 3일'과 '둘째 3일'에 있었던 '낮과 밤의 하루'는 각기 근원에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첫 3일에는 '이미 있던 빛과 어둠' 그리고 '물과 대기', '땅과 바다'에 의한 '시간'이었고, 넷째 날에는 '해, 달, 별이 운행을 시작'하면서 '지상의 시간'이 흐르게 된 것입니다. 즉, 두 시간의 속성이 다르기 때문에 '태초라는 개념'은 '첫 3일의 태초'와 '둘째 3일의 태초'로 구분됩니다.


그 이해를 위해 비유적으로 천문학적 사실들을 조합해서 하나의 논리를 만들어 봅니다. 이는 '이해의 진보를 위한 것'이지 '성경적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분명한 것 하나는, '태초의 첫날에 나타난 빛'은 분명 '태양 빛'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하나님은 빛이시다'라는 문구에 본질적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빛을 '우리 은하계 중심에 있는 '블랙홀을 두른 빛의 분출'이라고 본다면, 그 태초의 첫 3일은 곧, 해가 비추는 지상의 낮과 밤인 하루가 아닌 '은하 차원의 낮과 밤인 하루'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첫날에 우리 은하 안에는 이미 천문학적인 숫자의 각종 태양계와 항성, 행성, 위성들이 만들진 것입니다. 그리고 좀 더 진전시켜서 보면, 우리 은하 바깥의 우주는 그 태초 이전에 이미 있던 것이 됩니다.

그리고, 지구라는 행성에 모든 생명이 살아갈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셋째 날과 넷째 날에 구조를 이룬 것'이 '태양계의 항성과 행성과 위성들'이라고 본다면, 비록 셋째 날에 태양은 아직 없지만,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 있게 하신 그 빛에 의해 '모든 종류의 풀, 채소, 과일나무가 생장할 수 있는 환경'이 이미 조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말 맞추기'가 '과학적 사실에 부합하는 창조 기록'에 대한 설명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추측으로 분명히 드러나는 하나는, '사실 여부에 대한 증명이나 검증'이 아닌 '인간 지성의 무지'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 히브리 원문으로는 먼지 같은 티끌로 사람의 육체를 만들었다 했고, 그 속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생명이 없던 육체를 살아 숨 쉬고 활동하는 생령'이 되게 하신 것은, '없는 것에 어떤 것을 있게 하는' '하나님 말씀에 의한 창조'가 분명합니다.

미술가인 필자는 흙으로 사람 형상을 많이 만들었는데, 그 형상에 내 호흡을 불어넣는다고 해서 살아 숨 쉬고 생육하지 않는다는 것의 반대 특성으로, '생명 탄생'이라는 그것이 곧 '창조'인 것입니다. 그 생명이 이미 '영원하신 하나님 안에 있었지만 '그 생명'은 물질이나 원료가 아니라 '거룩한 '이기 때문에 '육체에 생명이 깃드는 그것'은 분명한 '창조'입니다.

그리고, '세계 만물의 형상'은, '이미 있는 원료'인 '빛과 어둠의 순환에너지' 그리고, '물'과 '물에서 나온 땅'으로부터 만들어진 자연만물 하나하나는 '창조주의 말씀의 능력'으로 피조된 것입니다. 즉, 태초 7일 동안에는 '없던 어떤 것을 있게 한다'는 말뜻 그대로의 '창조'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창조 섭리'에 있는 '피조 원리'에 따라 만물의 형상은 '조물주에 의해 만들어진 피조물'입니다.



인간 지성에 의한 분별

즉, 인간 지성에는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의 경계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을 인정하고 분별하는 것이 '과학자에게는 하나의 지표'가 되고,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의 신비'에 대한 바른 접근이 됩니다.

그리고 '세계를 이룬 이치'에 대한 호기심과, 알고자 하는 열망과, 여러 시도들'은 분명 유익한 것이지만, 그러나, '모든 것을 밝혀낼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자신감' 또는, '인간의 짧디 짧은 지식'에 '하나님의 창조와 피조 섭리'를 끼워 맞추거나, 또는 자신이 가진 지식과 다르다 해서 '거짓이라고 규정해 버리는 성급한 판단'은 한마디로 '어리석다'라고 밖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육체가 티끌로 만들어졌으므로 사람의 지성은 '물질과 물리 현상과 원리'에 관해서는 숨겨진 비밀들을 밝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은 사람의 지성이 닿을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 안에 있습니다.

태초에 있었던 그 관련 예로, 태양이 있기 전 셋째 날에, '풀과 채소와 과일나무'가 먼저 자라나 번성했다는 것입니다. 이후로 있을 둘째 3일 동안에 '하늘과 바다, 그리고 땅에서 번성할 모든 생명이 생육하는데 필요한 양식'이 먼저 만들어진 것입니다. 즉, 생명이 살아갈 환경 조성생명체 피조 사이에 있는 연결체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섭리로 이루어진 신비'이며, 그것을 인간 지성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곧, 어리석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와 피조'에 대한 '무지와 오해' 때문에 성경을 '맹목적인 믿음'만으로 보는 자'와 '단순 사실 판단'만으로 보는 자' 사이에서 논쟁과 대립은 발생했고, 여전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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