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nd, 하늘 상급 1
신앙의 승리자임이 그리스도께 인정된 자에게는 일곱 교회에 보내신 그리스도의 편지에 기록된 모든 하늘 상급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에 관해서 필자의 아는 바가 미련하지만 그나마 아는 만큼이라도 나누어 봅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에 기록된 바를 따라가는 것'이지 실제로 그 상급들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필자도 알지 못합니다. 아직 받지 못했고 '주실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만 간절한 소망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이성으로는 알 수 없는 신비가 계시록의 많은 곳에서 묘사되는데 하늘의 것을 사람의 말로 형용할 수 없기 때문에 상징과 비유를 사용할 수밖에 없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징을 '어떤 암호 코드'로 풀어보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요한 계시록이 '공개된 하나님의 비밀이라는 것'을 간과한다면 그렇게라도 풀어보려고 하는 것이 분명 자연적인 사람의 이성일 것입니다.
그러나 공개된 비밀이란 '글을 읽어서 깨닫는 사람이 있고/없고에 따름'이지, 하나님과 관계없는 자라 할지라도 지적 능력이 탁월해서 풀면 풀 수 있는 암호와 같을 수는 없습니다.
또한 창세기 기록을 '실제 역사'로 믿는다면 '에덴동산과 생명나무 열매를 비롯한 하늘 상급들이 실재하는 것'으로 믿는데도 큰 어려움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신화나 설화쯤으로 본다면 그는 주님을 믿는 성도가 아니거나, 곧 믿게 될 자입니다.
그러나, 그 상급들이 상징하는 바는 각기 개별적으로 있습니다. 그 상징이 실재일 수도 있고, 단지 상징일 수도 비유일 수도 있지만, 그에 대한 여부는 주님만 아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그 의미를 아는 것이 지상의 성도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7절]
"귀 있는 사람은 성령님이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신앙의 승리자에게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열매를 먹게 하겠다."
'영생을 주는 하늘 양식'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낙원'은 창세기의 에덴동산이거나 그와 같은 곳이며, 그곳은 아담의 타락 이후 어느 날 지상에서 감춰졌는지,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라지거나 파괴된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다만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 낙원에는 또한 타락 이전의 아담과 하와가 아무 제약 없이 먹었던 '생명나무와 그 열매'가 있습니다.
그리고 생명나무 열매는 '그리스도의 살과 피'와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32~59절' 말씀에서 '하늘로서 내려온 떡' '생명의 떡',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 '생명을 위한 내[예수님의] 살과 피', '참된 양식, 참된 음료'와 같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영생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
"~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
그러나 그 표현 그대로 예수님의 인육을 먹어야 한다고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가 곧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하면서 떠나간 많은 제자들과 같은 자입니다.
광야에서 굶주리신 주님께서 사탄에게 대답하신 말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하신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곧 생명나무 열매인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주께서는 그 의미를 담은 '성찬 예식을 지킬 것'을 제자들에게 명하셨습니다. 그 예식에서 먹고 마시는 것이 '지상의 떡과 포도주'라면, 참된 하늘 양식은 곧, '생명나무 열매'이며 새 예루살렘에서 흐르는 '생명수'입니다. 우리가 먹게 될 하늘 양식은 또한 '하나님 말씀의 모든 것을 아는 참된 지식'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성경 역사에서 이미 사람이 맛을 봤던 하늘 양식이 두 개가 있는데, 그 첫째가 '생명나무 열매'이고 또 하나는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먹었던 '만나'입니다. 생명나무 열매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나면서 감추어졌고, 만나 역시 가나안 입성과 함께 그쳤습니다.
즉, '죄인이 되어 육체의 죽음 아래에 있는 사람'에게서 감추어져, 더 이상 맛볼 수 없는 하늘 양식입니다.
그러나 첫째 부활에 동참하게 될 모든 죽은 자가 부활해서 얻게 될 '그 영원의 육체'는 만나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열매를 먹을 수 있는 '완전한 의와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생명 양식은 언제나 누구나 마음대로 먹을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
"너는 앞으로 겪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 마귀가 너희를 시험하려고,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잡아 가둘 것이며, 너희는 10일 동안 고난을 받을 것이다. 너는 죽도록 충성하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너에게 주겠다."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내하며, 마귀의 시험을 말씀으로 이기고, 죽도록 충성하는 신앙의 승리자에게 어린양 그리스도께서 주실 하늘 상급입니다.
사도 야고보 역시 동일한 가르침을 남겼는데 '야고보서 1장 12절'에 있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곧, '생명의 면류관'은 고난을 인내하고 시험을 이긴 자가 얻게 될 '영원한 생명', 그리고 그 영생 가운데서 얻게 될 '왕의 권위와 권세'를 상징합니다.
관련해서 조금 더 묵상해봐야 할 것이 있는데 '그리스도께서 주실 왕권과 제사장권'에 관한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영원한 대제사장 직분을 가지신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한 상급이고, '면류관'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왕권에 의한 상급으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기록된 말씀을 보면, 예수님을 묘사하는 많은 표현들 중에 '다윗의 자손', '영원한 대제사장'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제사규례'와 '제사장 임명 규례'를 율법에 담아 모세와 아론에게 주실 때,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는 대제사장과 제사장의 직분이 유전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언약, 곧 계약을 맺으시고 '제사장 나라의 권위'를 부여하셨습니다.
400여 년 후에는,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고 그의 자손으로 다윗의 왕권이 유전되게 하셨으며, 그와 언약을 맺으시며 '그 왕권이 영원하리라는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1천 년 뒤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의 왕권과 아론의 대제사장 직분을 모두 가지신 지존자'로 이 땅에 오셨고, 그 권위에 의해 지상의 하나님 나라 곧, 교회를 세우셨으며, 주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는 지상의 교회가 비로소 '거룩하고 영원한 그리스도의 나라'로 완전해질 것입니다.
'그 영원한 대제사장 나라의 지존하신 만왕의 왕'이 어린양 그리스도이십니다.
이를 달리 말하면, 비록 이 땅에 계시는 동안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면류관을 쓰지 못하셨지만, '부활하심'을 통해 '주님의 대제사장권과 다윗의 왕권'이 사망을 이기고 영생이 회복됨을 받는 지상의 만백성과 모든 만물에게 선포되었습니다.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좌정하심'을 통해서는 위로는 '성부 하나님 앞에 선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고, 아래로는 이스라엘과 이방 만백성의 '영원한 의의 왕'이 되며, 넓게는 주께서 지으신 온 세계 만물에게까지 '지존하신 왕 곧, 사람의 완전한 육체를 가진 만왕의 왕'으로 인정되셨습니다.
그러한 '지존의 왕권'이 주님을 섬기는 이긴 자들에게 또한 '왕의 권위'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 그리스도의 구원을 받은 자의 권위가 어떠한지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즉, '왕 같은 제사장'이라는 묘사에는 '그리스도께 있는 영원한 지존의 왕권과 대제사장권이 중복된 의미'를 가집니다. 죄인 된 사람에게는 과분하다 생각될 수 있지만, '주님께 있는 그 두 권위'가 신앙의 승리자들에게도 주어질 것이란 뜻이 됩니다.
역사적으로 면류관은 왕의 대관식 때 왕의 머리에 씌워지는 '왕권의 상징'이지만, 그러나 단지 상징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하늘 예배처소에 이끌려 올라갔을 때 만난 24 장로들 역시 각기 면류관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고려해 봐도 '생명의 면류관'이 단지 상징뿐일 수많은 없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1절]
"귀 있는 사람은 성령님이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신앙의 승리자[이긴 자]는 두 번째 죽음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최종 심판에서 둘째 사망의 판결'을 받지 않고 '하나님 앞에 의인으로 세우심을 받게 되는 상급'입니다.
이는 곧, 역사 이래 땅과 바다에서 죽은 모든 자들이 부활할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 부활은 '의인의 인정을 받은 자'와 어린양의 최종심판에서 '영원한 사망의 판결을 받을 자의 부활'로 구분됩니다.
의인으로 인정된 자는 주님의 재림을 알리는 마지막 나팔 소리가 울릴 때 먼저 부활해서, 어린양의 지상 심판에 동참할 것입니다. 계시록에서는 '인 맞은 자'로도 표현됩니다.
그리고, 부활이 없는 영원한 사망 곧 '둘째 사망의 판결을 받을 자'를 최종 심판의 판결대 앞에 세우기 위하여 '둘째 부활의 그날'에 땅과 바다가 그들을 내어 놓을 것입니다.
이사야 26장 19~21절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 들아 [죽어 있는 자들].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가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당한 자를 다시는 가리우지 아니하리라."
계시록 이전의 성경 기록에는 '최종 심판에 의한 둘째 사망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그러나 이사야서에서 분명한 관련 언급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한 에스겔을 비롯한 17권의 구약의 예언서 전체는 그리스도의 계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25장 7, 8절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
이사야 26장 13, 14절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여.
주 외에 다른 주들이 우리를 관할하였사오나, 우리가 주만 의뢰하고 주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그들은 죽었은즉 다시 살지 못하겠고, 사망하였은즉 일어나지 못할 것이니.
이는 주께서 벌하여 멸하사 그 모든 기억을 멸절하셨음이니이다."
[요한계시록 2장 17절]
"귀 있는 사람은 성령님이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신앙의 승리자에게는 내가 하늘에 감추어 둔 만나와 흰 돌을 주겠다. 그 돌에는 받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새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만나 & 생명의 떡
생명나무 열매와 같은 하늘 양식이지만, 예수께서 "너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요한복음 6장 49절]"라고 하신 것처럼 '영생하게 하는 생명나무 열매'와는 구분됩니다.
즉 만나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하늘 양식 곧, '모세의 율법'에 대한 상징이며, 그 만나를 주신다는 것은 '아브라함 육체의 자손 이스라엘'이 그 율법에 대하여 '완전한 의를 얻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6장 42~51절',
'가로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저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로서 내려왔다 하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서로 수군거리지 말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선지자의 글에 저희가 다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으리라 기록되었은즉,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마다 내게로 오느니라."
"이는 아버지를 본 자가 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예수]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예수의 정체성에 대해 의심하는 유대인들에게 대답하시되, '예수께서 사람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실 것'에 대한 묘사로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라 하시면서 '주께서 영생의 주인이심'을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는 말씀에는 주를 믿는 자에게 주어질 '율법적으로 완전한 의에 의한 무죄'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의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주시는 완전한 의'입니다.
흰 돌 & 새 이름
만나에 덧붙여 언급된 것이 "새 이름이 새겨진 흰 돌"인데, 고대 근동의 광범위한 지역에서는 유-무죄를 판결하는 재판정에서 '유죄일 경우 검은 돌', '무죄일 경우 흰 돌'로 판결을 확정하던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때문에 보편적으로 '흰 돌이 가진 무죄의 의미'는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그들의 왕으로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그 민족적 범죄에 대해 '자기 죄를 자복하고 주님의 죄 사함을 받은 참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에게 최종적으로 무죄가 선고된다는 의미가 됩니다. 곧,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한 많은 선지자들이 예언한 '참 이스라엘의 구원과 회복의 성취입니다.'
그리고, 그 흰 돌에는 오직 '받는 사람만 알 수 있는 새 이름'이 새겨진다고 하셨습니다. 그 새 이름의 의미는 죄와 악으로부터 완전한 자유를 얻지 못한 채 단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소망과 언약을 기다리던 자에게, 이전의 모든 연약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허무 아래에 있던 자연적 육체와 타락한 인간 정체성을 벗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신성을 지닌 생령[a living soul]으로서의 영원한 생명을 회복한 자에게 주어질 새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주님과 당사자 외에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이름인데, 이는 '본인과 주님 단 둘만의 친밀하고 비밀스러운 인격적 관계'가 형성됨을 의미합니다.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만 아버지를 보았느니라"라는 말씀에는 예정론적 의미에 더하여 '생명의 떡을 먹은 자와 주님 사이에 맺어질 영원하고 인격적인 친밀한 관계'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어린양의 혼인 예식
즉 '흰 돌에 새겨질 새 이름'에 관련된 것이면서 또한 '어린양의 혼인식'으로 연결됩니다.
그 의미는 '고린도 후서 11장 2절'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 이것은 내가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약혼을 시켰기 때문입니다.'에도 담겨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4절'에서도 같은 의미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데에는 죄악에 물들지 않은 사람이 몇 있다. 그들은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에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다."
'요한계시록 19장 7, 8절'
"어린양의 결혼 날이 이르렀다. 신부는 몸단장을 마치고 빛나고 깨끗한 모시옷[=세마포]을 받아 입었으니, 이 모시옷은 성도들의 의로운 행위이다."
라는 계시에서도 동일한 의미가 좀 다르게 묘사되는데, '3장 4절'이 앞으로 있을 일에 대한 '미래 예언적 표현'이라면, '19장 7,8'절은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있는 때에 대한 '현재적 표현'입니다.
즉, 지상의 성도가 그리스도께서 먼저 가신 그 좁은 길을 따라 가며 주께서 주신 모든 것을 지켜 살며 주의 십자가 죽음에 동참한 자가 '계시된 주님의 때에 어린양의 신부된 자격을 완전하게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그 결혼식의 남편은 '어린양 그리스도'시며, 신부는 '의로운 행위로 신앙의 승리자로 인정받은 성도와 교회'입니다. 다시 말해, '남편으로서 주 그리스도' 그리고 '신부로서 신앙의 승리자인 성도와 교회'가 결혼해서 부부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잠깐 논외의 한 이슈를 짚어봅니다. 예수께서 신랑인 어린양의 혼인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나는 남자인데 동성결혼을 한다는 것인가?' 라며 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22장'에서 부활이 없다고 하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어떤 집안의 일곱 형제 모두와 결혼한 한 여자가 부활 후에는 누구의 아내가 되는가?'라는 질문에, 주님께서 하신 대답을 상기해 볼 수 있습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하지만, 마태복음에서는 '부활 때에는 결혼을 하지 않는다'라고 하셨는데, 계시록에서는 '결혼식'을 한다고 하니, 두 경우가 서로 상충됩니다.
즉 남녀 사이의 결혼이 아닌 '주님과 교회 사이에 맺어지는 결혼식과 같은 예식'입니다. 성별과는 관계없이 '부부와 같은 친밀한 관계가 맺어진다는 비유적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나 '남녀 간의 결혼식 보다 더욱 의미 있는 예식'이 실제로 있을 것이라고 큰 의심 없이 믿을 수 있습니다.
앞선 표현들에서는 '어린양의 신부'가 '죄악에 물들지 않은 자, 흰 옷을 입을 자, 성도의 의로운 행위'로 묘사됩니다. 그리고 19장에서는 "어린양의 결혼 날이 이르렀다. 신부는 몸 단장을 마치고, 빛나고 깨끗한 모시옷을 받아 입었으니"라는 현재적 상태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는 신앙의 승리자에게 주겠다고 하셨던 상급들을 받은 후의 상태입니다.
그리고 '21장 9, 10절'에는 명확하게 그 신부가 무엇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
"~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뿐이라."
즉, '죄악에 물들지 않은 자, 성도의 의로운 행위가 인정된 자, 흰 옷을 받아 입은 자, 어린양의 신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모두 하나입니다.
그래서 전체 과정을 풀어보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주 안에서 죽었다가 부활한 후 어린양께 신앙의 승리자[이긴 자]로 인정받은 자가,
주께서 주시는 흰 옷[모시옷]을 비롯한 합당한 모든 상급을 받아 주께서 계시하신 모든 일을 주님과 함께 성취한 후에,
어린양의 신부로써 모든 자격을 갖추고 또,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새 예루살렘의 시민권을 받은 자가 참예할 '어린양의 결혼 예식'이 거행되는 것입니다.
이에 관해서, 구약의 아가서에는 주님과 교회의 친밀도를 시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는데, 남녀 간의 사랑에 비유된 그 시가 곧, '어린양의 결혼 예식'을 묘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