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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재 May 12. 2024

고양이가 사는 집

키웨스트 헤밍웨이 기념관

  

미국 영토의 최남단, 쿠바가 빤히 보이는 플로리다주 키웨스트에 헤밍웨이 기념관이 있다. 이 기념관은 헤밍웨이가 살았던 주택이다.


1928년에 쿠바를 처음 방문했던 헤밍웨이는 말년에 줄곧 이곳에 머물며 <노인과 바다> 등 걸출한 작품을 집필했다. 그가 살던 집은 1968년에 ‘미국 국립 역사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당시 상태 그대로 보존했다.


기념관에는 ‘노인과 바다’ 책이 있는 방을 비롯하여 그가 쓰던 타자기와 동물박제, 9000여 권의 책 등이 있다.          


(헤밍웨이 기념관 본채, 실제로 살던 공간)

                                          

                         

헤밍웨이는 매일 아침 6시면 본채 베란다에서 바로 구름다리를 건너서 별채에 있는 집필실로 가곤 했다.


(집필실 내부 전경)

머리가 맑은 오전에 집중적으로 글을 쓰고 한낮이나 밤에는 낚시, 사냥 등을 하며 지냈다. 본채와 집필실을 이어주던 그 구름다리는 없어졌다. 지금은 건물 밖에 놓인 철제 계단을 통해 집필실로 올라갈 수 있다.

              


(본채 정원 건너편, 집필실로 쓰던 스튜디오)

  

(집필실에 있는 헤밍웨이가 쓰던 타자기)

                 


헤밍웨이 기념관이 된 이 집은 헤밍웨이의 두 번째 부인이자 보그지 편집자였던 폴린 파이퍼(Pauline Pfeiffer)가 재력가인 자기 삼촌의 지원을 받아 산 것이다. 집안 곳곳에 부부가 해외 여행지에서 사 온 골동품과 유럽에서 공수한 가구가 그득하다.


당시 8천 불을 주고 산 집 마당에다 공사비가 2만 불이 넘는 수영장을 지었다. 산호와 석회암이 많은 키웨스트 지형 때문에 공사가 힘들고 경비도 많이 들어갔다.


이 수영장은 헤밍웨이가 스페인에 가 있는 동안에 폴린이 남편의 복싱장이었던 곳에다 집값의 두 배 반이나 들여서 만든 것이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안 헤밍웨이는 화를 내며 1센트짜리 동전을 꺼내 폴린 쪽으로 던지며 ‘내 마지막 1센트까지 다 가져가.’라고 소리쳤다.


폴린은 그 이야기를 방문객들에게 들려주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하여 1센트짜리 동전을 보존하기로 했다. 그 동전은 지금도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수영장 가장자리를 자세히 보면 여러 개의 작은 구멍이 옴폭 파여있는 걸 볼 수 있다. 이 구멍은 수영하다가도 생각이 떠오르면 메모할 수 있게 펜을 꽂아 두는 용도였다. 구멍 옆에는 잉크병 자리도 있다.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쓸 수 있게 준비하며 살았던 헤밍웨이의 작가 정신을 잘 보여주는 흔적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종군기자였던 작가의 이런 치열함은 모든 시대의 작가들에게 꼭 필요한 정신이 아닐까 싶다.     


(헤밍웨이 기념관 마당에 있는 수영장)

                             

 “작가가 관찰을 멈추면 끝장난 것입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관찰할 필요도 없고, 그게 어떤 쓸모가 있을지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수영장에 있는 펜 꽂는 구멍을 보는 순간, 나는 헤밍웨이가 남긴 이 말을 떠올렸다.


작가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덕목은 예리한 시선과 관찰한 것을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해 놓는 습관임을 다시금 새기게 되었다.      

   


(헤밍웨이가 소유했던 낚시배 전시실)

            

전시실이 된 거실 한쪽에 PILAR KEY WEST라는 문구와 함께 키웨스트의 사진과 배 등이 전시되어 있다. 필라는 헤밍웨이가 소유했던 배 이름이다.


벽에 전시된 사진들을 보면 당시에 헤밍웨이가 낚시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특히 키웨스트와 쿠바 사이를 지나는 멕시코만류에서 청새치와 타폰 같은 대형 물고기 낚시를 좋아했다. 그가 키웨스트에 살게 된 이유도 바로 이 낚시 때문이었다.


거실에는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잡은 물고기인 대형 황새치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작품을 쓰도록 영감을 준 주인공이자 헤밍웨이의 오랜 친구였던 쿠바 사람 그레고리오 푸엔테스(Gregorio Fuentes)의 사진도 걸려 있다.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에게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1954년)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전시실에 있는 헤밍웨이 사진

 

헤밍웨이는 평생 네 번 결혼하고 세 번 이혼했다. 여성 편력이 심한 편이었던 그는 격렬하고 폭력적이며 진취적인 마초 같은 남자였다.


그런 성향 때문인지 헤밍웨이는 나이가 들어가며 늙어 약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는 1차대전 당시에 입은 큰 부상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힘을 과시할 수 있는 대형 물고기 낚시와 사냥 등 격렬한 운동을 좋아했다.


말년에 들어서도 경비행기를 타다가 세 차례나 사고를 당해 크게 다쳤다. 그 후유증으로 침대에 누워 지내며 글도 제대로 쓸 수 없게 되었고, 급기야 정신착란까지 일으키게 되었다.


그는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한 끝에 마침내 헌신적이었던 네 번째 아내가 잠든 이른 아침에 엽총을 입에 쏴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헤밍웨이 자살에 대한 신문 기사)


 혹자는 헤밍웨이가 예전처럼 글이 잘 써지지 않고 지지부진한 것을 고민하던 끝에 자살했다고도 말한다. 실제로 죽기 전 몇 달 동안, 그는 글을 쓰다가 맘에 들지 않는다고 쓰던 걸 계속 찢고 던졌다. 어떤 날엔 술을 마시며 괴로워하다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게 되자 이렇게 절규했다.


  "이젠 써지지 않는다! 써지질 않아!“     


 헤밍웨이는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작가로서의 욕망이 매우 강했던 것 같다. 많은 독자에게 갈채를 받는 작품을 계속 쓰고 싶은 욕심은 강박관념이 되었고, 마침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는지도 모르겠다.


치열하게 자기 자신을 담금질하며 작가 정신으로 무장한 덕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은 남겼지만, 그 모든 성공이 인간으로서의 행복한 삶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평범한 일상에서 특별한 이야기를 만들어 깊은 감동을 주는 작가로 살면서 자잘한 일상의 행복도 누릴 수는 없는 것일까?


작가의 예민한 감성을 지닌 건강한 생활인으로 살고 싶다는 말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말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헤밍웨이 기념관 안방 침대 위에서 자는 고양이들)

                                          

 헤밍웨이가 살았던 집에는 지금 사람 대신 고양이가 살고 있다.


그가 애지중지했다는 고양이의 후손들이 기념관을 안팎을 다 점유하고 있다. 관람객이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는다.


(정원에 있는 고양이 집Ⅰ)
(정원에 있는 고양이 집Ⅱ)

정원에는 건물 형태와 단독주택 모양의 고양이 집이 잘 마련되어 있고, 고양이 공동묘지도 있다.


(정원에 있는 고양이 공동묘지)
(여기 살다가 죽은 고양이들 묘비)

죽은 고양이의 이름과 태어나고 죽은 날짜를 기록해 놓은 묘비를 보니 여러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기념품점에는 헤밍웨이의 책에 관련된 기념품 못지않게 고양이에 관한 물건이 많다.


고양이는 이미 기념관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진다면 머잖은 장래에 이곳은 헤밍웨이보다 고양이가 더 유명한 기념관이 될지도 모르겠다.      


(헤밍웨이 기념관 마당에서 낮잠 자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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