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런 사람이야. 어쩌라고!
학창시절에 나는 행복했었나?
라고 자문해본다면 '그닥'이란 자신없는 답이 나온다.
중학생이란 특정한 시기, 나의 행복의 요인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친구가 있었느냐 없었느냐가 거의 8할이었다. 매 학기 초 최소한 점심시간이나 체육시간을 함께할 적당한 수준의 친구를 찾는 것이 나에게는 큰 미션이자 고역이였다.
그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전학을 오면서 한 차례 은따아닌 은따의 경험으로 학기초마다 외톨이면 안된다는 생각이 온 신경을 지배했기 때문이었다.
고로, 오로지 선생님이 주도하는 수업시간이 아닌 그 외의 쉬는 시간, 체육시간, 그룹활동 시간은 매우 불편하고 참기 어려웠음을 경험적으로 알기에 학기초 내 눈은 혼자서 불안했고 분주했었다.
'체리새우 : 비밀글입니다.'를 읽고나서는
몇년 전 보았던 영화 '우아한 거짓말'의 '천지'가 생각났다.
떠오르는 장면은 화영의 생일파티였다. 화영의 생일날 아이들 저마다 카톡카톡 울려대는 휴대폰 소리에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분주하다.
키득키득 대는 소리, 힐끔힐끔 쳐다보는 눈빛들 사이에 어쩌지 못하고 당황하는 천지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천지가 이렇게 당황하는 것은 그 많은 무리속에 천지의 핸드폰만 잠잠하기 때문이다. 못된 것들! 이런 취급을 할거면 초대나 하지 말것이지..
처음엔 우아한 거짓말 속 천지는 친구 무리 속에 존재감이 없는 체리새우의 다현이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은따 경험이 있는 다현이는 어울리지 않은 무리에 속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나의 민낯을 가려야하고 무리 속에서는 다른 얼굴을 해야만 한다. 마을신문을 만들기 위해 모인 새로운 친구들과의 신선한 교류도 본인이 속해있는 무리의 친구들에게 허락아닌 허락을 받아야만 해야한다니 ..어른인 나의 사회생활보다 중2 여자아이의 학교생활이 무척이나 고되보였다.
하지만 다현이는 친구들 그룹 속에서 본인의 위치를 모르지 않았다. 다만 괜찮은 척, 씩씩한 척, 아닌 척하며 엉거주춤하게 그 무리에 발을 담그고 있을 뿐이었다. 보이지 않은 갑을관계, 친구라고는 하지만 내가 애쓰지 않으면 안되는 포지션.. 결국 새로운 친구와의 교류가 친구들에게는 다현이를 배신자로 낙인찍을 좋은 기회였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다현이는 학창시절의 나와는 달랐고, 안타까운 선택을 했던 '우아한 거짓말'의 천지와는 달랐다.' 나를 좋아하는 친구가 없다면, 내가 그 친구를 좋아하겠다.'고 선언한다.
다현이의 내적 성장이 만들어 낸 자존감 높은 말에 내가 다 뿌듯해진다.
가끔 우리는 친구 뿐만 아니라 직장에서 혹은 어떤 그룹에서 본인의 존재감을 각인시키려고 무리수를 둔 행동을 하기도 한다. 알맹이없는 대화에 몇 시간을 껴있고, 불편하지만 감수하고서라도 그 그룹에 있으려고 발을 담그려고 무던히도 애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지, 그 그룹에서 나를 필요로 하는지 등 남의 시선을 기준으로 살아가다보면 어느새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잊고 살아간다. 다행히 책 속 다현이는 어릴 적 나와는 다르게 본인의 마음을 자각하고 당당히 한걸음 나아간다.
어쩌다 어정쩡하게 끼여있는 나의 포지션이 불안하고 존재감이 미미해서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칠 때, 나는 이렇게 외치고 싶어졌다. 다현이처럼..
나 이런사람이야 어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