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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메달 Jan 22. 2024

친구의 부고장

본인 부고장이라니

초등학교 동창의 부고장을 받았다. 코로나가 되기 전, 아니 세월호가 터지기 전까지 우리 반 친구들은 각별했다. 유달리 자주 만났고. 유달리 관계망이 촘촘했다. 그러다 세월호 때 방밴드에서 첨예한 진영 논리로 개판되었다. 그 상황들이 진절머리가 나서 나는 그 방을 나왔다. 그 이후로 모임을 좀 덜 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난 2024년에 동갑내기 친구의 본인 부고장을 받았다. 상주에는 자녀 둘이 올라와 있다.


마음이 이리 착잡할 수가 없다. 아직 젊은 나이 아닌가. 그동안 부모님 부고장만 받다가 이렇게 친구의 부고장을 받으니 황망하기 그지없다. 사인은 모른다. 가까운 친구에게 전화해서 물어보고 싶었으나 그것도 딱히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이미 죽은 사람인데 사인을 알아서 뭐 하겠나.


이 친구. 잔정이 많았던 친구다. 언제쯤인지 기억나지 않다만 15년이나 20년 전쯤인 것 같다. 동대구역 서점 가판에서 나에게 책 한 권을 쥐어줬다. 정기모임 왔다간 친구들 배웅차 여럿이 동대구역에 왔더랬다. 대전, 서울, 부산 가는 친구들 각각이다. 내가 대합실에서 플랫폼 나가려 할 즈음에 잠시만 하더니 책 한 권을 주더라고. <자아의 발견> 톨스토이 인생론.


부고장을 받고 그 책 생각이 제일 먼저 났다. 찾았다. 못 찾았다. 이 놈의 책은 필요할 때 바로바로 못 찾는다. 겹쳐서 둔 책장 어디메에 있겠지.


눈이 온다. 올해 유달리 눈이 왔고, 여기 세종은 눈이 더 흔하다. 오늘도 눈은 내리고 있다. 아파트 벽과 벽 사이 눈은 흩뿌리고 마음은 착잡하다.


잘 가라. 친구야. 많이 웃어주었던 그 얼굴 잊지 않을게. 그리고 네가 준 그 책 찾아서 내 책상 위에 오래오래 둘 게. 그 책 덕분에 그 해는 힘을 냈었다. 고마웠다. 책 받고 고마웠다는 말도 제대로 못 전했는데 그 책이 힘이 되었다는 것, 마음에 두고두고 가지고 있을게. 고마웠다. 그 세상에서는 편히 쉬어.


가까운 친구로 부터 사인을 들었다. 자실이란다. 무엇이 삶을 스스로 마감하게 했을까. 사는 게 이래저래 늘 어렵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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