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스타트업 팀장님과 얘기를 나누었어요.
본인이 담당자 일 때는 일을 참 잘 했는데, 팀장이 되고 나서는 저성과자가 된 느낌이라고요.
요즘은 자기 생각만큼 움직여주지 않는 후배들을 보며 답답함을 토로하셨죠.
들으면서 이 답답함이 어디서 연유하는 걸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어요.
경청해 보니 이 팀장님의 일상은 결국 4명 팀원 분들의 일 전체를 관리하는데 많이 할애되고 있었죠.
그러니, 예전에는 혼자 일만 잘 하면 되었는데, 이제는 4배의 일을 잘 관리해야 하니 답답할 수 밖에요.
사실 우리 주변의 이런 경우는 비일비재합니다.
이 팀장님께서는 전형적인 '역할 전환의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셨고,
그러니 여전히 실무자처럼 마이크로 매니징을 하면서 네 명의 실무자처럼 일하고 계신 상황이었어요.
사실 우리가 follower일 때에는 그냥 일만 잘 하면 되죠. 일은 마치 weight training 처럼 정직합니다.
일은 일 자체를 열심히 하면 실력을 늘릴 수 있어요. 대부분의 경우는 열심히 한 만큼 성과로 돌아옵니다.
그렇게 묵묵히 맡은 바를 해내면, 승진이라는 열매가 주어지고, 또 운이 좋으면 리더로 보임이 됩니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제 리더가 되었는데도 본인이 하던 방식대로 한다는 거죠.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본인이 과거에 인정받은 방식대로 '더욱 열심히' 일한다는 것입니다.
리더의 역할에 대해 제대로 배워본 적도 생각해 본적도 없는 상태에서요.
마치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님의 모습 처럼요.
What got you here won't get you there.
하지만, 좋은 follower로서의 역할과 역량이, 좋은 leader의 역할과 역량을 담보하지는 않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을 이끌어준 경험과 방식이, 당신이 앞으로 가고자 하는 그 곳까지 데려다주지는 않는거죠.
기존의 성공 방정식이 리더가 되어서도 통할 거라는 착각, 이게 많은 리더들이 실패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1969년 로렌스 피터 교수는 '모든 직원이 무능함이 극에 달하는 수준까지만 승진한다'는 '피터의 법칙'을 발표합니다. 다소 냉소적으로 들리지만, 꽤 설득력이 있는 얘기죠.
많은 조직들이 다음 단계 직무를 수행할 승진자를 선발 할 때, '지금의 직무 수행 능력'을 기준으로 평가합니다. 영업을 잘하는 책임을 영업팀장으로 승진시키고, 코딩을 잘하는 수석개발자를 개발팀장으로 만들죠.
하지만 그 기존의 방식이 지금까지의 조직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고착화시켰던 것은 아닐까요?
사실, 누군가가 팀장 역할을 잘 할 수 있는지 판단하려면 일단 시켜보고 관찰해야 합니다.
잘못한다면 보임 해제하면 되구요. 하지만 우리 문화에서 이런 프랙티스는 쉽지 않습니다.
때문에 보임 전에 리더 역할에 요구되는 자질과 역량들을 갖추고 있는지 제대로 면밀히 따져보고 (Assessment) 보임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갤럽은 약 20년 간 250만 개 이상의 업무단위(work unit)를 분석하고 2,700만 명의 직원몰입도를 측정해 유능한 리더가 그렇지 못한 리더 대비 2배 이상 직원 몰입도를 높인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이렇게 유능한 리더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조직은 경쟁사 대비 평균 147% 높은 주당순이익(EPS)을 달성한다고도요.
하지만 이 연구(* Why Good Managers Are So Rare, HBR 2014)에 의하면, 유능한 리더의 다섯가지 재능(Five Talents - motivation, assertiveness, accountability, relationship-building, and decision-making)를 모두 가진 사람은 10명 중 1명(10%)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왠만한 조직에서는 1명 정도는 잠재적으로 좋은 리더가 될 후보자가 존재한다는 뜻이 되죠.
하지만, 많은 조직들이 이러한 조직 내의 좋은 리더 후보자들을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잘못된 리더를 보임시킵니다. 연구 결과 이러한 잘못된 보임의 확률은 무려 82%나 됩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 '잘못된 인선(wrong pick)'을 바로 잡는 일은 무척 어렵다는 것입니다.
비용이 들더라도 조직 내에 숨어있는 훌륭한 잠재 리더를 발굴하고 육성하는데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조직의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일은, 좋은 리더를 선임하는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Leaders Eat Last :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의 저자, Simon Sinek은 리더십을 양육(Parenting)에 비유합니다. 리더는 단순한 책임자가 아니라, 마치 부모처럼 리더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이라고요. 양육에는 개인적 희생이 따를 수 밖에 없죠. 참아주고, 기다려주고, 알려주고, 이끌어줘야 합니다.
진짜 부모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조직은 역할게임을 하는 곳입니다. 그 역할을 잘 연기하면 되는 거죠.
이제 갓 보임한 리더에게는 새로운 역할이 주어진 것 뿐입니다.
그 역할은 바로 follower들을 더 나은 follower로, 혹은 더 뛰어난 leader로 만드는 것이죠.
리더가 되면서 새롭게 전환시켜야 할 관점은 자신의 역할을 일 관리에서 사람 관리로 옮기는 것입니다.
리더는 follower들을 변화시킴으로서 조직을 성장시키고, 공통의 목표를 달성하고, 뛰어난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바로 follower들의 변화, 즉,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리더십은 조직으로부터 부여받은 권력에서 시작합니다.
합법적 권력(직위), 보상적 권력(보상의 결정), 강제적 권력(처벌), 정보적 권력(희소한 정보), 준거적 권력(카리스마나 명성), 전문적 권력(전문성) 등 권력의 기반이 존재합니다. 역량있는 리더는 이들을 균형적으로 활용합니다. 하지만 권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리더는 각자가 가진 권력을 자신의 영향력(Influence)으로 전환하여 발휘합니다.
그 대상은 주로 다른 사람의 행동이나 태도를 변화시키는 것이죠. 권력이 연료라면, 영향력은 엔진 등의 구동계의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고유함을 가지고 있기에 권력을 영향력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당연하게도) 개인차가 생깁니다. 게다가 영향력은 Give & Take에서 출발하죠. 개인이 가진 영향권(sphere of influence)도 중요합니다.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줄 수 있고, 누구로부터 무엇을 받을 수 있는가. 이 교환의 네트워크가 영향권의 범위를 결정합니다.
설득력(Persuasion) 또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데 매우 중요한 무기입니다.
현대 조직에서 리더의 설득력은 점점 더 중요해 지는 느낌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본인이 납득되지 않는 일을 그저 따르지 않죠. 스스로 명확히 주어가 되지 않는 일에 동참하지 않는 경향이 커지는 느낌니다. 때문에 설득 없이 권력과 영향력 만으로 follower들의 변화를 기대한다면 낭패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설득을 잘 하려면 먼저 상대방과 신뢰를 쌓고 그들에게 전문성을 인정 받아야 합니다. 신용의 영역이랄까요?
신뢰를 얻으려면 사실의 양면을 모두 말하고, 약속을 이행하고, 기밀을 지키고, 가치관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상대의 관심사에 귀 기울이고, 상대방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합니다. 전문성을 인정받으려면 아이디어를 실행할 수 있게 구체화하고, 다양한 경험을 적용 해보고, 믿을 만한 출처를 언급하고, 실제로 입증해야 합니다.
리더십 연구는 지난 100년간 수많은 정의와 모델을 쏟아냈습니다.
카리스마부터 시작해 감성지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리더의 조건으로 제시되었죠.
하지만, 리더십은 '리더다움'을 말합니다. 내가 그 리더십의 주체라면 그 속성은 '나의 리더다움'이죠.
때문에 리더십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리더십에 수학공식같은 면모가 있다고 하더라도 내가 대입되는 순간 '나의 리더다움'은 고유해 질 수 밖에 없겠죠. 성격, 업종, 조직의 성숙도, 동료 구성, 기업의 전략 상황에 따라 바람직한 '리더다움'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마다 스타일과 강점이 다르기에 '나의 리더다움' 또한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리더에게 필요한 건 보편적 모범답안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리더십 플레이북’을 갖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본인이 생각하는 리더의 역할과 리더다움의 방식이 정의되어야 합니다.
제 리더십 플레이북 핵심은 세 가지입니다.
1) 개인이 아닌, 조직으로 일을 더 잘하게 만들기
2) 팔로워를 더 좋은 팔로워로, 혹은 더 좋은 리더로 성장시키기
3) 방향을 제시하고 변화를 촉발하기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제 플레이북입니다. 여러분의 플레이북은 다를 수 있어요. 아니, 달라야 합니다.
중요한 건 이겁니다. 여러분은 어떤 리더입니까? 여러분에게 기대되는 역할은 무엇입니까? 리더다움을 발휘하는 나만의 방식은요?
지금 당장, A4 용지 한 장을 꺼내보세요. 그리고 적어보세요.
나는 어떤 리더인가?
나에게 기대되는 역할은 무엇인가?
나는 그 역할을 하고 있는가?
내가 정의하는 리더십의 핵심은 무엇인가?
나만의 고유한 리더다움은 무엇인가?
그 리더다움을 발휘할 수 있는 나만의 방식은?
우리는 살면서 누구나 한번은 리더가 됩니다.
어느 곳에서 리더로 임명되거나 선발될 수도 있지만, 스며들듯 이미 리더의 역할을 하고 있을 수도 있죠.
리더십은 자격증을 따거나 학위를 얻는다고 늘지 않습니다.
남들이 말하는 리더십을 따르는 것이 내게는 잘 맞지 않는 옷처럼 간지럽고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리더십의 주체는 리더, 즉 사람이고, 리더십은 역할에 불과합니다.
그 역할에 대해 잘 이해하고 노력해 나간다면 누구나 그 역할을 잘 연기할 수 있습니다.
어짜피 맡게 된 역할에, 기왕에 해야하는 연기라면, 내친 김에 연기 대상까지 한 번 받아보면 어떨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