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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의욕 없는 주니어, 어떻게 돕지?

by 방승천

오늘은 원티드 HR 리더스 스터디에서 다루었던,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의욕 없는 주니어를 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제 생각들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덕분에 제 주니어 시절을 떠올려 보았네요. 사진은 2003년도 신입사원 시절의 제 책상입니다 :)


스터디 주제는 스스로 생각하는 이상적인 직장생활의 기대치와 현실적인 업무수행(과정 및 결과) 사이의 괴리 때문에 동기가 저하되고 성과도 떨어지는 1~1.5년차 주니어를 대상으로 어떤 매니징과 코칭이 필요할까 였는데요.


제가 처음 이 토픽을 듣고 떠올렸던 생각은 "과연 조직은 그 주니어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을까?" 였습니다.



조직의 기대 vs. 개인의 기대


여러분도 경험해보셨겠지만, 대부분의 주니어들이 초기에 맡게 되는 업무들은 공통점이 있죠.

데이터 확인, 정보 취합, 자료 조사 같은 일들, 그리고 매일 혹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업무들...

제 주니어 시절도 분명히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럼 당시에 그 일을 시킨 선배들이 제게 기대했던 성과 수준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선배나 다음 사람이 이어 받아 일하는데 부족함이 없거나, 특별한 오류나 공백 없이

주어진 일들을 무난히 잘 수행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런데, 이런 업무들이 과연 의미 없는 일이었을까요?

생각해 보면, 그 일을 줄 때 부터 '일의 속성'은 정해져 있었을 겁니다.

실수하면 안 되지만 더 잘한다고 해서 특별히 칭찬받기는 어려운 '다소 가벼운' 성격의 일들이었죠.


입사하고 6개월 정도 지나서 처음으로 기획 업무를 맡게 되었을 때의 경험이 생각나네요.

욕심은 많았지만 막상 빈 문서 앞에 앉으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깨달은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그동안 했던 '가벼운' 업무들이 실은 제가 조직을 이해하고, 업무의 맥락을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과정이었다는 것이죠. 그 때 깨달은 것은, 그 전 1년간 수행했던 Task들의 용도와 의미였습니다.

그 시간은 소위 말하는 '스키마(schema)'를 쌓는 시간이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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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들의 어려움을 먼저 헤아릴 필요


모든 일에는 역지사지가 중요하죠.

이 케이스에도 1~1.5년차 주니어의 입장에서 그들의 어려움을 헤아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몇 가지 패턴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첫번째, 주니어는 맥락 파악이 어렵다.

나무는 보이지만 숲은 보이지 않는 상황입니다. 주니어 입장에서는 나무만 보고 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Work) 혹은 직무(Job)와, 주어진 과업(Task)의 맥락을 연결짓지 못할 수 있죠. 여기에 납기가 다가오고 스트레스가 더해지면 문제해결 능력이 저하되고 시야가 좁아져 전체적인 그림을 더욱 보지 못하게 되는 '터널 시야(Tunnel Vision)'나 '인지적 고착(Functional fixedness)까지 발생하기도 합니다.


이 맥락화를 돕기 위해 관리자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합니다.

"지금 쌓고 있는 벽돌 10개가 단순한 울타리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롯데타워를 짓는 첫 단계인지" 명확히 설명해주는 것 입니다. 울타리 벽을 짓는 일이 롯데타워를 짓는 일보다 소소할 수는 있지만, 향후 롯데타워를 지을 만한 자본을 만들기 위해 지금은 울타리벽을 올려 도둑이 들지 않도록 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각인시켜 줄 필요도 있습니다.


두 번째, 성장 속도에 대한 기대가 다르다.

관리자와 구성원 간의 성장 속도에 대한 기대가 다른 경우는 빈번합니다. 일/직무와 과업 간의 맥락은 알겠으나, 주니어 입장에서는 성장욕구가 크고 마음이 급한 경우죠. 히말라야를 오르고 싶은 주니어가, 동네 뒷산부터 수월하게 오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동네 뒷산만 1년 내내 오르는 것은 싫은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성장의 속도나 방향에 대해 더 많이 알려주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회사의 직무체계나 경력개발 경로, 잘 정리된 직무명세서 등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제도를 기반으로 우리 주니어가 기대할 수 있는 성장의 방향과 속도를 정확히 알려주는 것입니다. 정해진 답을 알려주기 보다는 본인이 원하는 속도와 방향의 직무 혹은 회사를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요.


세 번째, 직무에 대한 현실적 이해 부족

이는 '기대-현실 불일치(expectation-reality gap)' 문제입니다. 특히 요즘 같은 시대에는 채용 브랜딩이 강조되다 보니, 실제 업무와 다른 이상적인 모습만 마케팅되는 경우가 많죠. 그러다 보면, 실제 직무에서 맞닥뜨리는 일상에 대한 이해는 떨어질 수 있습니다. 롯데 타워를 지으려면 벽돌 10개부터 쌓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미처 생각해 보지 않은 '벽돌을 쌓는 일'은 내가 기대했던 직무의 모습이 아닐 수 있죠.


이 경우 현실적 직무 소개(Realistic Job Preview)가 도움이 됩니다.

글로벌 로지스틱스 기업인 DHL은 RJP를 통해 배송 트럭을 운전하는 Driver의 하루 일과를 있는 그대로 설명해 현실적인 기대를 관리(expectation management)하는데요. 기대가 크면 실제 현실과의 간격보다 더 큰 실망감이 다가올 수 있기에, 실제 업무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사전에 불필요한 기대를 줄이는 방식입니다. 지원자에게 직무의 장단점과 현실적인 내용을 모두 전달하여 직무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돕고, 입사 후 잘못된 기대로 실망이 커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그들 세대에는 자신의 현 위치에 대한 인식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피드백이 필요하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어느 수준에 혹은 어떤 과정에 위치하며, 회사/조직의 어떤 목적에 기여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 직무의 정체성, 타 직무와의 연결성, 다음 단계의 직무와 그 직무를 수행하기까지의 소요시간 같은 직무의 내용 뿐 아니라, 일하는 환경, 점심 시간의 모습, 보고 및 소통의 문화 등을 궁금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포함해 '데일리 스케치' 하듯 최대한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관점과 스키마를 쌓는 데는 축적의 시간이 소요


다시 제 주니어 시절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좀 더 시간이 지나고 알게 된 것이지만,

기획 업무는 결국 어떤 관점에 기반해 어떤 방향(주장이 담긴)을 설정하고,

그 방향으로 왜 가야 하는지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그 관점은 상사의 것일 수도 있지만, 그 관점을 잘 이해하고 풀어내려면

먼저 나만의 관점도 가지고 있었어야 했습니다.


제가 주니어 시절,빈 문서 앞에서 오랜 시간 망설였던 건,

아마도 기획에 대한 '관점'과 기획에 활용할 수 있는 '스키마'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구요. 단순하고 반복적인 '다소 가벼운' 일들을 하는 꽤 긴 기간 동안에

더 많은 생각을 해봤어야 했던 거라는 반성을 했었더랬습니다.


결국은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바라보는 특정한 관점으로 모든 기획은 시작되는 거더군요.

스케치는 주제를 잡는 밑그림일 뿐이지만, 그 밑그림 역시 소재, 구도, 연필, 종이 등에서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죠. 입사 후 맡겨졌던 가벼운 일(나무)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우리 일의 기능(숲)과 연결할 수 있어야 했어요.


"관점"도 "스키마"도 결국 내 경험에서 나오게 마련입니다.

오래 보고, 다양한 각도에서 보고, 비틀어 보고, 의심해 볼 수록 관점은 더욱 풍성해 지고, 그 생각의 과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스키마도 늘어납니다. 그냥 오래 본다고 얻어지는 건 아닙니다. 비틀어 보지 않고, 왜 하는지 의심해 보지도 않은 채 하던대로 일을 '쳐냈다면' 관점은 커녕 스키마조차 쌓이지 않겠죠.


관점이 성장하는 데에도 축적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어느 정도 능선에 올라야 내가 오르는 산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것 처럼, 관심있게 바라보고 최소한의 높이(시야)를 확보해야 합니다. 하지만 일단 한번 관점이 생기기만 하면 마치 벨크로처럼 그 솟아난 관점에 다양한 정보와 현황, 이슈 들이 달라붙게 됩니다.


그 관점과 시야를 확보할 수 있는 시기와 높이는 회사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회사마다 직무를 디자인(설계)하는 논리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관점과 스키마를 쌓는 그 시간과 과정의 의미는 누구에게나 동일합니다.

롯데 타워를 지으려면 벽돌 10개부터 쌓아야 한다는 사실 말입니다.


생애 내내 잘 써먹을 수 있는 관점과 스키마를 쌓는 데는 축적의 시간이 소요되니,

기왕 하는 기초 공사를 한 번 잘 해보자는 맥락의 조언을 주니어 후배님들께 건네 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모두 행복한 주말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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