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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기린 Sep 30. 2015

우리는 왜 사랑을 갈망할까?

애니메이션 <라바> 시즌2 하루살이 편,  <100만 번 산 고양이>

<표지>봄날을 지나는 너에게 / 김원 글, 사진, 글씨. 173쪽.


우리는 왜, 사랑을 하려는 걸까?

라바를 보며 생각해보자.


애니메이션 <라바> 시즌2 하루살이 편(2013.06.22 방영).

<참고> http://www.kbs.co.kr/2tv/enter/larvabeetparty/view/vod/2168490_61267.html


라바 '레드'는 하루살이 한 마리를 알게 된다. 둘은 금세 사랑에 빠지고 뽀뽀도 한다.

그러나 하루살이는 다음 날 죽음을 맞는다. 라바 '옐로우'는 하루살이의 무덤 앞에서 '레드'를 위로한다.

'레드'가 무덤가에서 고 있는데, 두 번째 하루살이가 나타나 울고 있는 '레드'에게 손수건을 준다. '레드'는 첫 번째 하루살이가 되살아난 것이라고 생각하며 황홀해한다.

그러나 다음 날, 두 번째 하루살이도 죽음을 맞는다. 두 무덤 앞에 '옐로우'와 '레드' 가 다시 선다.

오후가 되자 세 번째 하루살이가 나타난다. 그렇지만 '레드'는 애써 사랑을 외면한다.

 다음 날 아침, '레드'는 하루살이에게 달려간다.

다행히 하루살이가 아직 살아있다.

'레드'는 하루살이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애쓴다.

친구 '옐로우'와 하루살이 앞에서 연극 공연을 하고 하루살이와 함께 풍선도 탄다.

저녁이 되자 세번째 하루살이도 죽고 만다. 레드는 완전히 넋을 놓고  몸을 저 아래로 던진다.

그때 세 마리의 하루살이 천사들이 나타나 레드를 구한다. 레드는 비로소 정신을 차린다.


'레드'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들의 첫사랑도 떠나가는 때를 알지 못한 채 끝나고 만다.

그래서 두 번째는  아픔을 치유하는 시간일지 모른다.

그저 사랑이 끝나지 않았음에 안도한다.

그런데 두 번째 이별을 하면 불안감이 온다. 이런 이별이 반복되는 구나, 더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랑을 외면한다. 그리고 모른 척 한다.  사랑이 필요없다고 여긴다.

그래도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랑이 기어이 오고만다. 사랑의 순간은 언제나처럼 행복하다.

그러다 사랑의 아픔이 또다시 찾아오면 정신을 놓는다. 삶의 기로에서 고통의 직격탄을 맡는다.

그렇지만 자꾸 이별과 투쟁하다 보면 이별의 이유도 납득하게 된다.

하루밖에 살지 못하기에 떠날 수 밖에 없던, 하루살이처럼 말이다.


사실 사랑을 해야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이다.


 대체로 사랑을 나누는 인간의 능력을 '여성성'의 특질로 간주한다. 그러나 '여성성'은 여성만의 특질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 모두의 내면에 존재하는 심리학적 특질을 말한다. 만일 남성이 자기 내면에 있는 여성성의 힘을 계발한다면, 이는 실질적으로 자신의 남성성을 완성시키는 길이 된다. 힘 있는 남성은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자녀에게 진실한 사랑을 표현하고, 낮 시간에는 자신의 전쟁터인 비즈니스 세계에서 치열하게 싸움을 한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그런 '여성성'의 특질이다. 타인과의 관계성, 사랑으로 힘을 부드럽게 만드는 능력, 내면의 감정이나 가치를 깨닫는 것, 땅의 삶에 대한 존중, 아름다움에 대한 경탄, 그리고 내면의 지혜를 찾는 탐구 등이다.


We: 로맨틱 러브에 대한 융 심리학적 이해/ 로버트 A. 존슨 지음, 고혜경 옮김, 동연.
 46,47,49쪽 인용.


그러면 사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삶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일까?

다음 작품을 함께 보자.


<100만 번 산 고양이/ 사노 요코 글, 그림, 비룡소>


백만 년동안 백만 번 죽고 백만 번 살았던 고양이가 있었다.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를 귀여워했고,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가 죽었을 때 울었다.

고양이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임금님과 함께 했을 때 고양이는 전쟁터에서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었다.

뱃사공과 함께 살 때, 고양이는 바다에서 떨어져 죽었다.

서커스단 마술사의 고양이였을 때 마술사가 실수로 고양이를 반으로 쓱싹쓱싹 자르고 말았다.

도둑의 고양이였을 때 고양이는 개에게 물려 죽고 말았다.

언젠가 고양이는 홀로 사는 할머니의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꼬박꼬박 졸며 살다가 나이가 들어 죽고 말았다.

고양이는 어린 여자 아이의 고양이가 되기도 했다. 고양이는 여자 아이 등에 있는 포대기 끈에 목이 졸려 죽고 말았다.


한때 고양이는 누구의 고양이도 아니었다. 고양이는 처음으로 자기만의 고양이가 되었다.

암고양이들은 모두 그 고양이의 신부가 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딱 한 마리, 하얀 고양이가 그 고양이를 사로잡았다.

  "네 곁에 있어도 괜찮겠니?"

하고 간절히 물었고, 둘은 새끼 고양이를 많이 많이 낳았다.


하얀 고양이가 할머니가 되고, 고양이 곁에서 움직임을 멈추자

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울었다.

그러고는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다.


위의 이야기에서 고양이는 왜 백만 번이나 되살아났을까?

그것은 백만 번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그 누구와 있어도 주인을 좋아한 적 없었다.

고양이는 죽는 것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사랑을 할 때 그가 임금님 일 수도 있겠다.

모든 것을 가지고 야망이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아니면 물고기를 많이 주는, 어부같은 사람을 만날지 모른다.

여기 저기 맛집을 함께 가는 그런 사람 말이다.


또 서커스단 마술사 같은 사람을 만난다면 매일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을 수도 있겠다.

내가 고양이니까 도둑이랑 다니면 딱이겠지? 하는 착각이 때론 틀렸다는 걸 알게 될런지 모른다.


그리고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사람은 어떨까?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게 지겨우면 나와 잘 놀아주는 사람도 만날 수 있겠다.


그 누구와 만족이 있었다면 고양이는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고양이는 누구의 고양이도 아니었을 때, 비로소 제대로된 사랑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랑하는 하얀 고양이와 오래오래 살고 다시 태어나지 않았다.


이 작품에서 '삶의 의미'는 곧 '죽음의 의미'와 같다.

그리고 그 과정을 사랑을 통해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우리  옆에 있는 누군가가 아닌,

자기 자신을 올곧게 세울 때 진실한 사랑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랑을  그토록 바라는 이유는 결국,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일 것이다.


올가을, 당신에게도 그런 사랑이 꼭 찾아오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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