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시할아버님이 돌아가셨다. 나는 장례 기간 동안 꼬박 시가 식구들과 장례식장에 머물렀고, 솔직함이 최고의 자랑인 남편의 어머니와도 꽤 오랜 시간을 함께해야 했다. 그렇게 2박 3일을 보내며 솔직한 그녀 때문에 생겨난 내 안에 가득 찬 화를 풀 길이 없어 고민하다가 글로 하소연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어 컴퓨터 앞에 앉게 되었다.
나의 시아버지는 직장 때문에 중국에 계신다. 이번에 시할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장례가 끝나고 나서도 유품 정리나 삼우제를 위해 시부모님은 며칠 더 시골에 머물러야 했고, 그러려면 이동을 위해 차가 필요했다. 아버님이 외국에 가시면서 오랜 기간 타지 않았던 차로 장거리를 운행하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하기에 나와 남편이 각각 차를 가지고 올라가서 내 차는 시부모님이 이용하시로 했다. 그래서 남편은 새벽에 먼저 시골로 올라가고, 나는 집에 남아 마무리해야 할 일들을 처리하고 저녁 무렵 장례식장에 도착하도록 출발했다. 참고로 우리 집에서 장례식장까지는 쉬지 않고 3시간 30분을 달려야 한다.
저녁 무렵 장례식장에 도착해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장례식장으로 들어가려는데, 남편의 어머니가 마침 밖에 나와 계시다가 나를 부른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는 말씀을 해주시려는 줄 알았는데, 다짜고짜 언짢은 목소리로 내 운전을 타박하신다.
"너는 운전을 왜 그렇게 하니~? 응?!"
그 옆에는 결혼식 포함 두어 번 뵌 적이 있는 작은어머님도 함께 계셨다. 저녁시간이었고, 시골 장례식장이라 주차장엔 차가 없었고, 그래서 나는 엑셀레이터를 밟아가며 빠르게 주차를 했었다. 어머님 보시기에는 다소 난폭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 "네, 다음부턴 안 그럴게요~"라고 대충 아양을 떨며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갔으나, 그녀의 잔소리는 다음날까지 친척들이 모두 보는 가운데서 이어졌다. 왜 그렇게 운전을 난폭하게 하니, 여자가 왜 운전을 그렇게 하니 등등. 이외에도 마음에 들지 않는 몇몇 가지를 함께 뭐라 하셨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기억이 나지가 않는다. 다만, 이 모습을 보고 몇몇 친척분들이 "며느리가 힘들겠다."며 농담 반, 진담 반 한 마디씩들 하셨다.
아무래도 장례식장이다 보니 처음 보는 친척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남편의 어머니가 많은 친척분들에게 처음 나를 소개하면, 이들은 대체로 “며느리가 잘해줘?” 이런 류의 질문을 하는 거다. 우리 엄마가 내 남편을 친척들에게 소개할 때, “사위가 잘해줘?”라는 질문을 할까? 며느리가 시모에게 당연히 잘해야 하고, 자신들은 이를 평가할 수 있다는 이상한 문화를 포함하고 있는 썩 유쾌하지 않은 질문이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시어머니는 대체로 “어~ 아직까지는 잘해.” 정도의 답을 하셨는데, 그러면 친척분이 “어머어머 간 큰 시어머니네. 요즘 세상에 며느리 눈치 봐야 하는데…”라며 부러워하거나, 역시나 “어머, 잘하면 잘하는 거지 '아직까지는'은 뭐야~ 며느리가 힘들겠네”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 그녀는 큰 소리로 얘기했다.
“어머 내가 너 힘들게 하니? 힘들면 솔직하게 얘기해. 나는 솔직한 거다~ 나는 뒤에서 다른 소리하는 거 싫어해. 솔직한 게 좋지. 내가 솔직하게 얘기하는데 그걸 언짢게 들으면 그건 니가 잘못하는 거다.”
글쎄요 어머님. 솔직한 건 본인만 편한 거 아닐까요?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당사자는 마음이 편하겠지만, 상처받은 상대방은 아닐 것 같은데요…?
남편의 어머니는 남들의 시선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다. 잘생긴 내 아들이 결혼 후 살이 쪄서(엄밀히 말하면 결혼 몇 년 전부터 급격히 살이 쪘다) 옷태가 살지 못함을 굉장히 속상해 하셨다. 그래서 때마다 살찐 남편의 체형을 탓했는데(장례식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보는 사람마다 붙들고…), 그때마다 세트로 돌아오는 멘트가 있다. 나를 가리키며 "니 남편 살찐 건 니탓이다." 내가 맛있는 걸 많이 해주거나, 간식을 많이 사다 놓거나, 먹는 걸 절제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남편은 내가 먹이고, 입히고, 돌보는 내 아들이 아니다. 남편은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먹는 성인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솔직할 뿐이니까…
장례 마지막 날 아침. 짐을 옮겨 싣기 위해 남편, 남편의 어머니, 나 이렇게 셋이 내 차로 갔다. 그런데 내 차 뒤 범퍼에 전날까지 없던 흔적이 있었다. 새빨갛고 선명한, 누군가 내 차를 긁고 간 흔적. 가까이서 보니 범퍼에 손상이 조금 있긴 하지만 컴파운드로 닦으면 닦을 수 있는 정도의 흔적이었다. 사실 내 차는 올해로 딱 10년이 된 중형차로 세월의 흔적(?)이 많다… 안 그래도 여기저기 긁혀서 누더기 같은데, 또 누군가 긁고 도망갔다고 생각하니 너무 속상했다.
"어머 이게 뭐야~ 누가 이랬어. 이거 CCTV 찾아봐야겠다."
나와 남편이 이렇게 말하자, 갑자기 남편의 어머니가 급발진하셨다.
"니네 그렇게 세상 야박하게 살지 말아라. 이까짓꺼 닦으면 다 닦이겠구먼,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어머니 그게 아니라 남의 차를 긁고 도망갔으면,,,"
그녀의 가장 큰 특징. 상대방의 말을 무조건 다 자르고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계속하며 윽박지르는 것이다. 내가 말을 시작하자마자 다 잘라 버리며,
"너 그렇게 사는 거 아니다! 차 좀 긁고 갔다고 그거 누가 그랬는지 찾고 그렇게 야박하게 사는 거 아니야!"
그러더니, 갑자기 내 차 구석구석을 살피며 세월의 흔적(=긁힌 자국)을 찾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맘 아픈 흔적들…
“얘, 이것 봐라! 나는 이게 훨씬 더 보기 싫다. 이게 훨씬 지져분하구만. 어머어머~ 여기도 있네. 지들은 여기저기 다 긁고 다니구선, 왜 남이 긁은걸 탓하니?! 니네 정말 이상한 애들이다!”
아니, 이건 논리라고도 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차를 긁고 도망가는 건 엄연히 범법행위이다. 내차가 지저분하면 누가 긁고 가도 아무 소리 할 수 없다는 얘기인가. 하지만 그녀는 악을 쓰며, 내 차의 각종 흔적들, 심지어 고속도로를 달리다 돌이 튀어 페인트가 까진 자리까지 찾아내며 잔소리를 쏟아냈다.
"너의 차가 더 더럽다!"
가슴이 답답해 미칠 것 같았지만, 그녀는 한 번 고집을 부리면 말이 통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곧이어 발인이라 안에서 들어오라는 소식이 있어 우리는 바로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범법행위를 하고도 도망간 사람의 사정까지 헤아리는 박애정신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하하하.
시할아버님은 매장을 했기 때문에 장례 마지막날도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마침 장례가 거의 끝나갈 무렵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여, 마지막 우리가 집으로 출발할 무렵에는 비가 꽤 무겁게 쏟아지고 있었다. 나는 현재 직장을 쉬고 있고, 남편은 자영업자여서 장례식이 끝난 다음날부터 바로 출근을 해야 하기에 상대적으로 쉴 수 있는 여유가 많은 내가 운전을 하기로 했다. 막 출발을 했을 무렵, 남편의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그리고 내가 운전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녀는 다짜고짜,
“어머, 위험하게 왜 니가 운전을 하니? 비도 오는데 안전하게 내 아들이 운전해야지.”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요? 사실 이런 말을 처음 들은 건 아니었다. 내가 운전을 할 때마다 그녀는 안전하지 못하다, 위험하다, 여자는 아무래도 운전을 못한다, 또는 내 아들이 운전을 더 잘하는데 왜 네가 하냐 등등의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이런 오묘한 비하(?)와 비교(?)를 들을 때마다 나는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니 기분이 나빴다.
솔직히 내 남편이 나보다 운전을 잘하는지, 내가 못하는지 모르겠다. 다만, 우리는 누가 더 잘하고 못하고를 논할 정도의 필요가 없는 오랜 운전 경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40대가 넘은 나는 22살에 운전을 시작했으며, 심지어 남편보다 5살이 많기까지 하다(그만큼 운전 경력이 남편보다 더 길다는 말). 그리고 과거 대학에서 강의를 하던 내 직업의 특성상 하루에도 몇 시간씩 고속도로를 운전해서 지방을 여러 군데 돌아다녀야 했다. 그리고 그녀가 내 운전을 걱정(?)할 때마다 나는 이와 같이 설명을 했었다. 걱정하시지 말라고… 이번에도 걱정하시지 말라며 내 운전이 안전하다 설명을 드렸는데, 그녀는 뭔가 논리적으로 밀린다 생각을 했던 것인지, 전화 통화의 마지막,
“몰라 몰라, 무조건 내 아들이 너보다 더 운전 잘해!!”
라며 악을 썼다.
뭐지? 역시나 불쾌하다. 니가 운전하는 차는 위험하다는 표현 자체가 무례하고, 내 아들이 운전을 더 잘한다는 비교우위 역시 이상하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그녀는 전통적으로 운전은 남자가 잘한다는 이상한 고정관념에 따라 내가 그녀의 아들보다 운전을 잘한다고 느껴지는 게 싫었던 것이다. 그래서 장례식 첫날 그녀 기준 남자같이 운전하던 내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운전은 무서워요~~ 남편이 해줘야 해요~~”라는 의존적이고 연약한, 그녀가 원하는 전통적(?) 여성상이 아닌 내 모습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아들보다 가방끈이 길어 당당한 며느리, 그 며느리가 아들보다 운전을 잘해 보이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이렇게 전화통화를 끝내고, 이때부터는 나도 몹시 기분이 나빠 더 이상 아무렇지 않은척 연기를 할 수가 없었다. 장례식 내도록 솔직함을 가장한 수도 없는 그녀의 무례한 공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의 시선이 중요한 그녀를 위해 최대한 딸 같은 며느리인척, 세상에 없는 효부인척 조문객들 앞에서 그녀를 띄워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는 한껏 올라갔다. 이랬던 내 행동들, 그 동안 ‘그녀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내가 이해해야 해.’라고 생각하고 참았던 날들이 마치 내가 그녀에게 가스라이팅 당한 것 같아 더 화가 났다. 내가 왜 가만히 있었을까.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겼던 내 행동들이 그녀의 이상한 행동을 더욱 강화시켰다는 생각이 들자 이건 그녀의 잘못 이전에 나의 잘못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처음 브런치 글을 올리며,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어 먼저 언급 하자면 나는 남편의 어머니에게 바보 같이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꾹 참고 있거나, 무조건 당하는 캐릭터는 아니다. 부당함에 대해 항변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씀을 드린다. 다만, 이번 상황은 시할아버님의 장례식이라는 특수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부당함에 대한 항변이란 웃으며 합리적인 대화로 풀어 나가는 것이었는데,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이 방법이 꼭 옳은지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