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로이 Jul 13. 2023

어머니, 언제는 딸이라면서요?

딸 같은 며느리


‘딸 같은 며느리’라는 말만큼 이기적인 표현이 있을까? 딸이면 딸이고 며느리면 며느리지 ‘딸 같은 며느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며느리가 세심하게 챙겨주고 살갑게 구는 건 딸 같았으면 좋겠고, 그러면서 각종 집안 대소사와 명절에서는 어김없이 며느리의 도리(?)를 다해주기를 바라는, 시부모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 취사선택하고, 간사하게 입장을 바꿔버릴 수 있는 표현. 그게 바로 ‘딸 같은 며느리’이다.


나는 결혼 전부터 남편에게 늘 얘기했다. “세상에 딸 같은 며느리는 없어.”라고. 그럴 때마다 남편은 내 의견에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듯했다. 대한민국 모든 남자들이 하는 말. “우리 엄마는 안 그래.” 물론 남편이 대놓고 내 말에 반박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표정과 말하는 뉘앙스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는 내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몇 년 후, 2023년의 오늘. 남편은 ‘딸 같은 며느리는 없다’는 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남편이 내 생각을 지지해 주니 이걸 좋다고 웃어야 하나, 아니면 울어야 하나.



시어머니의 첫 번째 생일상은 며느리가 차리는것?



결혼하고 두 번째 맞은 남편 어머니의 생신. 우리 부부는 양가 부모님 모두 생신 때 용돈 봉투를 드리고, 케이크에 촛불을 끄고, 함께 식사를 하는 정도 선에서 이벤트를 마무리한다[내가 듣기로는 케이크에 촛불을 부는 행위는 남편의 집에서 민망해서 그 동안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남편 어머니의 첫 번째 생신 날도, 두 번째 생신 날도 그녀가 나에게 한 말이 있다.


“얘, 원래 시어머니 첫 번째 생일상은 며느리가 차려주는 거다.”


물론 어머니는 나에게 정색하면서 말씀하지도 않으셨고, 웃으며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씀하셨다(아마도 진담이었겠지…). 그녀의 두 번째 생일이라 우리가 방문했던 날, 그녀는 며느리의 첫 생일이라며 생일상을 거하게 차려 놓으셨더랬다(공교롭게도 그녀와 나의 생일은 며칠 차이가 나지 않는다). 며느리 첫 생일상은 시어머니가 차려주는 거라며… 솔직히 나는 모두 처음 듣는 소리였다. 첫 생일상을 며느리가 차려야 하고, 또 시어머니가 차려야 한다니 도대체 누가 정한 규칙인가.


처음 생신상을 말씀하실 때는 결혼하고 너무 얼마 되지 않아 그냥 하하 웃어넘겼는데, 두 번째 말씀하실 때는 나도 뭔가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았다.


“어머니, 아들들이 어머니 생신상 차려드린 적 있어요?”

[어머니에겐 내 남편을 포함 그의 형까지 아들이 둘 있다]

“아니, 그런 적 없지~ 이 나쁜 놈의 시키들! 엄마 미역국 한 번을 안 끓여 줬어!”

“그런데 어머니, 낳고 기른 아들도 안 차린 생일상을 왜 며느리한테 차리라고 하세요?”


나 역시 정색하지 않고 웃으며 말씀드렸다.


“그래도 첫 생일상은 며느리가 차리는 거야.”

“그럼, 다음 어머니 생신 때는 어머니 아들이랑 저랑 같이 차려드릴게요. “


이렇게 웃으며(?) 나는 대화를 마무리했다.

물론, 내가 바랬던 바는 아니지만 며느리의 첫 생일이라며 차려주신 생일상, 그 정성과 마음에 너무 감사드린다. 그리고 며느리가 생신 상을 차려드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직접 배 아파 낳은 자식도 한 번 안 차린 생일상을 대놓고 며느리의 도리로 바란다는 것이 나는 솔직히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며느리도 자식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지금은 ‘자식은 자식, 며느리는 며느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같은 자식이니 배 아파 낳은 자식과 함께 다음 생일상은 차려드려야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너 내 아들 굶기니?



남편의 어머니는 나를 자주 ‘딸’이라고 불렀다. 아들만 둘밖에 없는 그녀는 아들들의 결혼을 통해 딸을 얻었다며 몹시 기뻐하셨다. 실제로 그녀는 비가 오면 출퇴근 길이 먼 나에게 전화해 걱정해 주셨고, 첫 생일이라며 생일상을 차려주시는 것을 비롯하여 꽤 큰 금액의 용돈도 주셨고, 갈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바리바리 만들어 싸주시기도 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나는 항상 며느리였다. 이 날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대화의 끝이었을까? 퇴근 후, 저녁 챙겨먹는 얘기를 했던 것 같다.


“너 내 아들 굶기니?!”

“어머니, 언제는 딸이라면서요?! 아들, 딸 차별하시는 거예요? 남편은 집 근처로 출근하지만, 저는 출퇴근만 2시간인데, 너무하세요.”


장난처럼 얘기했지만, 진심 마음으로 서운했었다. 그녀가 나를 진짜 딸로 여긴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인간 대 인간으로 고달픈 내 직장생활을 이해는 해주는 줄 알았다. 당시 나는 출퇴근 거리가 꽤 멀었다. 자동차로 고속도로와 막히지 않는 자동차 전용도로를 줄곧 1시간 남짓 달려야 직장까지 도착할 수 있었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교통체증까지 겹쳐 이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다. 남편은 자영업을 하고 있어 집에서 10분 이내 거리로 출퇴근을 했으며, 하루는 밤 9시에 퇴근하는 대신 격일로 다른 날은 오후 3~4시면 집에 왔다. 그래서 저녁 식사 준비는 일찍 퇴근하는 사람이 맡아서 하는 시스템이었다. 직장 거리가 멀다 보니, 나는 혹시 잡무가 남거나 해서 조금만 늦게 퇴근해도 저녁 9시가 되었다. 그러면 저녁을 먹고, 치우고, 자고 일어나 아침 7시 반이면 다시 집을 나서야 했다. 그녀는 말로는 항상 출퇴근이 먼 나의 직장생활을 걱정하면서도, 내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기 아들 밥까지도 야무지게 챙겨주길 바랐나 보다. 그와 내가 똑같이 직장생활을 하건 말건, 내가 날마다 2시간 이상 운전을 하건 말건 말이다.



너 내 아들 부려먹으려고 그러는 거지?




다른 날은 라면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계량컵과 타이머가 없으면 라면을 잘 끓이지 못한다. 그런데 남편은 계량을 하지 않으면서도 너무 익지도 덜 익지도 않은 딱 적당한 익힘 정도의 면발과 정확한 물조절로 기막히게 맛있는 라면을 끓여 낸다.


“어머니, 라면은 우리 남편이 정말 잘 끓여요.”

“너, 내 아들 부려 먹으려고 그러는 거지?!”


아니, 갑자기 대화의 흐름이 이렇게 가는 거지?  당신 아들이 라면을 기막히게 끓인다고 칭찬을 했는데, 그게 왜 내 아들을 부려먹는다는 이상한 논리로 흐르냔 말이다. 게다가 ‘라면을 끓이는 일’이 ‘부려먹을’ 정도의 대단한 일인가. 순간 당황하긴 했지만,


“네, 어머니 아들 좀 부려 먹으려구요. 왜요, 안 돼요?”


라고 웃으며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반찬 싸주는건 며느리에게만 설명해야 해.
내 아들은 이런걸 몰라야 하거든.



남편의 어머니는 우리가 갈 때마다 밑반찬을 만들어 싸주신다. 사실 우리 엄마는 더 이상 나에게 반찬을 해주시지 않는다. 내가 극구 사양했기 때문이다. 부모님들이 반찬을 만들어 주시면 힘들게 만든 정성을 생각해 다 먹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데, 그걸 다 먹어 치우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2인 가구에 부모님 세대처럼(보편적으로. 예외가 있음은 인정) 삼시세끼 밥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도 아니고, 더군다나 나와 남편 모두 갓 만든 따끈한 음식을 좋아해서 밑반찬을 잘 먹지 않는다.


나도, 남편도 남편의 어머니께 이런 얘기를 여러 번 했지만 그녀는 반찬 만들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런데 반찬을 싸주실 때마다, 항상 그녀가 하는 행동이 있다.


“OO아, 일루 와봐. 엄마가 설명해 줄게.”


하며 나를 부르시는 거다. 이건 이렇게 데워 먹고, 이건 어떻게 보관하고 이런 류의 설명이다. 심지어 내가 다른 일을 하고 있어 남편이 가면, 너 말고 내가 와야 한다며 나를 꼭 집어 부르신다. 그리고 아들에게 말씀하신다.


“너는 들어도 몰라. 니가 뭘 알아.”


그녀는 내 아들이 들어도 모르기 보다는 모르기를 바라는거 아닐까. 몇 번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나는 남편에게 ‘너와 내가 함께 먹는 음식을 굳이 나만 불러 설명하시는 게 나는 기분이 나쁘다.‘라며 의사 표시를 했고, 그 이후로 그녀가 반찬을 싸준다며 나를 부를 때마다 남편이 쪼르르 달려간다. 그러면 그녀는 “너는 들어도 몰라. OO이 오라구 해.”라며, 같은 말을 반복하지만, 나 역시 지지 않고 한 마디 한다.


“어머니 아들도 다 할 줄 알아요.”



성별로 결정되는 내 삶의 가치, 며느리.



나에게도 남동생이 한 명 있다. 하지만 내 부모님은 단 한 번도 딸이라고, 아들이라고 차별하지 않고 우리를 키우셨다. 오히려 내가 두 분의 첫 자식이었기에 더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고 자랐다면 자랐다. 그런데 내 남편의 어머니만 만나면 왜 나는 그와 똑같은 인간이 될 수 없는지 모르겠다. 성별로 내 삶의 가치가 결정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쁘다. 똑같이 직장 생활을 하더라도 내가 그의 밥을 차려줘야 하고,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해야 하고, 라면 잘 끓이는 남편 자랑을 하면 타박을 받고, 심지어 직접 배 아파 낳고 30여 년을 먹이고 입히고 키운 자식에게는 한 번도 기대하지 않았던 생일상을 나에게는 바라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녀의 딸이라면서도 딸내미 직장생활의 고달픔과 피로보다 그 아들의 밥 한 끼가 더 소중한지 모르겠다. 왜 같은 자식이라면서 역할이 달라지는지 모르겠다.


역시 ‘딸 같은 며느리’는 본인들 편하자고 만든 참으로 이기적인 표현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며느리가 운전을 잘하는 게 싫은 시어머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