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술'로 유명한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의 초기 저서이다. 자유에 대한 복합적 관점과 개인의 심리에 대해 통찰력 있게 다루며, 앞으로 전개되는 에리히 프롬의 사상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20세기 중반 물질적 풍요가 증대되는 세상에서 저자의 인간에 대한 관심과 걱정은, 여느 고전들과 같이 현재에도 큰 울림을 준다. 이 책을 통해, 고도화된 과학기술과 사회의 발전을 이룩한 21세기 현대사회의 인간은, 과연 자유에 대해 책임지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근대인은 자신이 좋아 보이는 대로 행동하고 생각하는 것을 방해하는 외적인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는 자기가 무엇을 원하고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알았다면,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는 익명의 권위에 순응하고, 자신의 자아가 아닌 자아를 받아들인다. 그가 그럴수록 무력감은 더욱 심해지고, 그는 더욱 순응할 수밖에 없다. 근대인은 겉보기에는 낙관적이고 창의적이지만, 실제로는 깊은 무력감에 압도되어 다가오는 재앙을 마비된 것처럼 멍하니 지켜볼 뿐이다.”
Escape from Freedom (자유로부터의 도피) Erich Fromm 저 | 1941년 | 김석희 역
제1장 자유─하나의 심리학적 문제인가? 제2장 개인의 출현과 자유의 다의성 제3장 종교개혁 시대의 자유 제4장 근대인의 관점에서 본 자유의 두 측면 제5장 도피의 메커니즘 제6장 나치즘의 심리 제7장 자유와 민주주의
개인이 자발성과 책임을 통해 적극적인 자유를 실현하지 못한다면, 자유라는 무거운 부담을 피해 자아의 본래 모습을 포기하고 안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력감과 외로움이라는 개념은 이미 익숙하다. 그럼에도, 현상의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를 마주하고 싶다면 에리히 프롬의 사상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자본주의의 발전으로 확대되는 자유에 대해 복합적으로 설명하며, '개인이 자발성과 책임을 통해 적극적인 자유를 실현하지 못한다면, 자유라는 무거운 부담을 피해 자아의 본래 모습을 포기하고 안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핵심 주제를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한다.
“이 책의 주요 주제는 인간이 타인이나 자연과의 원초적 일체감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에서 자유를 얻으면 얻을수록, 인간이 ‘개인’이 되면 될수록, 자발적인 사랑과 생산적인 일을 통해 자신과 세계를 결합시키거나 아니면 자신의 자유와 개체적 자아의 본래 모습을 파괴하는 끈으로 세계와 자신을 묶어서 일종의 안전보장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Content
책 속으로 - 자유가 가져오는 불확실성과 심리적 부담
자본주의의 발전은 자유를 늘리는데 기여했지만,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인간의 발달은 개인을 고립시키고 불안과 두려움, 혼란을 야기했다. 자유는 인간에게 선택의 여지를 제공하지만 그로 인한 심리적 부담 또한 가져온다. 자유는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드러내며 개인에게 부여되는 책임을 마주하게 한다. 개인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책임을 갖고 적극적인 자유를 실행하지 않는다면 자유로부터 도피할 수밖에 없다.
“인간은 더 독립적, 자립적, 비판적이 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더 고립되고 고독해지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이다. 자유라는 문제 전체를 이해하려면, 자유의 성장 과정이 지닌 두 측면 가운데 한쪽을 따라가느라 다른 한쪽을 놓치는 일이 없이 양면을 모두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개인적 고독감과 무력감을 정상적인 보통 사람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다. 그 느낌은 그들이 의식하기에는 너무 무섭다. 그의 일상적인 활동, 그가 개인적 관계나 사회적 관계에서 얻는 자신감과 칭찬, 사업에서의 성공, 기분 전환, ‘즐기기’, ‘교제하기’,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는 그 고독감과 무력감을 완전히 덮어서 가려버린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휘파람을 불어도 빛은 비쳐오지 않는다. 고독감, 두려움, 당혹감은 그대로 남는다. 사람들이 그것을 영원히 참을 수는 없다. ‘무엇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무거운 짐을 계속 짊어질 수는 없다. 소극적인 자유에서 적극적인 자유로 나아가지 못하면, 아예 자유로부터 도피하려고 애쓸 수밖에 없다.”
책 속으로 - 자유로운 선택과 자기 결정에 대한 혼란으로부터의 도피
다양한 선택과 가능성 앞에서 개인은 심리적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유로부터 도피한다. 이러한 도피의 메커니즘을 세 가지로 분류하며 권위주의, 파괴성, 자동인형적 순응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1. 권위주의 - 개인은 자발성과 책임을 포기하고, 권위 있는 개체 또는 집단에게 삶을 제어하도록 맡긴다.
2. 파괴성 - 개인은 자신의 불안과 두려움을 다른 사람이나 집단에 대한 적대감을 통해 해소하려고 한다.
3. 자동인형적 순응 - 개인은 독립성과 개성을 포기하고 사회의 기대와 규범에 무의식적으로 순응한다.
“오늘날에는 양심의 권위가 다시 순응의 도구인 상식과 여론이라는 익명의 권위로 교체되었다. 우리는 노골적인 형태의 낡은 권위로부터 우리 자신을 해방시켰기 때문에, 우리가 새로운 종류의 권위에 먹이가 된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자기의지를 가진 개인이라는 환상 속에서 살고 있는 자동인형이 되어버렸다. 이 환상 덕분에 개인은 자신의 불안한 상태를 깨닫지 못한 채 살 수 있지만, 그런 환상이 줄 수 있는 도움은 그것뿐이다. 기본적으로 개인의 자아는 약해지기 때문에, 개인은 무력감과 극도의 불안을 느낀다.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세계와의 진정한 관계를 잃어버렸다. 그 세계에서는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이 도구화되었고, 그는 자기 손으로 만든 기계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는 자기가 생각하고 느끼고 원해야 한다고 믿는 것을 생각하고 느끼고 원한다.”
“타인들의 기대에 순응하고 남들과 다르지 않으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이 회의는 잠잠해지고, 어느 정도의 안정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치르는 대가는 비싸다. 자발성과 개성을 포기한 것은 삶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는다. 심리적인 자동인형은 생물학적으로는 살아 있지만 감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는 죽은 존재다. 그는 생물처럼 움직이지만 그의 생명은 모래알처럼 손에서 빠져나간다. 근대인은 겉으로는 만족스럽고 낙천적으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몹시 불행하다. 사실 그는 절망의 벼랑 끝에 서 있다. 그는 개성이라는 개념에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그는 남들과 ‘다르기’를 바란다. 그가 “그것은 다르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큰 찬사는 없다.”
책 속으로 - 개인이 진정한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
에리히 프롬은 '변화를 위해 개인은 무엇을 실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명확한 해답을 제시해 주지는 않는다. 실천의 어려움과 이를 간단한 문장으로 대답할 수 없음을 프롬 자신이 잘 알고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는 '자발적인 사랑과 일'에 모든 희망이 있으며, 사회경제적인 차원의 변혁을 통해 인간이 적극적인 자유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개인이 자발적인 활동으로 자아를 실현하고 그리하여 자신을 세계와 관련시키면, 그는 고립된 원자 상태에서 벗어난다. 그와 세계는 구조화된 전체의 일부가 된다. 그는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갖고, 자기 자신과 삶의 의미에 대한 회의는 사라진다. 이러한 의심은 그가 따로 분리되어 있고 삶이 좌절당한 데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그가 강박적으로나 자동적으로 살지 않고 자발적으로 살 수 있을 때 이 의심은 사라진다. 그는 자신을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개인으로 인식하고, ‘삶의 의미는 하나뿐이라는 것, 즉 산다는 행위 그 자체뿐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자발적인 활동은 인간이 본래 모습을 희생하지 않고 고독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다. 자아를 자발적으로 실현함으로써 인간은 자신을 다시 세계와—인간과 자연 및 자신과—통합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런 자발성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Reflection
과거의 고찰과 현재의 문제
이 책은 20세기 중반의 시대상을 바탕으로 쓰였다. 80년이 지난 지금, 과거의 고찰은 현재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사회는 분명 발전했지만 인간의 발달은 속도를 따라가기에 조금 벅찼던 것 같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전성기를 맞이했지만 다른 선진국보다 더 큰 부작용을 겪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빠른 성장으로 인해 스스로를 돌볼만한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던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과거 위인들이 남겨놓은 경험과 지식들이 우리 앞에도 놓여있다. 해결까지는 쉽지 않겠지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을 아는 것만으로도 분명 이전과는 다를 것이다.
인공지능 기술은 인간을 더 자유롭게 만들 것인가?
현재 인공지능 기술은 비약적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지금까지 다른 과학기술의 발전과 마찬가지로 분명 인간 문명의 발전과 물질적 풍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어쩌면 인간을 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이 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적극적인 자유'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까? 적극적인 자유는 인간의 발달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며 에리히 프롬은 '자발적인 사랑과 일'에 모든 희망을 걸었다.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간의 발달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는 의존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책 너머로
에리히 프롬의 저작들은 산업화로 인한 문제들을 통찰력 있게 다루며 21세기 현대의 문제가 새로운 것이 아닌, 20세기 산업화의 연장선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에리히 프롬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 '자유로부터의 도피'보다는 가장 최근작인 '사랑의 기술'이나 '소유냐 존재냐'를 먼저 추천한다. 좀 더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고 내용도 더 친절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즐겨 읽는 저자 중 한 명이며, 이 책도 틈틈이 여러 번 읽었다. 인간에 대해 큰 통찰을 주는 고전들은 많지만, 특히 에리히 프롬의 저작들은 현재 맞닿아 있는 문제들과 가장 가깝기 때문에 더 관심을 갖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