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pse Sep 22. 2015

시간을 지배하는 자_중편

 두번째 여정. 시간 앞에 멈춘 자

 시간을 살포시 거슬러 현재의 나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월, 수, 금. 내 시간은 여전히 담보 상태이다. 하지만, 그때와 다른 건 딱 정해진 시간만 내어주면 된다는 것이다. 5시가 땡!하는 순간 나는 퇴근할 수 있다.

이 곳에서 일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야근을 한 적이 있다. 가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해야할 때도 있다. OOO 소속이라고 말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그냥 어딘가에서 꾸준히 지속적으로 일하고 있는 자체가 불편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러면 월, 수, 금을 제외한 나의 시간을 나는 지배하고 있는가? 표면적으로는 그래보인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꾸 시간에 치인다. 주체할 수 없이 밀려드는 욕구로 메워진 스케줄이 나를 짓누른다. 한동안 일하는 날보다 일을 하지 않는 날의 아침이 훨씬 일찍 밝았다. Knock down. 결국, 그리되고 말았다.

최대한 뺄 수 있는 일들은 제외했다. 어느 순간 그 어떤 일도 즐겁지 않았다. 돈벌이의 일 뿐만 아니라 내가 하는 모든 행위에서도 난 또 스스로 치열했고 전투적이었다. 5년간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주말이 지나고 나면 누구나 아는 그 BGM이 들릴 무렵 허무해졌다. 좀 더 알차게 보냈어야하는데 주말이 무기력하게 흘러갔구나. 지나간 나는 그랬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핸드폰을 만지는 시간이 늘어났다. 예전에 쓴 글을 다시 게재했다. 핸드폰 게임을 했고 하트를 받았다. 아주 가끔 하트를 보냈다. 지나간 TV를 봤고 그러다 깜박 잠이 들었다. 시간은 늘 그렇듯 흘렀다. 아등바등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매일 모기를 한 마리씩 잡았다. 아직 잡지 못한 한 마리의 모기가 있다. 창문 틈을 다 틀어 막았는데도 매일 한마리씩 들어오던 모기는 이제 두 마리씩 떼지어들어온다. 결국 모든 창을 닫았다. 잠을 자다 한번씩 훅-하는 열기에 깬다. 그리고 그 열기에 숨어 있던 모기가 윙-하고 달겨든다. 결국 불을 켜고 귀와 눈을 열어 모기를 찾지만 또 다시 잠든다.

가끔 엉뚱한 생각이 든다. 가끔 우울한 생각도 든다. 가끔 무기력하다. 예전에는 나쁜 상상의 말풍선을 없애 듯 생각을 휘휘 저어 흩어뜨렸다면. 지금 나는 그냥 그 생각과 함께 한다. 뭘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단순히 그대로 멈춰있을 뿐이다. 나는 멈춰있지만 시간은 여전히 흐른다. 그러다보면 멈춘 나를 지나쳐 생각도 흐른다.

문을 닫아 가둔 것들은 문을 열면 후다닥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예전 집에 살던 호두와 대두가 그랬다. 아빠가 개줄을 풀어놓은 걸 모르고 방심해서 대문을 열면 후다닥-하고 두 녀석이 튀어나오곤 했다. 동네 몇바퀴를 돌고 나면 다시 들어오고는 했다. 애초에 가둬놓지 않았다면 그들은 기회를 틈 타 탈출했을까.

나는 나를 풀어놓기로 했다. 내 시간도 함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