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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pse Sep 16. 2015

왈딤앱두르 증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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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을 찾았다. 요즘 몸이 이상 징후를 보이는 탓이다. 며칠 전부터 급격하게 머리가 아파져 오더니 귀도 잘 들리지 않길 시작했다. 그리고 자꾸 코끝을 이상하게 맴도는 냄새가 있는가 하면 눈앞도 뿌옇게 흐려지기 일쑤였다.
  
  “왈뒴앱두르 증후군입니다.”
  “네?”
  “왈뒴앱두르 증후군이라고요.”
  의사는 난생처음 들어보는 병명을-그게 병명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내게 말했다. 이런 것도 모르느냐는 듯한 표정에 나는 조심스러워졌다.
  
  “저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조금 자세히 말씀해주시면 안 될까요?”
  “뭐, 간단하게 말하면 노화되어가고 있는 겁니다.”
  “노화요?”
  “그렇죠. 사람들이 노동하듯이 우리의 신체 기관도 하나의 회사 아래에 있는 노동자들처럼 날마다 노동을 하고 있거든요. 가령 심장이 파업이라도 하면, 그 순간 바로 삶이 끝나는 거죠. 그래서 심장은 당최 나태할 겨를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신체 기관들은 조금씩 땡땡이를 치기도 한다는 겁니다. 그건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말이죠.”
  음. 점점 이해가 안 가는 말들이 의사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저 그래도 이해가 잘.”
  멋쩍은 듯이 내가 말을 하자, 의사는 곤란한 표정이 되었다.
  
  “아.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아! 그렇지. 혹시 겨울만 되면 여기저기 뒤엎어지는 보도블록들 보셨나요?”
  “아, 네..”
  “그것과 비슷한 겁니다. 집행된 예산을 쓰지 못한 각 관공서나 지자체들은 그 예산을 다 써야지 다음 연도에도 그에 상응하는 돈을 받으려고 줄기차게 도로를 뒤엎는 것과 같은 거죠. 우리 몸도 해마다 신체나이에 맞게 노화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데, 신체기관들이 1년 동안 게으름을 피운 거죠. 서서히 노화되면서 다음 1년을 맞이해야 하는데,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갑작스럽게 노화를 진행하려니까 지금 몸이 이상한 거란 말입니다.”
  알 듯도 하고 모를 듯도 한 말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2016년이 되면 저절로 괜찮아질 겁니다.”
  약 처방도, 주사도 없이 의사는 그 단 한마디의 말을 끝으로 나를 내보냈다. 결국, 난 집으로 돌아와서 초록페이지 속의 지식인에게 물었다.
  
  왈뒴앱두르 증후군.
  1929년 경제대공황 직후, 아프리카 출신의 한 노동자에게서 처음 발병을 보인 후 그 환자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지나치게 낙천적이던 60세의 왈뒴앱두르는 그 나이에 맞지 않는 건강한 신체기관을 가지고 있었는데, 12월 마지막 1주일 동안 1년치의 노화가 한꺼번에 오는 병을 앓았다. 급격히 눈이 안 보이기 시작했으며, 귀에 이명이 들리고, 후각과 미각도 기능이 잠시 중지되는 병이나 다음해로 넘어가면 증세는 급격히 완화된다. 주로, 1년 동안 어떤 일에 너무 열심히 매진한 사람에게 오는 증상으로, 치료법은 연말이 지나고 새해가 다가오면 저절로 낫는다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연말이상 건강노화 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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