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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캄JoyCalm Jul 13. 2024

이게 될까? 내가 할 수 있을까?

세상을 대하는 마음자세 : 결핍모드에서 풍요모드로 갈아타기


요즘 나는 세상을 보는 눈의 경계를 넓히고 있다.  10여 년 동안  머물렀던 공부와 수련관점에서 성장과 비즈니스의 관점으로 확장하고 있다


세상을 보는 눈의 경계에 변화를 주면서 새로운 질문이 일어난다. 그 질문들은 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과 함께 끈질기게  달라붙는 소리가 있다.

'이게 될까?'

'내가 할 수 있을까?'

'너무 바보 같은 거 아닐까?'


이런 마음소리가  있을때면 기운이 빠지고 어깨가 축 처지고, 눈빛은 흐릿해진다.   마디로 스스로 제발목을 걸어 넘어뜨리려고 하는 샘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가만히 앉아서  그 재잘거림을 듣다보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다시 뭔가를 해볼만한 힘이 생긴다. 

 


사실 요즘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를 때가 많다. 기존에 하던 일을 새로운 방식으로 꾸려 나가려고 하니 막막할 때가 많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도 잘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때로는 다른 사람 쫒지말고 '내 속도에 맞추자' 하며 다독거림이 필요할 정도로 마음이 바빠지곤 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마음속 내용물은 조바심에 부들거리지만, 또 한편에서는 그것을 알아차리고 있는 마음은 고요하다.  


어떨 때는 이러한 조바심과 막막함 속에서도 아이러니한 기쁨도 일어난다. 이제야 삶에서 나 자신이  깨어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지만 뭔가 잘되고 있는 듯한 묘한 기분도 든다.  이런 마음을 잘 표현해 준 글을 오늘 만났다: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짜 해야 할 일을 하게 된다.

더 이상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여정이 시작된다.

-웬델 베리(Wendell Berry) -

*

위의 글에서 처럼, 이제 진짜, 내 삶의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리라 믿는다.  더디고 나아가는 티도 안 나고 막막하지만, 이런 불편한 느낌을 오롯이 깨어 경험하고 싶다.



오늘 존 카밧진 선생님의 글에서 그의 가치관을 보게 되었다.  고대의 마음챙김 명상을 현대화하는데 큰 공헌을 하도록 이끈 그 바탕에는 세상을 향한 그의  소명 같은 것이 있었으리라 짐작했다. 그것이 무엇일까 궁금했는데, 오늘 그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매 순간 온전한 주의 기울임을 통해 개개인이 각자의 아름다움에 눈뜨기를 바랐다. 그에게 있어 개개인에게서 피어나는 그 아름다움은 한 개인의 소유물이 아닌 세상과 공유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카밧진 선생님은 개인들이  상호 의존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지혜를 발견하고 서로를 향한 연민이 끊이지 않고 흐르게 하기를 바랐고 그렇게 되도록 돕는 것이었다.

*

이러한 가치에 기반한 그의 활동은 고대의 명상이 현대인의 삶 속에서 수행되도록 견인했다.

팀장님들과 마음챙김 대화 중..


한 사람의 가치기반 활동이 세상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 사람은 가치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걸까 ..?

*


요즘 나는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면서 작은 열망이 생겼다. 넓디 너른 바다가 금방 집어삼킬지라도 나만의 작은 조각배를 띠우고 싶다는 열망이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것임을 나는 믿는다. 이 믿음이 눈에 보이고 만져지도록 구현하려면 가치가 뒷받침되어야 하고, 적확한 실행력이 뒤받침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실행을 꾸준히 견인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대하는 바른 태도, 마음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오늘 카밧진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삶을 대하는 마음자세를 점검해보았다. 


 세상으로부터 구하려는 마음자세인가 아니면, 세상에게 주려는 마음자세인가 


다시 말하면, 세상을 대하는 나의 마인드셋은 무엇인가? 결핍이 낳은 '생존모드'인가 아니면 충만에서 싹튼 '풍요모드'인가?  


세상을 향한 나의 마음자세가 애걸복걸하는 '생존모드'가 아닌,  세상에게 기여하고 있다는 '풍요모드' 일 때 우리의 내면은 감사와 기쁨으로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다.  풍요모드에서는 '이게 될까.... 할 수 있을까...'와 같은 마음속 훼방꾼이 설 자리가 없다.


요즘 나는 생존을 위한 허덕임의 자리가 아닌 기여를 위한 풍요의 자리로 반복해서 넘어오는 중이다. 풍요와 충만의 자리에서 지금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실행에 옮겨보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차원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독특함의 풍요와 충만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


충만과 풍요의 자리에서라면 '이게 될까?'와 같은 자기 의심은 분명 설 자리가 없다.  나는 이미 풍요롭고 자유하고 충만함을 내게 허용해주자

*


아래는 존 카밧진 선생님의 책 <당신이 모르는 마음챙김 명상>에서 길어온 문장들이다. 고대의 마음챙김 명상을 현대화하는데 큰 공헌을 하신 그 바탕에는 세상을 향한 철학적 사유가 있었음을 본다.

-조이캄 드림-


우리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앞으로 이 세상이 펼쳐지는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우리가 가진 선천적이고 비할 데 없는 능력인 현재 순간에 대한 자각(알아차림)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크게 좌우될 것이다.  25쪽


우리가 속한 집단여행의 목적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고 미리 정할 수도 없다. 목적지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여행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일을 이 순간 어떻게 이해하고 대처하느냐가 다음 순간, 그리고 또 그다음에 일어날 일을 결정짓는다. 이 모든 것은 결국 미리 결정할 수 없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일어난다. 26쪽


우리는 제대로 검토되지 않은 채로 잘못된 환상과 미망 속에 가두는 힘이나 습관에 휩쓸려 살 수도 있다. 아니면 그런 것들에 완전히 깨어 있으면서 어떤 순간에 일어나는 일을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눈앞에 펼쳐지는 모습에 온전히 참여하면서 살아갈 수도 있다. 우리가 깨어 있을 때만 비로소 우리의 삶은 현실이 되고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망상, 질병, 괴로움에서 해방되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26쪽


사실 나와 세상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상호 의존하며 공생의 춤을 추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모든 것이 '내 방식'대로 되기를 강요하며, 그 과정에서 모든 것 안에 흐르고 있는 리듬이 깨지고, 아무리 작더라도 여전히 심각할 수 있는 잠재적인 폭력이 수반되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이러한 무감각은 일을 어렵게 하거나 심지어 그르치게 할 수도 있다.  그러한 무감각과 단절이 우리를 우리 자신이 가진 가능성에서 분리한다. 28쪽.


우리 자신의 생각과 감정, 열망과 두려움, 희망과 꿈이라는 내면의 세계에 주의를 기울일 때가 되었다. 우리가 누구든 어디에 살든 우리 모두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 평화롭게 살고 싶고, 개인적인 열망과 창작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고자 하며 의미 잇는 방식으로 좀 더 큰 목적에 기여하고자 한다. 우리는 잘 어울리고 소속되어 있는 그대로 소중히 여겨지기를 바란다. 개인과 가족이 번창을 바라며 상호 존중하고 목적이 있는 사회로 번영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개인으로서는 건강이라는 역동적 조화를 이루며 살기를 바란다. 공동체로서는 공공복지라는 역동적 균형을 이루기를 바란다. 31쪽


우리가 몸과 마음에 조화될 때, 그리고 하루와 일생에 걸쳐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 즉 무엇을 위해 살 가치가 있고 무엇을 위해 필요한가에 대한 우리의 동기와 비전에 조화될 때 균형은 이미 거기에 있다. 이러한 역동적 균형 속에서 우리는 가장 편안하게 집에 있는 느낌을 갖게 된다. 31쪽


내면 깊이 자리 잡은 역동적이고 생기 넘치는 내면의 평화와 안녕에 대한 능력이 우리에게 있다. 주의 기울이기라는 지속적이고 회복적이며 치유적인 특정 성질을 이용하여 건강을 증진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주의를 기울이고 지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이 능력은 우리가 그렇게 할 의도만 있다면, 우리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충분히 계발될 수 있다. 32쪽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자각을 연마하는 것이다. 오감을 통해 사물을 직접 파악함으로써 성장하고 변화하며 배우고 자각한다. 여기에는 마음의 힘도 더해진다. 불교에서는 마음도 하나의 감각으로 본다. 지속적으로 깨어있는 의식의 힘을 계발하고 거기에 머물 때, 자유의 새로운 차원은 우리에게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  34쪽.


우리의 주변 세계는 알든 모르든, 좋든 싫든 간에 우리 자신을 찾고 방향을 정하는 모든 수준에서 끊임없이 유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수많은 예기치 못한 도전과 기회를 제공하며 깨어나서 더욱 분명하게 보고 성장하며 행동을 통해 더 큰 지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35쪽  


몸에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존중하지도 않는다. 이상하게도 몸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동시에 낯선 풍경이 되기도 한다. 36쪽.


마음챙김mindfulness는 자각(알아차림, awareness)과 같은 표현이다. 마음챙김에 대한 나의 조적적 정의는 "의도를 가지고 현재 이 순간에 비판단적으로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생기는 자각"이다. 필요하다면 "지혜와 자기 이해, 타인과 세계와의 본질적인 상호 연결성을 위하여 그 결과 친절과 연민을 위하여"를 추가할 수 있다.  37


비판단적(non-judgment)이라는 것이 정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면, 마음챙김은 근본적으로 윤리적인 것이 된다. 이것은 판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자주 판단을 할 것이다. 판단을 가능한 한 멈추고, 판단하는 것을 판단하지 않으며, 판단이 일어날 때는 단순히 인식하는 초대장 같은 것으로 받아들인다. 37쪽


명상 자체나 명상을 할 때 기이하거나 이상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명상은 우리 삶에 단순히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보다 진짜로 훨씬 더 중요하다. 명상은 전혀 이상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지만, 동시에 매우 특별하고 상상도 못 했던 방식으로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무엇이기도 하다. 37쪽


마음챙김을 계발하여 배우고 성장하고 치유하기 위해 스스로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어떤 의미로 건강하지 못한 세상에서는 혼자 온전히 건강한 개인으로 남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것과 상호관계 속에 있기에 다른 사람의 고통은 곧 우리 자신의 고통이 된다. 그것은 해결해야 할 문제라기보다는 우리 자신과 세상 모두의 내면적 외면적 변화를 위한 강한 동기가 될 수 있다.  39쪽


점점 더 좁아지는 세계 속에서 우리는 다른 모든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온정신을 회복한다는 것은 모든 감각에 대한 대단히 중요한 알아차림을 계발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의 마음과 그 한계까지 포함된다. 우리가 깊은 불안감을 느낄 때, 그 불안감을 해소해 줄 거라고 생각되는 자원이 많을 때, 외부 세계의 모든 가능한 변수를 되도록 엄격하게 통제하려는 유혹에 대한 알아차림도 포함된다. 그런 통제란 불가능하고 궁극적으로 우리를 소진시키고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며 자기 소모적일 수밖에 없는 시도다. 40쪽


숨 쉬고 있는 한 여전히 삶을 선택할 시간이 있다. 그 선택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을 되돌아볼 시간이 있다. 이러한 선택은 거대하고 두려운 관념적 선택이 아니라, 핵심적이고 현재 순간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그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생각과 감정을 통해 우리 내면에서 매 순간 말과 행동을 통해 외면에 펼쳐지는 삶의 근본적인 기질과 매우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44쪽


살아 있는 소중한 시간에 우리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세상과 공유하고, 살아가는 방식과 제도 속에서 그리고 가정과 세계에서 우리 상호 연결성을 존중하는 방식을 통해 구현되는 지혜와 연민이라는 유산을 자손들에게 남기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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