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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강산 Sep 25. 2023

왜 자기 자식은 가르치면 안되는 걸까

'오늘은 짜증 안내야지' 다짐하지만 결국 폭발, 회사에서 그러면 00상사

요즘 장안의 화제라는 <나는 SOLO(솔로)> 돌싱 편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봤다. 혼자 남매를 키우는 영식이 딸이 방학일 때 직접 수학 선행학습을 시킨다는 얘기를 하자 현숙은 '진짜 쉽지 않은 일'이라며 현식을 추켜세운다. 본인도 직접 딸을 가르쳐 봤지만 서로 감정만 상하고 중도에 포기했기 때문이다. 자식을 직접 가르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그 과정을 성공적으로 해낸 영식에게 호감을 보인 것이다. 


나 역시 초등학생 아들을 직접 가르쳐보니 자식을 가르칠 때 감정을 추스르고 이성적으로 대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게 됐다. '오늘은 짜증내지 말아야지' 다짐하건만, 어느 순간  지적에서 시작해 글씨체, 획순, 연필 쥐는 방식, 앉아있는 자세 등등 못마땅한 점들을 일일이 지적하며 언성을 높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자고로 제아무리 좋은 선생님이라 해도 자기 자식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고 했다. 당장 나만 해도 어릴 적 아버지에게 한자를 배우느라 벌어진 부자관계가 불혹을 지나도록 봉합되지 않고 있다. 가르칠 때의 우여곡절도 문제지만 그 과정에서 생겨난 감정의 앙금이 평생을 갈 수 있다. 대체 무슨 이유로 부모가 자식을 가르치면 문제가 되는 걸까. 


첫 번째 문제는 부모 입장에서 볼 땐 아이가 하는 공부가 너무 쉬워 보인다는 점이다. 자기가 봐도 어려우면 납득이 될 텐데, 쉬운 걸 못한다고 생각하니 가르치기 전에 성질부터 내게 된다. 


실제로 부모가 따로 공부하지 않고도 자식 공부를 봐줄 수 있는 건 초등학생에서 중학교 1~2학년 정도까지다. 특히 수학의 경우 아직 계산 위주의 '산수' 단계에서는 어른이 풀기에 어렵지 않다. 암산으로 계산해도 답이 나오는 걸 아이가 자꾸 계산 실수로 틀리는 걸 보면 답답한 마음이 든다. 자기 기준에서 생각하다 보니 '아니 대체 저걸 왜 못하지'하고 의아하게 생각하고, 자꾸 비슷한 걸 틀리면 급기야 성질을 내게 된다. 


다음으로, 옆에서 아이가 공부하는 걸 지켜보고 있으면 자세나 태도가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꾸부정한 자세, 알아보기 힘든 글씨, 어느샌가 낙서를 하며 딴짓하는 모습 등등. 그나마 채점을 하기 전까진 꾹 참고 눌러두는데 동그라미 대신 작대기가 하나둘씩 늘어나기 시작하면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결국 '자세가 왜 이 모양이냐' '집중할 생각을 안 하고 대충 빨리 끝낼 생각만 하니까 글씨가 개판 아니냐'며 아이에게 잔소리를 쏟아붓게 된다. 그러면서 '공부 못하는 건 이해하지만 태도가 틀려먹은 건 용납할 수 없어'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물론 공부를 잘하면 구부정한 태도는 안쓰럽게 보이고 개발새발 글씨는 '천재는 악필이라더니'라는 감탄으로 바뀔 것이다)


마지막으로, 만만해서다. 어찌 보면 이게 핵심인지 모른다. 남의 자식이면 함부로 못할 텐데 내 자식이라 함부로 하게 된다. 예전 부모들처럼 체벌까진 안 하더라도 감정을 컨트롤하려고 노력하기보단 곧바로 아이에게 분출하게 된다. 아이 입장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헤아려보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이처럼 부모가 자식을 직접 가르치게 되면 신통방통할 줄 알았던 자식과 소통하려는 노력 없이 분통만 쌓이게 된다. 그나마 '이 길이 아닌가 보다' 판단하고 교육은 과감하게 공교육과 사교육에 위임하기로 하면 나을 텐데,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운다'는 책임감으로 오기를 부리면 부모 자식 간에 감정의 골은 깊어진다. 골이 깊게 패면 시간이 지나도 건너기가 힘들다. 



사실 자식을 가르칠 때 느끼는 감정은 사회생활에서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느끼는 감정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경험이 많은 시니어가 볼 때 신입이나 주니어가 어설프게 일처리 하는 모습을 보면 '저런 것도 모르나' '요즘 대학에선 뭘 가르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일처리뿐만 아니라 어린 직원들의 태도도 마뜩지 않다. 책임감을 갖고 일을 완수하려 하기보다는 빨리 부담을 털어내려는 듯 대충 마무리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저런 식으로 일을 처리하고도 무슨 염치로 월급을 타가려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겉으론 사람 좋은 표정을 하지만 속으로는 '라떼는 안 그랬는데' 'MZ세대는 어쩔 수 없어'라며 혀를 찬다. 


하지만 직장에서 부하나 후배 직원의 일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막말을 쏟아내진 않는다. 자식과 직장 후배를 대할 때의 가장 큰 차이다. 대신 완곡한 어조로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수정, 보완을 요청한다.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라면 자신의 올챙이 적 시절을 떠올리며 이들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물론, 회사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쏟아내는 이들이 있다. '당신 지금 몇 년찬데 아직도 일을 이딴 식으로 하나' '대체 생각이란 걸 하기는 하나' 같은 막말을 내뱉기도 한다. 직장에서 부하 직원이 일을 못하거나 태도가 불손하다고 해서 툭하면 화를 내고 소리를 높이면 우리는 그런 상사를 '갑질'한다고 말한다. 도가 지나치면 '사이코패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들이나 딸에게 공부를 가르치면서 화를 내는 건 자식을 상대로 '갑질'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단지 자식이기 때문에 만만하다는 이유로 '남들'한텐 하지 않을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막말을 쏟아내면 갑질 상사로 찍히듯이 자식들도 부모의 갑질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친구들과 뒤에서 욕을 할 것이다. 돌아보면 나 역시 그랬으니까. 


공부를 가르치면서 우리 아들을 남의 아들처럼 대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다. 아무래도 채점까지 해주는 학원을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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