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2학년 시절 단일 공간으로 가장 오래 머무른 곳을 꼽는다면 단연 '과방'이다. 수업을 듣는 강의실에 머무는 시간은 3학점 기준으로 기껏해야 1주일에 3시간. 도서관은 신입생이 상주하기엔 뻘쭘한 공간으로 인식되던 시절이라 수업 사이사이 공강을 비롯해 틈만 나면 과방을 찾았다.
당시 익숙했던 과방의 풍경은 자욱한 담배 연기를 배경으로 복학생 형의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주로 민중가요) 소리가 울려퍼지던 모습이다. 여기에 담배를 꼬나문 채 고뇌에 찬 표정으로 과방 노트(노트 한 권 던져놓으면 돌아가며 일기도 쓰고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했더랬다)에 개똥철학을 끄적이는 동기의 모습이나 바닥에 펼쳐놓은 하얀 전지 위에 대자보를 쓰던 운동권 선배의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신입생 땐 구석 소파에 앉아 입구를 주시하다 익숙한 얼굴이 문 열고 들어오면 '선배, 밥 사주세요'를 외쳤고, 선배가 된 다음엔 혹시 밥 사달라 할 후배들이 와있을까 빼꼼히 문틈으로 동태를 살피기도 했다. 이른 아침 찾은 과방엔 무질서하게 흩어진 소주병 옆에 새우깡 봉지가 펼쳐져 있었다. 종종 그 옆에 놓인 소파에서 부시시 일어나 '해장하러 갈래'라고 묻던 선배의 목소리도 들리는 듯하다.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입대해 상병을 달았을 즈음. 하루는 내무실에서 오후 5시쯤 SBS에서 하던 '리얼 코리아'란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마침 요즘 대학가 핫이슈라며 과방에서 담배를 피우는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모습을 취재했다.
복수의 대학 사례들을 소개하던 차에 애연가들이 많기로 유명한 학교라는 소개와 함께 입대 전 뻔질나게 들락거렸던 과방 건물의 모습이 화면에 등장했다. 금연빌딩이란 개념이 등장하기 이전, 실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특히 과방에서의 흡연은 삼겹살에 김치를 구워 먹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연결동작으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TV 속 익숙한 과방의 모습을 반가워하면서도 '아니, 요즘엔 과방에서 담배 피우는 것도 눈치를 봐야 돼?'라며 혀를 끌끌 찼더랬다. 제대하면 후배들에게 담배와 과방은 불가분의 관계임을 참교육시키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복학한 뒤로 과방을 찾은 횟수는 손에 꼽는다. 처음 보는 후배들 사이에서 낯가림을 하다 더 이상 과방의 주인은 우리 세대가 아님을 깨닫고 복학생답게 도서관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요즘 대학가에서 과방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학생들은 원하는데… 사라지는 대학 ‘과방’>신설된 학과에 대해 대학 측이 과방을 설치해주지 않거나 건물을 신축하거나 리모델링을 할 때 과방을 배정하지 않아 학생들과 갈등을 겪는 경우도 있다. 학교 측에서 새 건물에 강의실이나 교수 연구실 같은 '핵심' 시설만 두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학교 측의 일방적인 과방 없애기. 예전 같으면 'NL이냐 PD냐'(학생운동의 분파)를 떠나 전교생이 대규모 집회를 열 만한 사안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더 이상 과방이 대학생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지 않는 시대여서인지 학생들의 반발이 생각보다 크지 않아 보인다.
그 시절 과방은 우리가 교실을 떠나 대학이란 낯선 공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 보금자리였다. 술과 담배, 기타가 어우러졌고 그땐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하지만 '과방에서 금연이 웬 말이냐'를 외치던 시절을 지나 머지않아 '과방이 뭐야'라는 소리를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과방보단 '라방'이 익숙해진 시대. 오랜만에 과방을 추억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