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위해 고안된 편도체가 생존을 위협하는 진화의 아이러니를 극복하려면
시카고 대학의 클링 박사가 아미그달라(*amygdala, 편도체)를 다친 원숭이 일곱 마리를 야생지대예 놓아주었더니 일곱 시간 만에 한 마리만 빼고 전부 맹수들에게 잡아 먹혔다. 생존을 위해서는 부정적 감정이 필수적인 것이다.
뇌신경과학자들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 평균 2만 가지 상황을 주게 된다고 한다. 아미그달라는 이 모든 상황을 늘 ‘내 편'과 ‘네 편’, ‘나’와 ‘적'의 두 가지로 분류해 두뇌 전체에 전달한다. 철저하게 나의 생존이라는 시각으로 모든 상황을 분류한다.
<왓칭> 168P
회사를 그만둔 지 3개월 차. 아침에 눈을 뜨면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자고 마음을 먹다가도 금세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힌다.
'이러다 쭈욱 백수로 지내야 하는 건 아닐까?'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하면 생각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한없이 뻗어나간다. 직장 생활의 장점 중 하나는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있지만, 스트레스를 함께 해소할 동료도 있다는 점이다. 상사나 회사에 대한 뒷담화는 나와 비슷한 상황을 공유하는 동료가 아니면 공감해 주기 어렵다. 회사를 그만둔다는 건 더 이상 이런 우군(友軍)들이 남아있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가 쉽게 불안에 빠지는 건 뇌에서 감정 처리를 담당하는 편도체(amygdala)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편도체는 생존에 위협이 되는지 여부를 본능적으로 판단해 감정으로 변환한다. 위협이 없다면 '유쾌'하게 느끼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반대로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면 이를 '불쾌'한 감정으로 분류해 불쾌한 원인이 제거될 때까지 분노나 공포 같은 감정을 유지한다.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다루기가 쉽지 않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 상태가 지속돼 더 깊은 우울로 끌려들어 가지 않으려면 편도체가 부정적으로 판단한 '불쾌' 스위치를 꺼줘야 한다. 편도체가 위협이 된다고 판단한 요소가 사라졌다는 확신을 심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이때 '반박'이나 '부정'으로 맞서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고 한다. 백수로 지내는 데 대한 편도체의 불안에 대해 '걱정하지 마. 곧 취직할 거야'라고 대응해 봐야 실제로 취직할 때까지 위협 요인은 제거되지 않고 그동안 부정적인 감정이 머릿속을 지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단 현재의 위협 상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편이 효과적이다. 어린아이를 달래듯 불쾌한 감정을 생존의 위협으로 느끼는 편도체를 잘 달래서 부정적인 생각을 사라지게 하고 마음의 평정을 찾아와야 한다. 나 스스로에게도 적용해 봤다.
지금 일을 안 하고 있어서 불안하지? 이제 적은 나이도 아닌데 그렇게 느끼는 게 당연하지. 그래도 당장 먹고사는 게 문제가 되는 건 아니잖아. 물론 사회적 시선이 신경 쓰일 순 있지만 너도 알다시피 사람들은 다른 사람 인생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아.
대신 좋은 점도 있잖아.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읽고 싶은 책도 마음대로 읽고. 무엇보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나아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밥벌이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면 지금 이 기간이 남은 인생을 진정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줄 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서두에 인용한 것처럼 편도체는 인간과 포유류가 생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기관이다. 문제는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이상 물리적인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원시적인 야생이 아니란 점이다. 실제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 아닌데도 편도체가 시도 때도 없이 위험 신호를 보내면서 우리는 수시로 불안과 슬픔에 시달리게 된다.
편도체가 보내는 위험 신호를 제때 끄지 못하면 더 깊은 우울에 빠져들게 된다. 우울증에 걸리면 심한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생존을 위해 진화한 편도체가 생존을 위협하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오늘도 편도체의 위협 스위치가 켜지는 바람에 자괴감에 빠져 하루를 보낼 뻔했다. 편도체에 휘둘리지 않고 전두엽이 고삐를 잡고 리드할 수 있도록 이마를 톡톡 두드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