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이란 동전 던지기 같은 것, 다만 누군가는 더 자주 던질 기회를 갖는다
5만 달러짜리 회계 항목 하나 때문에 향후 3억 달러가 넘는 이익이 사라질 뻔했다. 우리 주장이 관철된 것은 뜻밖의 행운이었다.
<현명한 투자자>, 벤저민 그레이엄 저, 중에서
투자 분야의 고전으로 꼽히는 <현명한 투자자(Intelligent Investor)>를 어렵사리 완독했다. 저자인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은 오마하의 현인, 투자의 구루(guru)로 인정받는 워런 버핏이 사사한 스승이다. <현명한 투자자>의 초판은 1949년에 나왔다. 마지막 개정판이 발간된 1973년을 기준으로 해도 반세기를 채웠다.
벤저민 그레이엄의 투자 철학은 <현명한 투자자> '서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향수가 아니라 식료품을 사듯이 주식을 사야 한다"는 말에 집약되어 있다. 우리가 마트에서, 특히 요즘처럼 인터넷으로 식료품을 살 때는 가격을 꼼꼼히 비교하고 따져보고 산다. 좋아 보인다고 해서, 요즘 유행한다고 해서 가격표도 보지 않고 장바구니에 담진 않는다는 얘기다. 아무리 좋아 보여도 비싼 가격을 주고는 사지 않는 것이 그가 뿌리내린 가치투자의 원칙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그레이엄은 한 방을 노리는 대신 투자 대상을 철저히 분석해 안전한 투자를 고집하며 가치투자의 초석을 쌓았다. 그랬던 그가 단 한 건의 투자로 다른 모든 투자를 합한 것보다 많은 수익을 올리는 '대박'을 올렸다는 건 그의 말마따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그레이엄 본인이 밝혔듯이 해당 투자 건의 성공은 면밀한 조사, 분석을 통해 사전에 그 가치를 정확히 예측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투자기준에 맞지 않아 투자를 포기할까 했지만 '운' 좋게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면서 투자가 성사된 것이다. 그레이엄 투자 인생에서 최고의 투자는 다분히 '운(運)'에 의존한 셈이다.
이 같은 그레이엄의 투자 사례가 주는 교훈은 결국 투자란 최고의 전문가들조차 예측하기 힘든 '운칠기삼'의 영역이란 것일까. 이에 대한 그레이엄 본인의 얘기를 좀 더 들어보자.
"확실한 교훈은, 월스트리트에서 돈을 벌고 지키는 방법은 다양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교훈은(그다지 확실치는 않지만), 행운이나 지극히 예리한 판단 (둘을 구분할 수 있을까) 하나가 평생의 노력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는 행운이 평생의 노력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핵심은 그다음 문장에 나온다. 그레이엄은 "하지만 운이나 예리한 판단 이전에, 절제력을 갖춘 유능한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한다. 널리 인정받는 유명인이 되어있어야 이런 기회가 찾아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운이 좋아 대박 투자가 성사됐지만 애초 이러한 투자에 참여할 수 있었던 건 그레이엄이 투자업계에서 쌓은 신뢰와 명성 덕분이다. 운이란 확률이 반반인 동전 던지기 같은 것이지만 성공한 사람들에겐 동전을 던질 수 있는 기회가 더 자주 찾아온다.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이름을 알림으로써 스스로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낸 것이다.
'존버'가 답이라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다만, '버티는 게 이기는 것'이란 말 뒤에는 '자신의 철학과 원칙을 고수하며'란 설명이 생략되어 있다. 한 분야에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꾸준히 성과를 올리면 신뢰가 쌓이고, 그 바닥을 떠나지 않는 한 그렇게 쌓은 신뢰가 행운을 가져다줄 확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결국 성공에 필요한 건 재능이 아니라 반향이 없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성실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