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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임 Jul 25. 2023

청소 DNA의 발현

'찍 찍 찍 찍'

아버지는 스카치테이프(투명 박스테이프)로 장판에 붙은 먼지나 머리카락을 떼어내셨다. 


'찌이이익-'

한 바퀴 둘러놓은 테이프에 먼지가 가득 붙으면 둘둘 감고, 테이프를 쭉 뜯어내어 다시 한 바퀴를 두른 후에 같은 일을 여러 번 반복하셨다. 


우리 집에서 청소 담당은 아버지였다. 부엌은 어머니의 영역, 나는 모든 영역을 어지럽히는 방해꾼이었다. 아버지는 종종 청소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곤 하셨다.


"화장실 청소를 마무리할 때에는 대야에 물을 가득 받고, 락스를 아주 조금만 부은 다음에 바닥에 뿌려주면 냄새도 안 나고 좋아. 알겠지?"

"아~그렇구나"


대답은 잘했지만 실천할 생각은 없었다. 언제나 청소 담당은 아버지라고 생각했으니까.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아버지는 병명을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병치레를 하셨다. 입원하기를 수차례 반복하며 위태로운 날들이 계속되었다. 집은 점점 밝은 빛을 잃어갔다. 시커먼 어둠이 내려앉은 듯 집안의 모든 불을 밝혀보아도 어두웠다. 그리고 이십 대의 어느 여름날 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


하지만 산 사람은 살아야 된다고 하지 않던가. 장례식장에 온 손님들 중 몇몇이 그런 말을 했다.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장례를 마친 후에야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드라마에서처럼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깊은 슬픔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비련의 주인공 같은 모습은 없었다. 당장 하루하루를 살아가야만 하는 현실 앞에 놓이게 된 것이다. 슬픔을 뒤로한 채 하루, 이틀 살아가다가 어느 날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


'불안(不安)'이었다. 

불안감은 순식간의 나의 몸과 영혼을 사로잡았다. 그 누구도 내게 이런 후폭풍이 있다고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뒤통수가 더 얼얼했다. 불안으로 응급실을 오가던 때. 이렇게 불안에 휩싸여 살다가는 큰일이 날 것 같았다. 정말로 죽을 것만 같았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위기를 맞이할 때 생각지도 못한 숨겨진 능력이 발현되지 않는가? 나는 영화 주인공도, 드라마 주인공도 아니지만 내게도 숨겨진 능력이 있었다. 바로 청소 DNA였다.



작가의 말

여러분 만의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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