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의 취미와 특기란에 보통 '운동', '음악감상', '독서' 등을 적어서 제출하지 않던가. 나는 진심으로 '청소', '정리정돈'이라고 적고 싶었다. 진심이었다. 진심.
기업에서 면접 질문으로 스트레스 관리 요령을 물어봤을 때 나는 '청소'라고 답변했다. (실제로 스트레스받으면 청소를 한다.) 깨끗해진 집을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덧붙였는데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람들은 시험공부를 하기 싫을 때, 과제를 하기 싫을 때 청소를 한다. 침대 위에 켜켜이 쌓인 옷가지, 책상 위를 가득 채운 온갖 잡동사니를 정리하다가 추억이 깃든 물건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 철퍼덕 앉아서 길고 긴 추억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나도 학생 때는 시험기간이면 책상정리를 하곤 했다. 그야 공부보다 청소가 더 재밌으니까. 그러다 시험기간도 지나고, 과제를 제출하고 난 뒤에는 청소와 다시 멀어진다. 하지만 지금은 청소와 정리정돈이 진심으로 즐겁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셨나요? 주변 사람들에게 '청소광인'으로 불리고 있답니다.
몇 년째 다니고 있는 병원이 있다. 물리치료실에 덩그러니 앉아있으면 서랍의 움푹 들어간 틈새에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가 보인다. 블라인드 위에 쌓인 먼지들도 보인다. 얼룩덜룩한 몰딩도 보인다. 같은 병원을 다니는 지인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게 보여?"라고 했다. 내 눈에는 너무 잘 보인다. 한 번은 원장님께 지저분한 몰딩을 제가 좀 닦아드려도 될까요 하고 물어볼 뻔했다. 다음 예약이 몇 달 뒤인데 그때도 똑같은 자리에 여전히 그대로인 먼지를 보며 청소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게 뻔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정말로 청소에 미친 사람 같다.)
청소에 무관심하던 내가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었던 건 지난번에 얘기한 것처럼 불안 때문이다. 집 안의 공기에는 불안이 가득했다. 숨을 내쉬고, 들이마실 때마다 불안했다. 불안을 이기기 위해서 온갖 방법(일기 쓰기, 격한 운동, 걷기 등)을 동원했었지만 그중에 제일 효과가 있었던 건 바로 청소와 정리정돈이었다. 아마도 텅 비어버린 아버지의 영역을 메꿀 수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더 이상 테이프로 장판에 붙은 머리카락들을 떼어내는 소리는 들을 수 없지만 아버지의 자리를 채우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사실 청소와 정리정돈을 하기 시작하면서 제일 덕을 본 사람은 우리 어머니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고 집이 깨끗하게 유지되는 마법이라니.
나도 가끔은 우리 어머니가 부럽다.
작가의 말
여러분의 취미와 특기는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