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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임 Jul 25. 2023

이력서 취미와 특기란에 '청소'라고
적어도 될까요?

이력서의 취미와 특기란에 보통 '운동', '음악감상', '독서' 등을 적어서 제출하지 않던가. 나는 진심으로 '청소', '정리정돈'이라고 적고 싶었다. 진심이었다. 진심.

기업에서 면접 질문으로 스트레스 관리 요령을 물어봤을 때 나는 '청소'라고 답변했다. (실제로 스트레스받으면 청소를 한다.) 깨끗해진 집을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덧붙였는데 누군가는 고개를 끄덕였고, 누군가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사람들은 시험공부를 하기 싫을 때, 과제를 하기 싫을 때 청소를 한다. 침대 위에 켜켜이 쌓인 옷가지, 책상 위를 가득 채운 온갖 잡동사니를 정리하다가 추억이 깃든 물건을 발견하면 그 자리에 철퍼덕 앉아서 길고 긴 추억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나도 학생 때는 시험기간이면 책상정리를 하곤 했다. 그야 공부보다 청소가 더 재밌으니까. 그러다 시험기간도 지나고, 과제를 제출하고 난 뒤에는 청소와 다시 멀어진다. 하지만 지금은 청소와 정리정돈이 진심으로 즐겁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셨나요? 주변 사람들에게 '청소광인'으로 불리고 있답니다.


몇 년째 다니고 있는 병원이 있다. 물리치료실에 덩그러니 앉아있으면 서랍의 움푹 들어간 틈새에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가 보인다. 블라인드 위에 쌓인 먼지들도 보인다. 얼룩덜룩한 몰딩도 보인다. 같은 병원을 다니는 지인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그게 보여?"라고 했다. 내 눈에는 너무 잘 보인다. 한 번은 원장님께 지저분한 몰딩을 제가 좀 닦아드려도 될까요 하고 물어볼 뻔했다. 다음 예약이 몇 달 뒤인데 그때도 똑같은 자리에 여전히 그대로인 먼지를 보며 청소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 게 뻔하다. (이렇게 쓰고 보니 정말로 청소에 미친 사람 같다.)


청소에 무관심하던 내가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었던 건 지난번에 얘기한 것처럼 불안 때문이다. 집 안의 공기에는 불안이 가득했다. 숨을 내쉬고, 들이마실 때마다 불안했다. 불안을 이기기 위해서 온갖 방법(일기 쓰기, 격한 운동, 걷기 등)을 동원했었지만 그중에 제일 효과가 있었던 건 바로 청소와 정리정돈이었다. 아마도 텅 비어버린 아버지의 영역을 메꿀 수 있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더 이상 테이프로 장판에 붙은 머리카락들을 떼어내는 소리는 들을 수 없지만 아버지의 자리를 채우는 효과적인 방법이었던 것이다. 


사실 청소와 정리정돈을 하기 시작하면서 제일 덕을 본 사람은 우리 어머니다.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않고 집이 깨끗하게 유지되는 마법이라니.

나도 가끔은 우리 어머니가 부럽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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