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임 Jul 27. 2023

이사를 가야겠습니다.

집이란 무엇인가? 

누군가는 그저 부동산으로 생각하고, 누군가는 잠만 자는 곳, 누군가는 안락하고 따뜻한 공간을 떠올릴 거라 생각한다. 나에게 집은 보금자리 곧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이다. 


아버지의 긴 투병생활은 병원과 집에서 계속되었다. 우리 집은 큰 사건이나 사고 없이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이었는데 아버지가 아프시고 난 뒤로 집안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핸드폰 진동모드는 늘 해제상태, 벨소리 크기는 최대. 사소하지만 많은 것들이 바뀌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투병 중에도 유쾌했다. 라디오를 켜놓고 좋아하는 음악이 나올 때면 따라 부르고, TV프로그램을 보며 큰 소리로 웃기도 했다.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 곳곳을 청소하는 나를 보며 다 컸다며 기특해하기도 하셨다. 그렇게 버티고, 버티던 어느 날. 새벽 다섯 시쯤, 급하게 나를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깨어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버지는 위급한 상황이었고 119에 전화를 걸어 다급한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다. 곧 119 구조대가 도착했다. 벌써 여러 번 올라탔던 구급차인데도 낯설었다. 구급차를 타고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캄캄한 새벽의 도로를 달리며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 믿었는데 아버지는 끝내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날 이후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게 겁이 났다. 문을 열면 그날의 악몽이 눈앞에서 재현되었다. 안방뿐만 아니라 집안 곳곳에 아버지의 잔상들이 남아있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는데 몇 달 뒤에도 그 몇 달 뒤에도 여전히 안방을 들여다보면 악몽 같던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엄마, 이사를 가야겠어. 이 집에서 더 이상은 못살아"

"..."

"어떻게 생각해?"

"너 좋을 대로 해"


훗날 어머니께 여쭤보았는데 당시에 판단이 잘 서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이사를 하는데 필요한 비용이나 끝을 모르고 치솟는 집값이나 여러 가지로 머리가 복잡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한번 실행하기로 마음을 먹으면 끝을 보는 성격이기 때문에 어머니의 허락과 동시에 집을 내놓았다. 


바로 집이 팔렸다면 얼마나 좋을까? 집은 1년 하고도 몇 개월 뒤에야 정리가 되었다.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은 제각각이었다. 집을 내놓고 첫 번째로 방문했던 노부부는 현재 거주 중인 아파트값이 얼마인지 몇 평인지 자랑을 늘어놓으며 우리 집을 폄하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집을 둘러보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그 뒤로 소식이 없었다. 두 번째로 방문한 중년 여성은 마음에 드는 것처럼 말하고선 연락이 없었다. 그 뒤로도 별별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들이 집을 보러 온다고 하면 기대가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연락이 없으면 바닥으로 꺼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한 가지 뿌듯한 점은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집이 참 깨끗하네요."하고 한 마디씩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무례한 행동에 대한 나의 분노가 차게 식는 건 아니었지만. 


집이 팔리기로 결정이 된 후에 이사 갈 집을 찾는 건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이사 가기 프로젝트'는 막을 내렸다. 


누군가는 그래도 아버지와의 추억이 깃든 집이어서 아쉽지 않냐고 물을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살던 주택을 팔고, 낡은 빌라로 이사를 온 상태였다. 이 낡은 빌라에서 아버지의 본격적인 투병생활이 시작되었고 그래서 좋은 기억이 없었다. 어떠한 미련도 남아있지 않기에 이사를 가는 게 전혀 아쉽지 않았다. 오히려 입주청소를 할 생각에 신이 났다. 다이소에서 청소용품을 잔뜩 구매해서 퇴근하고 틈틈이 2박 3일 동안 청소를 했다. 


봄, 푸른 새싹이 돋아나는 시기, 벚꽃엔딩이 들려오는 시기(장범준 씨 부럽습니다).

그때 우리는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주했다. 불안과의 이별도 점점 가까워져 갔다.



작가의 말

여러분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작가의 이전글 이력서 취미와 특기란에 '청소'라고 적어도 될까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