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상 Jun 16. 2024

슬기로운 석사 생활_4

정들어버린 태양전지


태양전지 실험은 1년 동안 진행했다. 사실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다. 처음 목표는 3개월이었지만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결국 졸업할 때까지 태양전지를 하게 됐다. 내 실험 목표는 하이브리드 태양전지의 시스템을 갖추는 거였다. 이전에 랩실에서 폴리 실리콘 태양전지를 이용한 실험은 했었다. 그러나 폴리 실리콘은 무기물이기 때문에 유기물 시약도 사용하는 우리 랩실에서는 태양전지 이용에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유기물 시약도 응용할 수 있는 유기물 태양전지를 교수님은 원했다. 유기물 태양전지는 공기에 대한 반응성 때문에 진공에서 사용해야 되는 문제점이 있었고 결국 실리콘 웨이퍼 위에 유기물인 고분자 층을 형성하는 하이브리드 태양전지 실험을 하게 됐다.


사실, 처음 6개월은 태양전지에 대해 흥미도 없었고 애정도 없었다. 그저 졸업하기 위해서 했다. 교수님도 이를 알았는지 실험에 좀 더 애정을 갖고 열정적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내가 원하던 실험도 아니었고 기존에 하던 실험에서 갑작스럽게 실험 주제가 바뀌었기 때문에 애정이 생길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과에 진전이 없으니 재미가 없었다. 근데 마지막 학기가 되면서 결과물이 없으면 졸업할 수 없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들었다. 이곳에서 더 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관련된 논문을 계속 읽고 어떻게 실험해야 될지 고민을 많이 했다. 역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채찍질이 아니라 채찍질을 할 수 있다는 공포인 거 같다. 그렇게 하다 보니 조금씩 결과가 좋아졌고 마침내 처음에 목표로 했던 태양전지 시스템 확립을 할 수 있었다. 재밌는 점은 이렇게 하다 보니 어느새 태양전지에 정이 들었다.


결론

이전에는 태양전지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효율도 낮고 미래 에너지로 쓰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태양전지에 애정이 생겼고 취업을 할 때 태양전지 회사에 취업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1년 동안 태양전지 실험만 하다 보니 생각이 바뀐 거 같다. 주변 사람들한테 태양전지는 비싼데 효율이 낮고, 빛을 잘 받을 수 있는 주변 환경 조성도 어렵다고 부정적인 의견만 줬었다. 그런 내가 태양전지 회사에 지원하려고 하니 주변에서는 놀랐다. 논문을 읽다 보니 가능성도 높고 새로운 개념의 태양전지가 계속 나오기 때문에 효율도 결국은 높아질 거 같았다. 그러나 결국 다른 산업군의 회사에서 먼저 최종 합격을 받았고 그 회사를 선택하게 됐다. 태양전지에 대한 애정은 결국 그 정도였을 수도 있지만, 합격한 회사의 산업군은 더 밝았기 때문이다. 그때 가장 핫한 배터리, 그것도 배터리 1위 회사였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슬기로운 석사 생활_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